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범조씨가 운영하는 섹터의 내부. 영업을 하지 않는 월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용산FM
이태원에서만 코로나가 연장된 것 같아요
- 참사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코로나가 연장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이태원에서만요. 빚도 많이 졌어요. 손님들 발길이 끊겼으니까. 매출 유지가 안 되어서 계속 대출 받고 돈을 빌리고 있어요. 오히려 코로나 때 손님이 더 많이 왔어요. 솔직히 저조차도 안 가고 싶어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 누가 여기서 즐거운 분위기를 내며 술을 먹으려 할까요."
- 한동안 영업도 안 하셨다고요.
"다른 사장님들은 거의 한 달 안 했어요. 저는 여유가 없어서 7일 정도밖에 못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문만 열어 두었어요."
- 영업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있을까요?
"일단 한국인에 대한 마케팅을 줄였어요. 대신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쪽으로 갔어요. 실제로 반응도 좋았어요."
- 외국인분들은 조금 더 편하게 이태원을 찾고 있나요?
"아니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전달받는 게 늦었어요. 그래서 사고에 대한 반응이 한 달 뒤에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다음 세네 달 동안에는 한국인도, 외국인도 안 왔던 거죠."
-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하셨어요?
"그전까지는 각자 살기 바빴는데, 코로나 때 시간이 워낙 많이 남아 옆 가게에 인사를 드리면서 상인들끼리 서로 친해졌거든요. 그러고 나서 이벤트도 같이 많이 열었고요. 이번에는 다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암묵적으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죠. 임대료도 내야 하고 애들 인건비도 줘야 하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파티를 하기에도 좀 미안하고요. 이제 그냥 음식 팔고 칵테일 먹고 대관하고, 그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생계와 추모 사이에서
- 해밀턴 뒤쪽은 다시 참사 이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운영하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나요?
"거의 80%까지 올라왔어요."
- 저는 한동안 이태원에 오지 못했어요. 추모 공간 생기고 나서 한두 번 방문했던 것 같아요. 범조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추모를 하셨나요?
"저는 거의 이태원에 있거든요. 집도 여기라서요. 보통 밤에 활동하는데, 그 골목을 일부러 자주 지나가요, 일부러. 기도하진 않고 그냥 지나가요. 생각을 하려고요. 잊기엔 조금 크기도 하고, 잊고 싶지도 않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사장님들도 다 그 골목을 일부러 많이 지나다녀요."
- 그렇다면 생업이 걸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추모 공간을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까요?
"유가족분들이 원하는 걸 최대한 해드리고 싶었어요. 대신에 영업 제한 없이 문만 열었으면 했어요. 단 한 번도 추모 공간에 대해 치우라고 한 적 없었어요. 저는 그냥 문만 열고 싶었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족들을 지켜야 하니까. 그런데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니까 아예 인터뷰 자체를 꺼렸거든요. '나라가 이 정도인가' 생각했어요."
- 충분히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올해도 핼러윈이 돌아오잖아요. 그 모습이 어떨 것 같을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좀 더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을까요? 원래는 주최자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즐겨 주셨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고가 생겼어요. 아마 상인 분들 모두 많이 긴장해 있을 거예요. 저도 솔직히 너무 긴장되거든요. 좋게 넘어갔으면 합니다."
- 섹터에서도 지금 핼러윈 파티를 기획하고 있나요?
"아직은 안 하는데, 그래도 하기는 하겠죠. 해야 하는 거니까."
-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할게요. 정부나 공공 차원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찾아보니까 경찰들이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아마 그런 걸 하지 않을까 해요."
끝내 회복되지 않는 것
- 이 가게를 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냥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어요. 이태원을 좋아하긴 하지만, 마음이 조금 떠났다고 해야 되나… 이런 일이 생기면 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까요. 그게 내놓은 이유 중 하나죠. 방어책 같은 게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정부에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문을 열고 싶어도 열 수도 없고, 광고를 하자니 괜히 또 눈치 보이고."
- 만약에 참사 이전만큼 사람들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접고 싶은 마음이신 건가요?
"네, 섹터는요. 아마 다른 데서는 더 하겠지만, 여기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죠."
- 참사의 기억을 안고서 어떻게 이태원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다들 저처럼 머리 한 곳에 각인되어 있겠죠. 자연스럽게 안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쓸 거고요. 그런데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어린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잡혀가겠죠, 천천히. 시행착오를 거쳐 안전한 시스템이 잡힐 거예요. 어른들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진짜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말이죠. 저도 그 아이 중 한 명이었는데,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거든요."
- 굉장히 와닿는 표현이에요.
"여기서 오래 장사하신 분들은 다들 예전 자신의 기억을 친구들, 동생들한테 전하고 싶어하거든요.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 못했어요. 저한테 막 '후배'라는 거예요. 그걸 이해 못했는데 이 일이 생기고 보니까 알겠어요. 제가 놀았던 공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물려줬던 거야. '내가 그때 재밌었으니까 너희들도 한번 해봐.' 이제는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겠죠. 어릴 때는 홍대 가서 놀고, 재미없으면 강남 가고, 그러다 나중에 이태원으로 가고. 이게 다 그전에 놀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들이고, 우리가 이어가는 거예요."
- 이태원만의 매력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태원을 대체할 곳은 없어요. 그 분위기를 따라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100% 카피할 수가 없어요. 압구정이나 홍대 사장님들도 다 알고 계세요. 그래서 그냥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에요. 이태원 사장님들은 이태원만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가다듬으려 하고요.
흔히 '이태원 갬성'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게 어떤 거냐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자유분방하고 조금 편안한 걸 뜻해요. 강남 갈 때랑 이태원 갈 때랑 스타일이 달라요. 이태원은 퇴근하고 곧장 들를 수 있다면, 강남은 집에 한 번 들렀다 세팅하고 가야 할 것 같은 거죠. 한편, 외국인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요. 그런 자유로운 느낌을 다른 데서 만나긴 힘들죠. 원래 그랬던 곳입니다."
이태원에서 시작해서 이태원으로 끝난 인터뷰. 그 사이엔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 '원래 그랬던 곳' 이었던 이태원이 미래에도 현재와 연결될 수 있길 바라며 기록을 마친다.
*기록에 기여해 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인터뷰어 : 노호태 / 인터뷰이 : 곽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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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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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이태원이란 공간, 잘 물려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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