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의 첫날밤...왜 이렇게 떨리지?

[네 바퀴로 가는 호주 아웃백 13] 심슨 사막의 빅레드

등록 2010.10.17 12:18수정 2010.10.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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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빌의 여명 아웃백의 대명사 버즈빌 ⓒ 오창학


아웃백의 마라도 버즈빌

아직 동트지 않은 거리의 어둠이 삼투압 현상처럼 방안에 빨려들었다. 오늘은 심슨 사막에 진입하는 날이라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싶었건만 어떤 기운이 기어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서 내 안에 똬리를 튼 '공포'란 녀석이 빤히 여길 응시하고 있다. 이곳 호주까지 날아오게 한 장본인이면서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리라 유혹하는 간사한 감정이다. '흥분'이나 '기대'의 가면을 쓰고 있기에 그 실체를 간과하다가도 막상 실행의 순간이 오면 본모습을 드러내 사람을 당황케 하는 속성이 있다. 지금이 꼭 그런 순간이다.


공포. 어둠 속 감정의 실체에 이렇게 이름을 붙이니 좀 무섭다. 그냥 '긴장'이란 별호를 달아두려 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우리나라보다 1.7배나 넓은 모래 사막을 단 한 대의 사륜구동에 의지해 건너야 한다. 첫 주유소가 나올 때까지 모랫길 700여㎞ 과연 무탈하게 지날 수 있을까. 타클라마칸이나 고비 사막을 건널 때 느꼈던 전율과 떨림을 이 순간 다시 느낀다. 생면부지의 땅을 경험할 때 딸려오는 두려움이, 메마른 사막에 대한 달뜬 공포가 심장을 빨리 뛰게 한다. 나는 그런 감정이 좋다.

곤히 잠든 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저들도 같은 심정일까. 나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이들에게 부디 사고 없이 아름다운 추억들만 안겨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밖으로 나와 마을을 걸었다. 여름 한 낮의 기온이 45도까지도 올라간다는 버즈빌이지만 겨울 아침의 공기는 더없이 맑고 상쾌하다. 이제 막 어둠으로부터 승세를 타기 시작한 가로등 뒤로 오렌지 빛 테두리를 한 남색 하늘이 펼쳐져 있다. 버즈빌 호텔의 옆이자 마을의 복판에 있는 비행장에선 몇 대의 경비행기가 이륙한다. 아마도 심슨 사막의 일출을 하늘에서 감상하려는 이들인가 보다. 나도 내일부터는 사막 안에서 직접 일출을 맞이할 것이다.

폐허가 된 로열 호텔(Roal hotel) 옆을 지나는데 어제 펍에서 곤드레가 되어 흐느적거리던 사내가 쌩쌩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가며 인사를 건넨다. 지금 펍에서 나와 귀가하는 것인가? 아니 펍은 이미 문을 닫았을 텐데? 그럼 출근하는 것인가? 귀가라고 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출근이라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저 쌩쌩한 얼굴은 또 뭐야. 테이블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이 친구 이래서 내일 일이나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말이지. 개인적인 내성일까, 대지의 기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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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빌 호텔 퀸즐랜드주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의 가축검역소로 시작한 마을의 태동과 함께한 아웃백의 아이콘이 된 호텔이다. ⓒ 오창학


여명 속에 드러나는 마을의 모습은 한산하다. 19세기말 퀸즐랜드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가축검역소로 태동한 이곳에 버트(Burt)라는 사람이 상점을 운영했기에 마을 이름을 버트빌(Burtville)이라 했다가 발음상 문제로 버즈빌(Birdsville)이 된 것이라 하는데 풍문의 사실여부는 모르겠다. 연방제 이후 세관의 역할은 사라지고 마을은 위축되어 버즈빌 호텔과 빵집, 두어 개의 작은 뮤지엄, 인포메이션 센터, 파출소, 병원, 주유소, 정비소를 갖춘 채 아웃백의 거점마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통 있는 경마 경기인 버즈빌 레이스가 펼쳐지는 9월이면 6000명까지 인구가 늘어 마을 들판이 경비행기로 가득차고 곳곳이 캠핑장이 된다지만 지금은 인구 100명이 조금 넘는 한산한 마을의 모습일 뿐이다.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마치 우리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를 떠올렸다.


