'춥다'와 '덥다' 밖에 모르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등록 2007.09.02 13:40수정 2007.09.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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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느낌 학교 뒷산에 떨어진 낙엽 ⓒ 안준철

▲ 가을느낌 학교 뒷산에 떨어진 낙엽 ⓒ 안준철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의 첫날,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끼고 미풍 같은 발걸음으로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교실은 창문이 닫힌 채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선풍기를 끄게 하고 창문을 열라고 하자, 창가 쪽에 앉은 서너 아이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목소리로 이렇게 합창을 해댔습니다.  

 

"선생님, 추워요."

"춥긴 뭐가 춥다 그래? 그리고 추운데 선풍기는 왜 틀어?"

 

가만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아이들과 똑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창문을 굳게 닫아놓고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아이들이 못마땅하기보다는 왠지 가엾게 느껴집니다. 갈수록 자연과 멀어져만 가는 아이들. 그래서 차츰 행복과도 멀어져가는 아이들.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이 9월 1일이야. 가을이 시작되는 첫날이라고도 할 수 있지. 불과 이삼일 전까지만 해도 찜통더위로 너희들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었잖아. 그땐 여름이 빨리 지나가고 어서 가을이 왔으면 했잖아. 그렇게도 기다리던 가을이 왔는데 단 하루도 가을을 즐기지 않고 조금 춥다고 창문을 닫아버리면 모처럼 행복할 기회를 놓치는 거잖아. 춥다면서 선풍기를 틀어놓는 것은 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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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느낌 가을시화전 ⓒ 안준철

▲ 가늘느낌 가을시화전 ⓒ 안준철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냉방장치가 채 되지 않는 교실(지금 설치 중)에서 수업을 하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교무실에 들어가면 마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처럼 시원하고 서늘한 기운이 확 끼쳐왔습니다.

 

마치 지옥에서 천국에 온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솔직히 그것이 좋으면서도 찜통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더욱 가을을 기다리게 되었고,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기만 하면 모두들 행복하리라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더위가 가시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춥다고 야단입니다. 반소매 여름 교복을 입었으니 바람이 차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을 보면 춥다고 엄살을 부릴만한 날씨는 아닙니다. 더운 것도 추운 것도 모두 싫은 감정의 표현입니다. '덥다'와 '춥다' 사이에 존재해야 할 형용사가 빈약한 것은 그만큼 아이들의 삶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언어는 곧 삶이기 때문이지요.

 

삶이 먼저 풍요로워야 자연스레 언어도 풍성해지겠지만, 때로는 언어의 풍성함으로 행복한 삶을 유도해낼 수도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덥다'와 '춥다' 사이에 올만한 단어들이나, 혹은 가을 느낌이 드는 표현들을 칠판에 적어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시원하다. 선선하다. 서늘하다. 상큼하다. 사무치다. 가슴이 시리다. 살갗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좋다. 하늘이 드높고 푸르다.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비가 내린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분다. 공기가 차고. 따듯한 어묵 국물이 그립다. 장롱에서 긴소매 옷을 꺼내 입고 싶다. 따듯한 솜이불을 덮고 자고 싶다. 유난히 손이 따듯한 친구가 그립다.

 

어깨가 시리다.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주고 싶다. 외롭다. 쓸쓸하다.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기차를 타고 가다 코스모스가 핀 간이역에서 내리고 싶다. 낙엽이 지는 공원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가을을 퍽 좋아합니다. 보통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치도록 좋아합니다. 우리말에 '사무치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만약 그런 표현이 없었다면 제가 가을을 좋아하는 정도를 표현할 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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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느낌 순천만의 가을 ⓒ 안준철

▲ 가을느낌 순천만의 가을 ⓒ 안준철

어느 해인가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가을 길목에 쓴 시입니다. 아마 지금 제 인생의 여정도 그쯤 될 것입니다만.   

 

눈 침침하니 귀 밝아지는가

가을 산에서 듣는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네


저자에선 할 일이 없어

아침에 오른 산길

다시 저녁에 찾아가면

나뭇잎 야위는 소리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네

 

가을 길목의 저 잎새들

푸르지도 않고 붉지도 않으니

아직 때가 이르다고

만산홍엽 아니라고

사람들 눈길 주지 않네


푸른 잎새마다

핏빛 노을 스밀 때까지

한 그늘 한 그늘

계절의 어스름을 건너는

잎새들의 머나먼 여정

 

눈 침침해지니 귀에 들리네.


-자작시 '구월에서 시월로'

 

가을, 가을입니다.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릅니다. 9월, 10월, 11월… 이렇게 무려 3개월 동안 저는 가을 때문에 행복할 것입니다. 보통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무치게 행복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슬픈 일도 만나고 분노할 일도 생길 터인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가을에는 넘치도록 행복하고, 남은 행복은 누군가를 위해 저장해놓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치는 교사일 것입니다. 좋은 점수를 얻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결국 그 목표는 행복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 행복이 개인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멀고 가까운 이웃의 행복까지 챙기는 그런 것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저는 아직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는 아닌가 봅니다. 아이들은 '춥다'와 '덥다' 밖에 모르는데 나 혼자서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긴 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들더러 행복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지요. 학교에 행복과는 거리가 먼 무기력한 학생이 많은 것은 그만큼 삶에 무기력한 교사들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이 왔는데도 아이들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것은 학교생활을 통해서 배움의 기쁨과 성장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성장의 속도가 자연의 속도를 추월하면 기쁨은 사라집니다. 길이 아닌 도로 위의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학창시절을 오로지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정진하는 것은 마치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량과도 같습니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또 씽씽 달립니다. 현재는 없고 미래만 존재하는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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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느낌 낙엽 ⓒ 안준철

▲ 가을느낌 낙엽 ⓒ 안준철

가을입니다. 아, 가을입니다. 사무치도록 좋은 이 계절에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언어가 가을만큼이나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바로 이 시간 행복할 수 없는 아이들은 영원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릅니다. 미래세대의 꿈나무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현재의 삶에도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2007.09.02 13:40 ⓒ 2007 OhmyNews
#가을느낌 #9월 #낙엽 #시화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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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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