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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도, 이야기도 틀에 박히지 않도록

[다시 놀고 싶다 ⑥] 심나연·홍다예씨가 들은 정승연씨의 이야기

등록 2023.10.24 15:32수정 2023.10.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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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억 속 제일 핫한 공간 이태원

정승연씨는 참사 이전의 이태원을 "제일 핫한 공간"으로 기억했다. 유난히 깊은 지하철역을 힘겹게 오르고 나면, 이태원 거리 곳곳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눈에 띄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과 개성 넘치는 패션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 승연씨에게 이태원이란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그 모습을 좋아했던 승연씨는 종종 친구들과 만나 이태원에서 커피 마시기를 즐겼다.

"요즘에는 루프탑 같이 전경을 볼 수 있거나 잘 꾸며진 공간이 많이 생겼잖아요. 저한테는 이태원이 처음이었거든요. 시야가 탁 트여서 하늘도 보이고 풀도 많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더 선호했던 것 같아요."

이태원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승연씨의 말은 대부분 과거형으로 끝났다.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몇 개월 간 이태원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연씨는 최근에서야 약간의 어색함을 안고 이태원에서 다시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볍게 카페부터 들렀어요. 예상과 다르게 옛날 이태원 분위기가 나서 좋았어요. 그래도 경제적으로 많이 회복이 되었구나. 언론에서는 상인 분들이 힘들다고 하던데, 조금 안심되기도 했어요. 빨리 옛날처럼 사람들이랑 재밌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는 데 성별도 배경도 중요하지 않아

이제 승연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태원에 방문하고 있다. 걱정하던 것보다 주변 상권이 침체되진 않은 듯해 안도하면서도, 역시나 예전처럼 신나게 놀기는 쉽지 않다. 이태원에서 노는 동안 그 문화에 "완벽하게 젖어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는 승연씨.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사람들은 매번 그런 승연씨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덕분에 승연씨도 금세 긴장을 풀고는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의도치 않게 친구가 되고 또 다시 만나서 같이 놀았던 경우도 몇 번 있었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낯을 가려도 보듬어주고… 이태원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술 마시다 갑자기 눈이 마주쳐서 '같이 노실래요?' 하더라도, 그게 성별과 상관없는 것 같았어요. 뭔가 이성적으로만 다가온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문화라서, 그게 저는 좋았어요."

이태원에서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어느 펍에서든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술잔을 부딪치며 춤을 췄지만, 신상에 관해 함부로 질문하거나 애써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승연씨는 그 속에서 유대감을 느꼈다. 그 한시적인 만남을 다 같이 즐기고 나서 미련 없이 돌아가 하루를 마치는 게 오히려 깔끔해 보였다.

"제가 진짜 좋았던 건, '몇 살이세요?' '어떤 일 하세요?' 같이 조사하듯 묻는 게 아니라 '오늘 어디 갔다 와서 뭐 마셨어요?' 이런 식으로 스몰 토크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 사람에게 나의 배경은 중요하지 않구나. 그냥 지금 내가 좋고 마음에 드는 거구나. 그러면서 정말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만약 코드가 맞아서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싶으면, 다음주에도 만나서 같이 놀자고 할 수도 있고요. 연락처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이든 카카오톡 아이디든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어쩌면 이태원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승연씨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태원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도 외국에서처럼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딜 가든 나이나 직업을 기본적으로 묻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물으면 좀 쿨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람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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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정승연씨는 기록단이 준비한 종이 가면을 꾸몄다. ⓒ 용산FM

 
핼러윈 코스튬이 가져다 준 자유

승연씨는 이태원이 "틀에 박히지 않"아서 좋았다. 그만큼 승연씨 내면의 틀 또한 이태원에서 하나씩 깨졌는데, 몇 해 전 친구의 권유로 처음 참여했던 핼러윈 축제도 승연씨에게 그런 기회가 되었다. 반드시 코스튬을 해야 하는 줄 알았던 승연씨는 한 달 전부터 소품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고는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분으로 핼러윈 축제를 즐겼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매력을 실컷 전파했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는 패기가 넘쳤던 것 같아요. 싱크로율도 최대한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모자장수로 분장했는데, 집밖에 나오니까 너무 창피한 거예요. 사람들이 '저 사람 뭐지?' 하고 다 쳐다볼 텐데… 그런데 이태원에 가까워질수록 코스튬 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솟아나더라고요. 어? 괜찮은 것 같은데? 당당해질 수 있겠는데? 이태원 도착해서는 정말 거리낌 없이 활보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코스튬은 승연씨에게 도전이자 일탈이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승연씨는 스스로 훨씬 자유로워진 듯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 이렇게 코스튬을 하고 나니까 조금 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제가 누군지 다 모를 테니까요. 나중에는 '같이 사진 찍으실래요?', '오늘 너무 예쁘게 하고 오셨어요. 누구 코스튬 한 거 맞죠?' 같은 말을 제가 먼저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도 열린 마음으로 누구한테 다가갈 수 있구나' 하고 틀을 깰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만약 코스튬을 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못 즐겼을 것 같아요."

"내가 갔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작년 핼러윈 당일, 승연씨는 이태원에 가지 않았다. 코스튬을 했던 그 시절에 비해 나이가 들어 부담스러웠던 한편,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열리는 축제였기 때문에 인파가 몰릴 거라고 예상했다. 대신 친구들과 조용히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미리 정했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그 다음 노래방으로 함께 이동했다.