스무 살 무렵 자체 휴강을 하고 떠났던 제주 무전여행 중에 마라도 태양열 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말이 발전소지 작은 주택만한 설비라 서울에서 온 기술자 몇의 보조인부 노릇을 하며 여러 날을 지냈다. 일이 끝난 저녁이면 섬을 한 바퀴 휘돌곤 했는데 30분이면 등대와 교회와 몇 채의 민가, 학생 2명인 학교와 두 마리의 조랑말, 몇 마리의 염소를 아우르는 화려한 산책이 끝났다.

산책하는 내내 사방 어딜 둘러도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시야에 둔 채 머리를 잡아챌 듯 핥고 지나가는 바람을 벗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분명 이곳이 어린 왕자의 별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섬이 지금 같은 시장바닥은 아니었으니까. 버즈빌에서 한산했던 시절 마라도의 느낌을 맞는다. 망망한 황야에 놓인 작은 섬, 버즈빌.

사막으로의 출항

아내와 경숙 부부가 일어나 같이 마을 돌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사막 패스(Desert Park Pass)'를 끊었다. 심슨 사막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심슨뿐 아니라 다른 사막들도) 이곳을 지나기 위해서는 꼭 이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허가증을 겸한 입장권쯤 되는데, 고온에다 우기까지 겹치는 여름(9월~3월)에는 발급을 제한하기도 한다. 여름의 고열은 자동차에게나 사람에게나 치명적이고 하천이 따로 없는 사막에 비가 내리면 범람하여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9년에는 물이 불은 곳을 도강하다가 8명이 죽었다.

그렇다고 '출입을 허가한다'는 말을 '들어가도 안전하다'는 말로 해석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빅 레드에서 차량이 전복하는 사고가 있었던 것처럼 모래 언덕을 넘을 때의 위험은 상존하는 것이고 딩고, 독충, 뱀, 차량의 고장 같은 위협적인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사막' 그 자체일 것이다. 사람 없는 모래 천지의 그 광대한 땅에선 사소한 사고나 질병조차도 큰 위험이 될 수 있으니까.

인포메이션 센터 벽에 방문객의 출발지를 색침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지도가 있는데 최근 얼마동안 동양인이 없었던지 아시아 칸에는 침을 꽂았던 자국이 없다. 오늘 처음 색침 네 개가 꽂혔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어서인지 인포메이션 안내인 다이브 갈리거(Dave Galliger)는 우릴 세심하게 챙겼다. 그냥 스크러피(Scruffy)라 부르라며 그는 친절하게 진행 경로에 대한 정보를 주고 우리 차량을 살피며 사막을 무사히 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길에서 고마운 이들을 많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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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의 출항 준비 700Km 사막 횡단을 위해 170리터의 연료를 준비하고 빈 주스통에 2리터의 연료를 따로 담았다. 만일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무전기와 위성전화기의 충전을 위한 발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기에 준비하는 마음이 비감하다. ⓒ 오창학


