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서는 현장에서 응시자들이 줄을 서서 참가를 신청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규승
이날 발표된 글제는 총 네 개다. 그동안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열어 글제를 받았는데, 약 460여 개의 글제들 중에서 24개를 우선 선정했다. 시상식이 열리는 당일 오전 10시에 즉석 추첨을 통해서 4개의 글제를 발표했다. 마치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떠올리는 이 장면은 전국에서 모인 참여자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자신이 준비한 방식대로 4시간 동안 원고를 채워나갔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마로니에 공원의 의자에 앉아서 쓰는 이들도 있었고, 누구는 바닥에 그대로 앉아 원고를 채워나갔다. 오후 2시까지 마감을 해달라는 사회자의 부탁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된 백일장의 백미는 오후에 펼쳐진 시상식이다. 2시간 가량 시, 산문, 아동문학 등 세 분야에 따라 총 15명의 심사위원이 즉석에서 심사를 거쳤으며, 각 분야별 장원을 포함해 총 33명의 시상자들이 배출됐다.
시상식 초반에는 의미있는 참여자에게 특별상을 수여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12살 소녀와 함께 예순을 훌쩍 넘긴 한 응시자는 자신이 특별상을 탔다는 소식에 눈물을 쏟아냈다. 상을 수여하는 내내 어쩔줄 몰라하는 그에게 사회자가 소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열흘 전에 백일장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아니에요. 심지어 3일 전에 원고지 쓰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어요. 올해는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고 내년이나 혹시나 죽기 전이라도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500여 명의 참여자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나이, 직업 등을 불문하고 옷차림새와 스타일이 서로 달랐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여성'이라는 것뿐이다(장원으로 선정된 세 명은 방송작가, 문예창작과 재학생, 문학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우연한 기회에 백일장에 참여하게 됐다는 취업준비생 김현지(23)씨는 이렇게 소감을 들려줬다.
"영어교육이 전공이라 영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문학 수업을 많이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해서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저도 언젠가는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한 권의 책을 발간하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ST의 공동 후원으로 진행된다. 특히, 후원사인 동아쏘시오그룹은 40년간 이 행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기업후원의 우수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올해는 이를 기념해 감사패 증정식이 마련됐다.
이 행사는 오랜 역사 만큼 걸출한 여성 문학인을 발굴하며 한국문화의 저변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박종관 위원장은 백일장을 찾은 참여자들에게 이렇게 소감을 전달하며 격려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이름을 불리기를 희망하는 여러분 모두가 장원입니다. 문학을 가슴에 담는 일을 끝까지 잊지 말아 주세요. 가슴 속에 문학을 담는 것은 가슴 속에 별을 담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