"노래방이라는 공간이 그렇잖아요. 휴대전화를 계속 보고 있을 수도 없고, 벨소리나 진동을 느끼기도 힘들고. 그러다 친구 한 명이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길래 무슨 일 있나 카톡을 열었더니 이태원 상황이라고 메시지가 와 있더래요. 그 사진 몇 장을 보았는데, 뭔가 큰일 났다는 걸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진이었어요.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된 거지? 야 다들 휴대전화 봐봐'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전부 연락이 와 있던 거예요. 주변 친구들이라든지, 엄마, 아빠라든지. 상황을 빨리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봤더니,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랑 친구들은 먼저 집에 연락을 취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뭔가 잘못된 것 같으니까 일단 연락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

그날 새벽,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승연씨도 적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승연씨가 이태원에 자주 가는 걸 아는 지인들이었다. 행여나 이태원에 가 있을까 봐 애타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누군가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누군가는 끝내 가슴을 쳐야 했다. 승연씨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제가 본 사진들이 다 여성분들 사진이었어서, 처음에는 클럽 같은 데서 안 좋은 일을 당한 줄 알았어요. 애초에 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뉴스 보니까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당한 사고더라고요. 되게 복잡했어요. 내가 갔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렇다고? 단지 사람이 많아서? 저도 경험을 해봐서 대충 알잖아요. 그런데 그때랑 느낌이 달라서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태원에 놀러온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는지, 승연씨는 내내 안타까움을 표했다. 참사 이후 희생자들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안타까웠어요. 대체로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놀고 싶은 마음에서 왔을 텐데, 그냥 그날 하루 놀려고 왔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노는 게 뭐라고 여기 와서 그랬을까. 진짜 너무 안타까웠어요. 솔직히 왜 비난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놀려고 왔던 거잖아요.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못 놀았겠어요. 저는 사람들이 많이 참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날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생각하고요."

참사 이후 이태원을 찾는 마음이란

비난 이면에는 이태원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존재했다. "코로나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거기까지 가서 노냐",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줄도 모르고 갔냐" 승연씨가 한동안 이태원을 찾지 않은 까닭도 비슷하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태원에 가냐고 할까 봐 눈치가 보였다. 다시 이태원을 찾는 데에는 그런 부담이 따랐다.

"온다고 하더라도, 조금 떨어진 해방촌이나 경리단길 쪽으로 갔어요.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이태원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정도면 금방 회복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사회적인 시선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들한테 오늘 이태원에서 약속 있다고 하면 이태원 괜찮은지 먼저 물어보는 거예요. 이태원에 가면 안 되는 거 아닌데. 아마 걱정도 있을 테고, 상권 다 죽은 거 아니냐는 뜻도 있을 테고요."

이태원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승연씨 역시 그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상권이 점점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며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도 매번 비슷하게 이어졌다. "애들 정말 안타까워…", "애들 어린데, 놀러온 건데…" 승연씨는 이태원 일대를 지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을 한 번씩 들여다보았다.

"저는 그런 식으로 애도하는 것 같아요. 저만의 방법이 그런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슬프긴 한데, 눈물까지 나진 않거든요. 그래도 마음이 미어져요. 안타까운 게 너무 커서. 뭔가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을 가질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 같아요. 씁쓸했어요. 다들 놀고 싶어서 왔는데 그러지 못했고, 사회가 지켜줄 줄 알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랬어요. 여러모로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슬픈 사건, 슬프지만은 않은 애도

참사 이후 정부에서는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기도 했다. 승연씨는 이에 대해 "괜찮았던 것 같다"라고 평했다. 물론 그에 앞서 "잊으라는 건 아닌데"라고 전제했다. 이태원에서 놀던 기억이 너무 좋았던 만큼 승연씨는 언제 다시 이태원에서 그렇게 재밌게 놀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마음의 전제 역시 다르지 않을 거다.

"이태원이 다시 자유로운 모습으로 활기를 찾기를 바라요. 물론 슬픈 사건이긴 하지만, 이태원에 간다고 하면 그냥 가볍게 '그래 재밌게 놀다 와'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서 노는 문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여기만의 색깔이니까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슬퍼하는 식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방법으로 이겨 나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애도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결국에는 찾아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슬픈 건 슬픈 거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건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 같아요."

승연씨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 사회 환경이 바뀌어야 하고, 참사의 원인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는 건 승연씨 기준에서 안일한 판단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같은 일은 언제든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오래 끌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사과할 거 빨리 사과하고 받아들일 거 빨리 받아들이고 해결할 거 빨리 해결하고 회복하는 데 힘을 썼더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큰 틀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사람들 인식도 안 바뀔 거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모두를 위한 길 아닐까요?"

그렇다면, 승연씨는 그런 변화에 대해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제도에 대한 변화는 크게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작은 변화는 있었겠죠. 그런데 과연 시민들이 그걸 직접 체감할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에요. 그리고 이태원 상인 분들이나 주민 분들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정작 여기 놀러 오는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크게 힘이 닿지 않는 느낌이에요. 싱권 안에서도 뭔가 같이 살아나가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잘 되는 곳만 잘 되는 느낌이 있어요. 좀 더 다 같이 윈윈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용산구에서도 노력해야 할 것 같고요."

"좀 잘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한편, 승연씨는 모든 질문에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생각했을 때는…" 승연씨가 바라본 사회는 둘로 나뉘는 것 같았다. 유가족의 슬픔과 누군가의 생활은 왠지 쉽게 대립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그 중간 입장을 밝히기란 너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승연씨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처음 인터뷰를 수락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승연씨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돌아온 승연씨의 답에서 그간의 고충이 묻어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너무 한 사람 입장에 치우치지 않았나 걱정이 조금 들어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사람들이 많은… 많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한 거니까 좀 잘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입니다."

- 인터뷰어 : 심나연 / 촬영 : 홍다예 / 인터뷰이 : 정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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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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