버즈빌 정비소에 들러 차량 상태를 최종점검하고 주유소에 왔다. 2리터 주스통에까지 연료를 채우는데 마음이 비감하다. 이미 차의 메인 탱크(90L)와 서브 탱크(35L)만으로도 125리터,  20리터 보조연료통 2개와 15리터 생수통 1개까지 도합 55리터를 채워 전부 170리터의 연료를 준비했다. 통상적인 연비라면 1200㎞를 넘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니 700㎞ 구간의 사막을 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륜기어를 넣고 달리는 모래땅에서의 연비가 얼마나 나올지는 막상 모래에 바퀴를 넣어 보아야 한다. 모래 언덕의 경사도나 모래 입자에 따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혹은 얼마나 길을 헤매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짐을 늘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어서 준비한 연료통만큼만 채우고 2리터 주스통엔 비상용 연료를 담은 것이다. 모든 연료가 바닥났을 때 쓰려는 것이지만 차를 움직이려는 목적이 아니고 무전기나 위성전화기를 충전하려는 발전용으로만 사용할 것이기에, 저 주스통의 뚜껑을 딸 지경이 되면 정말 막장까지 간 상황이 되겠다. 그러니 주스통에 연료를 담는 마음이 무거울 밖에.

주유소 가게에서 물과 부식을 샀다. 적재하기가 편해 박스에 담긴 10리터용 비닐팩 생수 6개와 생활용수로 쓸 수돗물 20리터를 합해 80리터의 물을 준비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물만 있으면 버틸 수 있으니까. 자동차 좌석 밑으로 구겨 넣은 2리터 생수병 3개는 포함하지 않은 양이다. 이것은 있되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스통에 담은 연료와 마찬가지지로 비상용인데 끝까지 없는 것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루프렉에 라면이나 건조식품, 침낭, 매트리스 같은 부피 크고 가벼운 짐을 얹고 차량 내부에 짐가방이나 야영장비, 예비연료통, 물 같은 중량물을 실어 무게중심을 낮췄다. 예비연료통에서 기름이 새거나 냄새가 올라오는 경우를 대비해 비닐로 싸주고, 오프로드에서 실내 뒤칸을 가득 메운 짐들이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무줄 바로 칭칭 엮었다.

심슨 사막의 붉은산 '빅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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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사막의 관문 빅레드 수 없는 병렬 사구로 이루어진 심슨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모래에서의 운전술이 필요하다. 빅레드는 심슨 사막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으로 동에서 서로 횡단할 때 처음 넘어야할 관문이다. ⓒ 오창학


버즈빌에서의 긴 준비가 끝났다. 마을을 구경한 것과 준비할 것이 많았던 이유도 있지만 오후의 해가 기울고 있으니 출발 치고는 매우 늦은 출발이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주저가 발길을 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심슨사막을 향해 뻥 트인 비포장길로 운전대를 고정한 순간부터는 마음이 개운하다.

버즈빌에서 서쪽으로 43㎞ 지점까지 40분쯤 달렸을까. 눈앞에 거대한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빅레드(Big Red)다. 출발 직전 버즈빌 호텔에서 먹었던 식사 메뉴 빅레드를 먹었는데 버거가 층층이 쌓여 높은 산을 이루고 그 위에 깃대가 꽂힌 메뉴의 이름이 왜 빅레드여야 했는지를 실감한다.

심슨 사막의 동쪽 관문이자 이정표가 되는 90m 짜리 모래 언덕은 그야 말로 하나의 산이다.  빅레드 이후로 높이 평균 40m 가량의 모래언덕이 600개 이상 북서로 평행하게 가로놓여있다. 이 모래언덕들을 다 넘어야 심슨 사막을 횡단하게 된다. 그러니 첫 관문인 빅레드를 넘지 못하면 다른 언덕을 구경할 기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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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레드 vs 빅레드 사막에서 높이 90m의 모래 언덕은 차라리 산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운전자들이 고지 정복을 위해 등정한다. 사진 우측은 버즈빌 호텔에서 판매하는 '빅레드 버거'. 아웃백 최고봉 버거라 할 수 있는데 왜 이 메뉴에 빅레드란 이름을 붙였는지 알만하다. ⓒ 오창학


아니 엄밀히 말하면 빅레드를 피해 우회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슨사막 최고 높이의 모래언덕을 마주해 일부러 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빅레드야 어떻게 피한다 하더라도 그 뒤로 펼쳐지는 모래언덕까지 모두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딪쳐서 깨야한다. 전륜 수동허브를 채우고 4륜 기어를 넣었다. 빅레드 앞에서 천천히 숨을 고른다.

