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만난 흰둥이한국 자동차가 바르셀로나에 한 달 넘게 무사히 주차되어 있었다
오영식
2014년 10월 7일 아침 7시 무렵, 아들이 처음 세상에 나오던 날이 생각났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9달 동안이나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쭈글쭈글한 게 생각보다 안 예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본 우리 아들의 얼굴은 몇 달 동안이나 물속에 있던 쭈글쭈글한 피부가 아니라 목욕을 갓 하고 나온 아이처럼 아주 뽀송뽀송하게 예뻤었다.
마치 그때를 보는 것처럼 흰둥이는 아주 우아하게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거친 비포장도로에서도 우리 부자를 지켜줬던 흰둥이를 먼 외국에 혼자 남겨뒀다는 사실에 나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주차된 모습을 보니 '잃어버린 아이를 몇 달 만에 만난 부모' 같은 마음이 들었다.
"흰둥아! 고생했다. 미안해. 얼른 같이 가자."
차에 타 혹시나 하며 시동을 걸자,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한 번에 시동이 걸렸다. 작년 여행 출발 전 방전에 대비하려 캠핑용 배터리로 교체해 놓은 게 효과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스페인 경찰들의 특별관리를 받은 한국 자동차
다음 날 오전에 혼자 숙소 주변 거리로 나왔다. 작년에 라트비아 국경에서 가입한 자동차 보험기간이 만료돼 차를 운전하기 전에 빨리 보험회사를 찾아 새로 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하지만, 지도를 검색해 찾아간 보험사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그런 보험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외국인 자동차 보험은 그런 보험에 가입할 만한 사람들이 있는 국경에서만 판매하는 것 같았다. 난감해하던 차에 경찰 제복을 입은 여성분이 보여,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요?"
"저는 한국 사람이고 지금 자동차 여행 중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아들이 아파서 한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왔는데 보험 보증기간이 끝났어요. 그래서 다시 가입하려는데 보험사를 못 찾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같이 찾아볼게요"
엠마라는 이름의 여성은 경찰이 아니라 주차단속 직원이었고, 함께 다니며 보험사를 몇 군데 더 돌아다녔지만, 모두 그런 종류의 보험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엠마가 우리 앞을 지나가던 경찰차에 다가가 무언가 말하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한 경찰관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차가 흰색 SUV인가요?"
"네, 맞아요."
"천정에 루프박스가 있고, 앞 유리에 'ROK'라고 쓰여 있는 차인가요?"
"네, 맞아요. 알고 계시네요? 저는 아들과 작년에 러시아에서부터 이곳까지 한국 자동차를 운전해서 여행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파서 잠시 한국에 돌아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그러자 그 경찰관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여러 장 보여줬다. 사진에 찍힌 차는 주택가 주차장에 주차된 우리 흰둥이였다. 그리고 경찰관이 말했다.
"한곳에 오래 주차되어 있고 번호판도 특이해서 매일 순찰하며 지켜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