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에서 만난 선비들의 풍류

[대관령을 넘어 관동 땅으로 ②] 강릉 선교장의 봄

등록 2013.07.23 10:27수정 2013.07.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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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한사(寒士)로다

 매화꽃 핀 선교장
매화꽃 핀 선교장이상기

강릉 선교장을 찾은 것은 지난 4월이다. 매화꽃이 한창 피어나던 때다. 옛 시조에 매화는 한사(寒士)로 표현되어 있다. 한사란 차가우면서도 고결하고 기품 있는 선비를 말한다. 그리고 옛 선비들은 꽃 중에 매화를 으뜸으로 쳤다. 그것은 봄에 찬 서리를 뚫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기는 또 어떤가? 그래선지 꽃 중에서는 매화를 노래한 시가 가장 많다. 고봉 기대승(奇大升)도 남쪽 고향을 생각하며 매화를 떠올린다.


멀리 남쪽 고향언덕 생각하니 온통 매화로다.   遙憶南園樹樹梅
흰 눈 앞에 누가 그윽한 향내 맡고 오려나        雪前誰嗅暗香來
남은 생을 생각해 연말에는 돌아갈 것이니       餘生歲暮當歸去
초가집에 대나무 울타리 아직도 남아 있으리.   茅屋篁籬尙未頹

 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이상기

선교장 터에 자리 잡은 사람도 강릉으로 낙향한 이내번(李乃蕃: 1709-1781))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의 11대손으로 가선대부를 지냈다고 하는데 그 행적을 확인할 길이 없다. 무경(茂卿) 이내번은 한사였기 때문에 재산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안채와 부엌 정도 짓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집이 아주 서민적이었다고 한다. 이 선교장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00년대 들어서다.

선교장의 과거 이야기

1815년(순조 15년) 이후((李垕: 1773-1832)가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을 지었으며, 이때 연지를 파고 그곳에 정자인 활래정(活來亭)도 지었다.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에 보면 이후가 1813년 진도군수를 지낸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열화당과 활래정은 이후가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에 살면서 지은 것이 된다. 당시 그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모양이다. 그는 재력가답게 구휼과 보시에 앞장섰고, 관동을 유람하는 선비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열화당
열화당이상기

열화당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다섯 번째 행 첫 자 열(悅)과 마지막 자 화(話)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열화는 가문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돌아가련다.                                               歸去來兮
청컨대 세상과 교유하지 않고 떨어져 살련다.   請息交以絶遊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게 맞지 않으니                世與我而相違
다시 벼슬길에 올라 그 무엇을 구하리오.         復駕言兮焉求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겁게 살고              悅親戚之情話
가야금과 글을 즐기며 근심을 잊으련다.          樂琴書以消憂 

 활래정
활래정이상기

열화당이 주인의 생활공간이었다면 활래정은 주인의 풍류공간이었다. 연못가에 활래정을 짓고 시인묵객을 초청, 경포호수를 바라보며 시를 짓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의 문집 <운석유고(雲石遺稿)> '활래정기(活來亭記)'에 보면, 활래정이라는 편액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동지방에는 물이 많아 바닷가에 호수가 십여 개나 된다. 그중 경(포)호가 으뜸이다. 경호의 둘레는 삼십 리나 된다. … 금년 가을 형님이 와서 말하길래, 농장의 왼쪽에 둑을 쌓고 물을 가두었다. 돈을 들여 연못에 연뿌리를 심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정자를 세우고는 주희의 시 '활수래'의 뜻을 따라 활래라는 편액을 걸었다. 嶺東多水 濱海而湖十數 鏡湖爲最 環鏡湖三十里 … 今年秋 伯兼來言 於庄左築堤而貯水 以錢塘蓮種之 置亭其上 取晦翁詩活水來之義 扁曰活來"

 월하문
월하문이상기

여기서 '활수래'는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물을 말한다. 주희의 시 '관서유감'의 한 구절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활래는 오는 사람을 반기는 사교적인 즐거움이다. 그런 점에서 이후는 가정적이면서도 사교적인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 100년쯤 지난 1906년(고종 43년) 그의 증손 이근우(李根宇)가 활래정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우리는 연못의 동쪽 월하문을 통해 활래정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월하문도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가도(賈島)의 유명한 시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이 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활래정은 개방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안에 걸려있는 편액들을 볼 수가 없다. 그곳에는 운석 조인영, 오천 정희용 등 문장가와 추사 김정희, 해강 김규진 등 서예가의 글과 글씨가 걸려있다고 한다.  