고지를 향해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데, 애개개. 지나치게 쉽게 언덕마루에 올라섰다. 정상에서 보니 맞은 편에 비하면 버즈빌 쪽에서 오르는 경사면은 완만하고 높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심슨 사막 쪽에서 오르는 경사면은 정말 산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르고 길다. 그간 자자했던 빅레드의 명성은 바로 저쪽 방향에서의 등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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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레드 위의 패트롤 한땀 한땀 속이지 않고 달려온 자의 여유. 붉은산 빅레드 위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는 애마. ⓒ 오창학


심슨 사막 쪽으로 내려가 다시 도전했다. 가속을 해서 모래언덕에 붙은 후 바퀴의 구동력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고지를 몇 미터 남기고 바퀴가 땅을 파대며 멈춘다. 다시 내려가 두 번째 도움닫기를 통해서야 정상에 설 수 있었다. 편법이 아닌 정공을 통해 얻은 성취는 달다.

퀸즐랜드의 주도 브리즈번으로부터도 1600㎞가 넘는 이곳까지 한 땀 한 땀 달려왔고, 지금은 결코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모래의 산을 발 아래 두었다. 그 위에서 그토록 그리던 사막의 바다를 응시하는 눈은 뜨겁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 처해도 누군가에 의해 이곳까지 왔거나, 의미를 두지 않고 고지에 오른 사람의 감정은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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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레드의 사람들 좌로부터 최 감독, 그의 아내 경숙, 경숙을 찍어주는 아내와 그들을 촬영하고 있는 최감독,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나. 좌하: 필자의 아내, 우하: 필자 ⓒ 오창학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장엄한 광경에서 느끼는 감동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시야를 가득 채운 모래의 해일 위로 태양이 눕고 있다. 해가 키를 낮출수록 더욱 붉어지는 아웃백의 모래들이 마지막 빛으로 하늘마저 물들인다. 우리처럼 사막을 넘으려는 여행자가 아닌데도빅레드의 일몰 하나를 바라고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기대를 알 것 같다.

고요하게 물드는 대지와 하늘을 응시하며 이들은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두고 온 것들, 해가 가라앉기 전까지의 분주한 일상들, 이제 다가올 어둠이 주는 평안, 뭐 이런 것들? 서로 말은 없어도 일몰이 주는 장엄과 숙연 앞에서 느끼는 감동을 어찌 모를까. 일출이 주는 격동과 생명감과는 다른, 안으로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감정을 정화하는 저 빛의 마력을.

사막에서의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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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사막에서의 첫날밤 지평에서부터 별이 오르고 천지사방은 광막한 위대한 자연 속에서 그간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 오창학


대지와 하늘의 경계에만 태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때 빅레드를 내려와 사막에 진입했다. 겨우 몇 개의 언덕을 넘었을 때부터 어두워져 적당한 곳에 캠프 사이트를 마련했다. 마지막 태양의 잔영을 배경으로 사막 나무의 거친 실루엣이 아름다운 곳에서 텐트를 치고 식탁을 펴니 천지가 내 정원이다.

울타리가 없으므로 오히려 내 차지가 더 늘어나는 역설을 경험한다. 아내와 벗들이 함께 있기 때문일까. 이 거칠고 광막한 자연이 두렵다기보다는 오히려 포근하다. 콘크리트 속에서 사람들과, 정말 많은 사람들과 소음 속에 살았던 그간의 삶을 하룻밤 사이에 씻어낼 것처럼 적막하고, 막힘없으며,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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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사막에서의 첫날밤 오로지 사막. 그리고 우리. ⓒ 오창학


살면서 심장의 울림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자선을 모르는 수전노가 재물을 끌어모으듯 그렇게 뒤룩거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내일을 위한 과정으로만 전락해 끊임없이 잡히지 않을 미래만 좇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이 일 때마다 다른 세상을, 다른 세상에 있는 자연을 더욱 그리워하곤 했다. 그 자연에서 한 번 훅하고 숨을 몰아쉬고 싶었다.

