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손미나, 도쿄를 훔쳐보다

[책으로 읽는 여행 26] 아나운서 출신 여행작가 손미나의 <태양의 여행자>

등록 2008.06.26 15:21수정 2008.06.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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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태양의 여행자> ⓒ 삼성출판사

책 <태양의 여행자> ⓒ 삼성출판사

'손미나'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도전 골든벨'과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떠올릴 것이다. 그녀가 아나운서를 관두고 선택한 것은 바로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여행 작가. 너무 의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꿈과 패기가 있어 아름답다.

 

책 <태양의 여행자>(삼성 출판사 펴냄)는 그녀가 도쿄라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만난 여러 특색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의 수많은 곳을 돌아다녀 본 그녀가 여행 서적을 내기 위해 다시 꼼꼼히 발품을 팔게 된 장소는 바로 도쿄.

 

스무 살에 호주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 완벽한 여자 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의 첫 문장을 익명의 남학생으로부터 받게 된 저자. 손미나씨는 이 편지보다 하루키의 소설에 완전히 반해 언젠가 소설에 등장하는 하라주쿠의 꽃집을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전통과 기이함이 공존하는 일본

 

도쿄를 방문한 그녀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은 전통 문화를 고수하는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인상이다.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주말 밤에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전통 코미디 쇼를 보기 위해 끝도 안 보이는 줄을 서는 현상, 젊은 사람들이 기모노를 일상복으로 즐겨 입는 모습, 휴대용 화상전화까지 실용화된 시대에도 향수 어린 20세기형 공중전화 부스를 그대로 두는 일본 사람들.

 

초현대적인 도쿄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일본의 이런 오래된 얼굴은 이 나라의 저력을 말해주는 듯하다. 화려한 신주쿠 거리의 현대인들 속에 이렇듯 오래된 전통이 녹아 있기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서양인을 만나면 "일본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도쿄에서 받은 충격 중 하나는 이런 긍정적인 모습만이 아닌, 괴상한 것들도 많다. 동성애자들이 온통 활보하는 거리, '예쁜 엉덩이 선발대회' 같은 엉뚱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만화 영화 주인공과 같은 코스프레 복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 이런 도쿄인들의 생활은 가히 괴짜라 칭할 만하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자신의 엉덩이 사진 몇 장을 크게 현상해서 직접 들고 스튜디오에 나와 진지하게 사진을 설명하며 자신을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몇몇은 심사위원과 뭐라고 몇 마디 대화를 하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아랫도리를 벗어 엉덩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 심사위원들은 더욱더 진지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분석을 하고 점수를 매겼는데 정말 웃긴다고 생각한 건 1등이 정해졌을 때였다. 전국 방송에 나와서 스스럼없이 카메라에 엉덩이를 들이댈 때는 언제고 1등으로 선정이 되자 그 주인공은 너무나 수줍어하며 얼굴이 상기되어 말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뭔가 좀 아이러니했다고나 할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관점에서 이런 일본인들은 참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하더라도 우리와는 문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른 여행 서적들과는 달리 이 책은 도쿄의 여러 장소를 소개하는 것보다 이 도시에 대한 저자의 인상을 전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흔한 여행기에서는 볼 수 없는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고 도쿄의 구석구석에 대한 평가가 돋보인다고 할까.

 

도쿄에서 만난 인상적인 사람들

 

책의 뒷부분에서는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아주 소상하게 전한다. 우리가 어떤 여행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때에는 그 장소와 연관된 사람을 떠올릴 때가 많다. 나도 10년 전 일본 나고야를 여행하면서 거기서 만난 친절한 아가씨 덕분에 아주 편하게 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

 

특히 저자처럼 하루 종일 현지인과 동행하며 여행을 할 수 있는 행운아도 별로 없을 것이다. 적극적인 손미나씨는 그 성격 덕분에 참 재미있는 도쿄인들을 많이 만났다. 우연히 음식점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어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스시 바를 가기도 하고, 겨우 20살인데 게이샤가 된 소녀와 만나기도 하는 등 일반 여행객이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일들이 그녀에게는 자주 발생한다.

 

저자는 갓 결혼한 새댁인 채 일본 여행을 떠났다. 혼자 여행을 가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 다행히도 그녀의 남편이 휴가를 조금 내어 도쿄를 찾아온 덕분에 허니문과 같은 편안한 여행도 맛볼 수 있었다.

 

손미나 커플이 선택한 도쿄의 허니문 여행은 바로 료칸 체험.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여관 체험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여관이 아니라 고급화된 전통 호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다미방에 개별적으로 딸린 노천 온천욕탕이 있고 각 실은 서로 연결되지 않아 철저히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는 일본의 고급 료칸은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지 않아 한번쯤 가볼 만하다.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현재는 전문 여행사도 있고 각 여행사에서 료칸 여행 패키지를 소개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수도는 독특한 문화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베이징, 일본의 도쿄, 우리나라의 서울은 모두 동아시아 국가의 수도라는 공통점과 복잡한 건물로 가득 차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다른 문화 양상을 보인다.

 

일본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저자처럼 오랜 기간 도쿄라는 곳에 가서 머물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녀가 아나운서라는 화려한 직업을 벗어 던지고 여행 작가라는 자유를 선택한 이유도 아마 이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가 아닐까? 평범한 일상에 얽매인 우리로서는 그 자유로움이 부러울 뿐이다.

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삼성출판사, 2008


#여행서적 #태양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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