선교장의 현재 이야기

 선교장 입구 대문
선교장 입구 대문이상기

선교장 입구의 대문에는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큰 편액이 걸려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자가 문제다. 뫼 산(山)에 높을 고(高)도 아니고 큰나무 교(喬)도 아닌 특이한 글자다. 나는 이것을 산길 교(嶠)로 이해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아래 오른쪽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배다리 장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또한 이강륭(李康隆)이라는 주인장의 문패가 걸려 있다.

이 문을 들어가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는 1748년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진 건물이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아 보였으나, 나중에 동별당과 서별당을 지으면서 선교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안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내부로 들어서면 안채 앞쪽으로 안뜰이 있으며, 그 뒤로 대청과 방, 우측에 방과 부엌이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ㄷ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정부인이 사용하는 안방과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 건넌방에는 큰아들과 며느리가 살았다. 오른쪽에는 안살림을 돕는 찬모들의 거주 공간이다. 부엌은 안채의 양쪽에 있다.

 열화당 평면도
열화당 평면도선교장

열화당은 남자 주인이 거처하던 사랑채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ㄱ자형 건물로, 정면 2칸에 대청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사랑방 2칸, 침방 1칸, 누마루 2칸이 있다. 선교장 건물 중 가장 개방적인 공간으로 외부 손님들에 대한 접대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열화당 건물 앞에는 특이한 형태의 차양(遮陽)이 보인다. 동판(銅板)을 너와처럼 이은 햇볕가리개 구조물이다. 조선 말기에 들어온 러시아식 건축양식으로, 러시아 공사관이 선물로 지어 준 것이라고 한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동별당은 주인 전용의 건물이다. ㄱ자형 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것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선교장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여 조선 후기 부유한 양반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살림살이도 옛날 강릉 사람들의 생활풍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릉지방의 전통음식을 맛보러 인근 서지마을로 가

 서지초가뜰
서지초가뜰이상기

나는 건물을 나온 다음 장원을 지나 연못 쪽으로 간다. 연못을 지나면서 보니 화강석으로 만든 솟대가 보인다. 솟대는 대개 집 또는 신성한 곳의 입구를 표시하는 상징물이다. 나는 선교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난곡동에 있는 서지(鼠池)초가뜰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강릉에는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선교장 터를 잡게 해 준 것이 족제비 무리라고 하는가 하면, 창녕 조씨가 자리 잡은 마을도, 쥐가 곡식을 모아 보관하는 형국인 서지라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서지초가뜰은 창녕 조씨 종가댁으로 농사를 지으며 해 먹던 전통음식을 재현해 팔고 있다. 모내기 때 먹던 음식은 모밥이고, 단오 후 잠시 시간이 날 때 만들어 먹던 음식은 질상이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국과 장류 그리고 나물이 중심이 되는 강릉의 향토음식이다. 그리고 동해바다에서 나는 황태를 이용한 음식도 있다. 디지털 강릉문화대전에도 소개된 집이다.

 홍운탁월 담벼락
홍운탁월 담벼락이상기

음식점을 나오면서 보니 담벼락에 홍운탁월(烘雲拓月)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구름에 비춰 달을 그려낸다'는 뜻으로, 2008년부터 강원도가 실시한 관광 프로젝트명이다. 달에 해당하는 강릉을 드러내기 위해 구름에 해당하는 관광인프라를 특화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관광인프라로는 문화유산, 민속, 음식, 길이 있다. 현재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은 서지마을의 향토음식 외에 강릉 초당두부가 있고, 요즘 새롭게 부각되는 안목항의 커피가 있다.

강릉의 문화유산으로는 임영관, 신복사지, 굴산사지, 한송사지가 있다. 그리고 관동팔경의 제1경 경포대와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이 유명하다. 민속으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릉단오제가 있다. 길로는 크게 보면 강릉 바우길, 작게 보면 대관령 옛길이 유명하다. 강릉 출신의 인물로는 율곡 이이와 고산 허균이 있고, 조순과 같은 경제학자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진보적인 지식인들로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왕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조순 교수도 경제부총리를 거쳐 서울시장까지 한 진보적인 인사다.  
#선교장 #열화당 #활래정 #이후 #서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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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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