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삼성전자 사옥앞 반올림 농성장. 피해자들 사진과 피해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권우성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6조 제1항은 집회를 주최하기 위해서는 30일 전부터 최소 2일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관할경찰서장은 같은 법 제20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에 대해 자진해산을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제24조는 관할경찰서장의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형량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결코 낮지 않다.
집시법 제6조, 20조 그리고 24조로 복잡하게 얽히는 구조 속에 대부분의 미신고집회에는 해산명령이 내려지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현행범이 된다. 그리고 경찰에게는 현행범을 연행할 권한이 있다. 사전집회신고는 협력의무가 아닌 사실상 강행규정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한다. 죽은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부(老父)는 어디든 찾아가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혼자만의 목소리가 작았다면 여럿이 함께 소리 높여야 했다.
반올림이 결성되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결사(結社)'라 한다.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소리치는 것은 '집회(集會)'다. 고 황유미씨와 반올림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삼성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삼성에게 전하고 따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반올림의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시도는 연이어 실패했다. 서초경찰서 앞에는 늘 건장한 청년들이 줄지어 있었고 이들은 항상 반올림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
고 황유미씨가 삼성전자 본관 앞에 서는 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눈을 감은지 5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삼성전자 일반노조는 2012년 서울행정법원에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신청(2012아2376)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집회를 차단하기 위한 허위집회신고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었다.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는 황유미씨의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이제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들이 집회 장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삼성과 상관없는 현수막을 들고 서있었다. 법원이 허위집회에 제동을 걸자 실제 집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집회가 이루어지니 집행정지신청을 하기도 어려웠다.
집회는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주장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밖으로 나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공공장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집회와 공공질서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집회의 자유와 공공질서유지 간 적절한 균형은 피할 수 없다.
선신고 집회를 이유로 후신고 집회를 거부한 근거는 질서유지였다. 같은 장소에서 동일시간대에 두 개 이상의 집회가 개최되면 질서유지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요소로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집시법 제8조 제2항 역시 중복집회신고 시 관할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집회 또는 시위 간에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하여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 각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고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복수집회라도 여러 집회가 모두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조 제3항은 중복 집회 간 시간이나 장소의 분리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뒤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행 집회시고가 있으면 후행 집회신고자에게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서 집회할 것을 권유하고 이를 거부하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후신고 집회는 금지되고 있다.
집시법은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집시법 제1조). 삼성전자 본관 앞에 두 개의 집회가 신고 되었다면 적절히 위치를 구분하여 동시에 개최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 된다.
두 집회 간 충돌이 우려된다면 경찰력을 통해 사전에 방지하면 그만이다.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은 우회도로 등으로 안내하여 해결할 수 있다. 우회하여 지연된 시간은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신고 집회를 위해 후신고 집회를 일률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존재한다.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대부분 그것 말고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할 방법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할 방법을 모조리 박탈당하게 된다. 결국 집회의 금지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금지를 넘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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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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