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고개 넘어 북으로 갔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11] 강화도의 위수사령관 김경징

등록 2008.03.02 17:23수정 2008.03.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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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 한성에서 벽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창릉은 조선 제8대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가 잠들어 있는 능침이다. ⓒ 이정근


청나라 군대의 철수 행렬이 창릉고개에 이르렀다. 세자를 따라갈 호종관들을 이끌고 임금이 먼저 와 있었다. 북으로 끌려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창릉은 세조의 제2자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가 잠들어 있는 능산이다. 주변에는 세조의 제1자 의경세자의 경릉과 명종의 원자 순회세자의 순창원이 있었지만 등극한 왕은 예종뿐이었기 때문에 창릉고개라 불렀다.

“멀리 오셔서 전송해주시니 실로 감사합니다.”


말을 멈춘 도르곤이 임금을 향하여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가르치지 못한 자식이 따라가니 대왕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자가 일에 대처하는 것을 보건대 제가 감히 가르칠 입장이 못 됩니다. 더구나 황제께서 후하게 대우하시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식들이 깊은 궁궐에서만 생장하였는데, 지금 듣건대 여러 날 동안 노숙하여 질병이 벌써 생겼다 합니다. 가는 동안에 온돌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만 리 길을 떠나보내니 필시 여러모로 마음을 쓰실 텐데 국왕께서 옥체를 해칠까 매우 두렵습니다. 세자가 간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군대가 갈 길이 매우 바쁘니 하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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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석. 창릉에 있는 무인석.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이 당시 조선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이정근

도르곤이 말에 올랐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부왕에게 절하고 말에 올랐다.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전송했다.

“보전에 힘쓰도록 하라. 지나치게 화를 내지도 말고 가볍게 보이지도 말라.”


말에서 다시 내린 소현세자가 땅에 엎드려 분부를 받았다. 신하들이 세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통곡했다. 솔바람 불던 창릉고개가 울음바다로 변했다.

“주상이 여기에 계신데 어찌 감히 이렇게들 하는가?”

오열을 억누르며 세자가 만류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 기약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이 될 수도 있다. 소현은 가슴이 찢어졌다. 허나, 슬픔을 드러낼 수 도 없다.

“모두들 진중하도록 하라.”

소현세자는 솟구치는 피눈물을 감추며 말에 올랐다. 소현이 탄 말이 북쪽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빈궁과 봉림대군 그리고 대군 부인이 뒤따랐다. 임금은 소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릉고개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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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릉고갯길. 소현세자가 부왕에게 작별을 고하던 날도 어제 내린 눈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 이정근


북으로 향하는 강빈은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첫아들 석철이 눈에 밟혔다. 난리 통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살이 있다면 어느 산속 깊은 곳에서 어제 내린 눈발에 떨고 있지나 않을까? 가슴이 시렸다.

청나라 군사가 양철평에 이르렀다는 급보가 창경궁에 날아들었을 때, 인조는 영의정 겸 체찰사(體察使) 김류를 불렀다.

“김경진을 검찰사로 삼아 종묘사직과 빈궁을 비롯한 궁실과 사대부 가속들의 안위를 맡기고 싶은데 경의 아들이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경징이 다른 재능은 없으나 적을 막고 성을 지키는 일에 어찌 감히 그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검찰사 김경징, 부장(副將) 이민구, 종사관 홍명일이 임명되었다. 원임대신 윤방과 전 예조판서 김상용이 종묘사직의 위패를 받들고 앞장섰다. 승지 한흥일이 세자빈 강씨와 원손을 모셨다. 둘째아들 봉림, 셋째아들 인평 두 대군과 부인 및 여러 숙의를 비롯한 궁인들 그리고 두 공주와 옹주ㆍ부마 윤신지와 유정량이 그 뒤를 따랐다. 진원군, 회은군, 금성군 등 종실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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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 강화도와 육지를 잇는 통로였다. 바다 건너 통진 이다. ⓒ 이정근



간발의 차이로 한강을 건너 통진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각각 덮개 있는 가마에 태우고 짐바리가 50여 바리나 되는 김경징은 가속과 절친한 친구를 먼저 건너가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너지 못하게 했다. 빈궁 일행이 나루에 도착해도 배가 없어서 건너지 못한 채 이틀 동안이나 밤낮을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었다. 이 때, 청나라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빈궁이 가마 안에서 소리쳤다.

“김경징아, 김경징아, 네가 차마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

빈궁의 소리를 강화유수 장신(張紳)이 듣고 경징에게 말하여 비로소 배로 건너도록 하였다. 빈궁이 탄 배가 떠난 직 후, 청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사대부의 여인들이 구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사녀(士女)들이 청군의 말발굽에 차이고 짓밟혔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인들이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여인들의 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강화도에 들어간 김경진은 김포와 통진에 있는 나라 곡식을 피난민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배로 실어왔으나 자신의 친구 이외에는 한 사람도 얻어먹은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체찰사요 아들은 검찰사니 국가의 큰일을 처리할 자가 우리 집이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김경징은 스스로 강화도를 금성탕지(金城湯池)로 믿고 적이 날아서 건너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태평스럽게 날마다 술만 마시며 큰소리쳤다.

“너의 아버지는 임금을 받들고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어 위기가 코앞에 닥쳐 있는데 네가 설령 임금의 욕됨은 걱정하지 않을지라도 홀로 너의 늙은 아버지마저 생각하지 않느냐? 네 나이 지금 얼마인데 감히 이러느냐.”

김상용이 준엄하게 꾸짖었다. 김상용은 예판을 사직하고 기로소에 있다 임금의 부름을 받고 위패를 봉행했다. 김경징은 국가원로의 꾸지람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도장을 집어 던지며 행패를 부렸다.

홍이포를 앞세운 청나라 군대가 갑곶에 상륙했다. 강화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군은 무너지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김상용은 화약을 끌어안고 자결했다.

적군이 가까이 왔다, "종묘사직을 위하여 원손을 부탁한다"

임금으로부터 강빈을 호종하라는 특명을 받은 김경징은 제 목숨 살기 위하여 나룻배를 타고 도망갔다. 위급함을 느낀 빈궁이 원손을 데리고 궐문 밖으로 나와 바다를 건너가려 하니 김경징의 부하들이 문을 열지 주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오는 청군의 함성소리에 위기를 직감한 강빈은 내관 김인과 서후행을 불렀다.

“나와 대군은 어쩌면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원손은 종묘사직을 위하여 보존해야 한다. 너희들은 어서 이 아이를 데리고 피하라. 바다를 건너지 못하면 산골짜기에 숨어 있으라. 너희들에게 원손을 부탁한다.”

강보에 싸인 10개월 된 원손을 내주었다. 작별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내관이 궁을 빠져 나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무사히 교동으로 건너갔다는 소식과 함께 청군들이 추격하여 교동을 샅샅이 수색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손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아직 모른다. 방긋방긋 웃던 석철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강빈은 목이 메었다.

소현세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인조는 환궁 길에 올랐다. 끌려가는 포로들이 줄을 이었다. 행렬의 끝이 돈의문에 닿아 있다고 승지가 보고했다. 인조는 포로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큰 길을 경유하지 않고 사잇길로 창의문에 이르렀다. 창의문은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통과했던 문이다. 17년 전. 쿠데타군을 이끌고 이 문을 통과하여 도성으로 진공할 때는 나라를 바로잡아(反正)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참담한 심정이었다.
#소현세자 #병자호란 #도르곤 #강빈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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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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