'사막'은 바로 '다른 세상에 있는 자연'의 결정체였고 그 그리움으로 인해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로 인한 주저가 따랐지만 막상 사막의 품에 있는 지금 가슴을 쓸어내린다. 만약 내 익숙한 삶의 테두리에서 계속 멈칫거리고 있었더라면 나는 이 싸늘한 사막의 한기를 접하며 지난 얼마간의 막힘을 시원하게 정화하는 경험을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

시선이 머무는 끝까지 펼쳐진 별들의 향연 아래 일렁이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우린 지난 날의 꿈과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지나온 길도 가야할 길도 잊은 채 오늘, 지금 이순간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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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사막 횡단 시드니에서 시작된 여정은 드디어 심슨 사막에 들어섰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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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사막 횡단 트랙 1970년대 석유와 가스 개발을 위한 트랙들이 개척되어 일반인들의 사막 접근이 가능해졌다. ⓒ 오창학


오스트레일리아 중앙부에 위치한 심슨사막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퀸즐랜드에 접해 약 176500㎢의 크기(남한의 면적은 약 100,000㎢) 로 펼쳐져 있다. 심슨이란 사막의 이름은 1932년에서야 생겨났는데 세실 매디간(Cecil Madigan)이 탐사에 자금을 댔던 자선가이자 지리학자인 알프레드 심슨(Alfred Allen Simpson)의 이름을 따 작명한 것이다. 탐사에 자금을 댔다는 표현을 썼지만 엄밀히 비행기로 관측할 수 있도록 비용을 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980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중앙 국가 철도의 한 구역이 심슨사막의 서쪽 주변을 통과했다.심슨 사막의 가장자리로 가는 통로를 제공하는 마을은 남쪽에 오드나다타(Oodnadatta)와 동쪽에 버즈빌(Birdsville)이 있으며 서쪽에는 마운트 데어 호텔이 있어(Mount Dare hotel) 숙소와 음식, 차량 정비를 제공 받을 수 있다.

19세기 중반 찰스 스튜어트(Charles Sturt)가 이 지역을 탐사하기는 했지만 1936년 테드 콜슨(Ted Colson)이 최초의 백인 횡단자가 되었다.  애초부터 그 땅에 있었던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다른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낸 것이 고작 80년의 역사도 갖지 못하는 미개척의 땅이다.

그나마도 일반인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 것도 70년대 석유회사들이 가스와 오일 탐사를 위해 개척한 트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렌치 라인(French Line), 릭 로드(Rig Road)와 큐에이에이 라인(QAA Line)과 같은 흔적이 그 때 만들어진 루트다. 튼튼한 사륜구동과 모래에서의 운전 기법, 미지의 세계를 향한 용기가 있다면 길을 잃지 않고 사막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사전지식 없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인포메이션 등에서 유료로 퍼밋을 받아야만 한다. 무분별하게 경로를 개척하려는 운전자들과 준비되지 않은 모험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름철(우리와 계절이 반대임을 명심)엔 출입을 금하기도 한다. 평균강수량이 200mm미만이지만 여름 우기에 사막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엄청난 열로 인한 차량 손상과 탈진도 문제이고 언제 어떻게 내릴지 모르는 비는 순식간에 재앙으로 변한다. 진흙층의 구간은 모두 뻘로 변하여 사륜구동 아니라 무한궤도를 가진 전차라도 진행이 불가능한 구간이 많아진다. 그리고 특별히 강이 없는 사막에서 물이 범람하면 길 위의 차든 야영지든 단숨에 삼켜버릴 수 있다.
#호주 #아웃백 #심슨사막 #빅레드 #대륙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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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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