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사건 '의인' 민주시민감사패 수상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 명동성당에서 열려

등록 2007.05.19 14:46수정 2007.05.20 11:14
0
원고료로 응원


a

감사패를 받고 있는 한재동씨 ⓒ 이정환

1987년 영등포교도소에서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담은 쪽지를 세상에 전달한 한재동 전 교도관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18일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미사에서 한씨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으로부터 민주시민감사패를 받는 순간, 명동성당은 역사의 그늘에 숨어 있던 '의인'에게 쏟아지는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이날 기념미사를 주례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병상 신부는 먼저 강론을 통해 "20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광주항쟁 7주기 추모식이 있었고, 추모식 끄트머리에 이제 고인이 된 김승훈 신부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는 성명서 발표에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며 "이날의 성명서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만든 결정적 계기이자 기폭제 구실을 했다"고 의의를 되짚었다.

이어 김 신부는 "6월항쟁은 평범한 사람들이 촉발시킨 국민항쟁이었으며, 과감하게 자신의 굴레를 깨고 나온 보통 사람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면서 "민주는 이 분들의 피를 먹고 태어난 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최근 10년은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지만,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좋아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꽃 한 송이가 피어야 봄인가,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 주변에 소외되고 억눌린 이웃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몇 송이 꽃이 피어났을 뿐,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고 현 사회를 진단했다.

그리고 김 신부는 "당시 성명서 발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한재동 교도관이었다"며 "당시 한 교도관의 행위는 자신의 행복과 인생 전체를 걸고 했던 용기 있는 것이었다"면서 "그의 용기가 없었다면 박종철 사건의 진실은 한참 후에 밝혀지거나 6월 항쟁 또한 그만큼 늦어질 수 있었다"고 한재동씨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진 민주시민감사패 증정식에서 한재동씨의 이름이 호명되자,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a

6월 항쟁 20년 기념미사가 열린 명동성당 ⓒ 이정환

"한재동님은 한 젊은이의 죽음이 헛되이 묻히지 않도록 두려움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감옥으로부터 '진실한 소식'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위대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을 일으키신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이름 없이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하고 기여하신 모든 민주 시민의 정성을 모아 감사패를 드립니다". 200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드림

낭독이 끝나고 한씨가 감사패를 받자 축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부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을 만큼, 성당 안은 한씨의 20년만의 '외출'을 기뻐하는 분위기로 넘쳐 났다.

한씨는 수상 소감을 통해 "그동안 벌만 받고 여기저기 쫓겨다녔는데,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동료들과 함께 받아야 될 상인데, 나만 받아 죄송할 따름이다.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간단히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에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내빈 인사를 통해 "우리 시대 성실하게 사는 삶의 이야기가 바로 성서"라며 "한재동 교도관 같은 분이 우리 시대의 천사"라는 말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날 미사에서는 이어 박종철 사건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과정을 정리한 보고서(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 작성)가 이명준 87년 당시 국민운동본부 천주교 집행위원에 의해 발표됐고,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 외 성체성가가 불려졌다.

6월민주항쟁20년사업 천주교추진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관했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했다.

다음은 이날 미사에서 '같은 길로 나아갑시다. 5·18 광주항쟁을 함께 기억하며'란 제목으로 배포된 김병상 신부의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미사 강론'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a

기념미사를 주례한 김병상 신부 ⓒ 이정환

저는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미사를 거행하는 이 자리에 서면서 기쁨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회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제 1987년으로부터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6월 민주항쟁의 봉화를 올렸던 5·18기념미사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민주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대다수 국민은 슬픔도 노여움도 상실하고, 희망도 전망도 상실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은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반도덕적인 정권에 맞서 함께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모두 이제 내가 던진 돌에 내가 맞는 형국이 된 것은 아닙니까? 나 스스로 독재정권을 향해 맞섰던 힘이었던 도덕적 정당성을 이제는 박물관에 전시하고 과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우리네 민중을 시장의 지배에 맡겨두면서 공동체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의 박제화된 정신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와도 같은 역사의식, 시대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양한 가치관의 혼재 속에서 열정도 의지도 상실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편향적이고 몰가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총체적 인간입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인간이 아닙니다. 현재의 상실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던 같은 길로' 나아가는 희망으로 연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편에 선다는 위정자 여러분! 심화되는 양극화와 가치 혼란 그리고 이합집산의 여전한 정치적 혼돈은 성년식을 치르는 6월 항쟁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보지 않고 정치적 이익만을 계산하는 이기심은 5·18 민중항쟁과 6월 민주항쟁 정신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민주화 정신의 배반자는 그 누구도 희망을 줄 수 없고, 그 어떤 선포와 증거도 역사의 흐름을 또다시 왜곡할 것입니다. 그러한 배신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하 생략)


"나 혼자 뿐이라니까 조금 그러네"
'혹시'했지만 '역시'였던 한재동씨와의 만남

ⓒ이정환

'혹시' 했지만 '역시'였다.

6월 항쟁 20년 기념 미사가 열리기 전에 명동성당 앞에서 한재동씨를 만났다. 특별한 기대를 갖고 수상 소감을 물었지만, 무덤덤한 말투는 여전했다.

입으로는 "좋다"고 하면서도, 정작 얼굴에서는 '기쁨'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가 해방구 아뇨. 87년도에 자주 왔었다"는 말을 통해 잠시 한씨의 '감회'를 엿볼 수 있는 정도였다.

"(소감을 다시 묻자) 상이야 처음 받아 보니까 좋죠. 대충 하세요. 조금 원래 제가 감정이 둔해요(웃음). 다만 나 혼자뿐이라니까 조금 그러네."

무덤덤하기는 성당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사 도중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재동씨를 향한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터졌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감사패를 받고 잠깐 나타난 미소가 전부였다.

이 날 한씨는 수상 소감을 통해 "동료들과 함께 받아야 될 상인데, 나만 받아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나 혼자 뿐이라 조금 그렇다"는 말의 의미를 그나마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 '무덤덤한' 한씨와의 '대화'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 이정환
#6월민주항쟁 #광주민주항쟁 #한재동 #박종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2. 2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3. 3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4. 4 갑자기 '석유 브리핑'... 가능성 믿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다니
  5. 5 탄핵 언급되는 대통령... 한국 외교도 궁지에 몰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