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가 딸의 결혼을 허락했던 날을 회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유성호
2022년 10월 29일. 주영씨는 설레는 얼굴로 집을 나섰다. 2주 동안 출장을 다녀온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날이었고 함께 웨딩드레스를 보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아빠는 손흥민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갑자기 부산해졌다. 아빠는 딸 남자친구 목소리가 들리는 휴대전화를 황급히 건네받았다.
"주영이가... 주영이가..."
"무슨 일이야? 침착하게, 차분히 이야기해!"
아빠는 순간 교통사고가 난 걸로 생각했다. 근데 딸 남자친구 입에서 병원 이름이 아닌 "이태원"이 튀어나왔다.
"이태원으로 오셔야 해요!"
"갑자기 웬 이태원이야? 정신 차리고 병원 이름 이야기해!"
뭔가를 찾아보던 아들이 "일단 이태원에 가야 한다"며 부모님 손을 이끌었다. 그때 처음 아빠는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태원으로 가는 동안 아빠는 '괜찮을 거야'란 생각을 되뇌었다.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인근에서 클럽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들었을 때도 아빠는 큰일이 아니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자꾸 몰려왔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고 아빠는 고함을 치고 인파를 뚫고서야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빠는 해밀턴호텔 빈 상가의 통유리 너머로 딸의 모습을 확인했다. 남자친구는 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끌어안고 울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을 막아 세우는 경찰과 소방관, 의료진을 향해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고 외쳤다. 딸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아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딸을 이송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병원에 가겠구나' 생각하며 구급차를 따라나섰는데 도착한 곳은 체육관(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이었다. 그제야 딸의 죽음을 인지한 아빠는 무너지고 말았다.
아빠를 비롯한 가족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이 트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물어보고, 아무리 기다려도 딸을 만날 수 없었다. 또 한참이 흘러서야 "한남동주민센터에 가서 실종신고를 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부모가 여기 와 있는데 무슨 실종신고냐"는 항의도 소용없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실종신고를 한 뒤 아들의 설득 끝에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수소문 끝에 늦은 오후가 돼서야 딸을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곧장 병원에 도착했지만 전혀 연고가 없던 의정부에서 딸을 데려오는 것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경찰은 검사의 승인을, 검사는 대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검사는 부검 이야기도 꺼냈다. 늦은 밤에야 가족은 딸을 옮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어요. 순식간에 아이를 잃고 제대로 판단조차 할 수 없던 상황에서 이리 불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그나마 이태원에서 아이를 발견한 저희는 괜찮은 편에 속했더라고요. 그렇지 못했던 유족들은 사방팔방 쫓아다니면서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찾아다녔더라고요.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가가 참 무능력했죠. 우리보다 더 갈팡질팡, 우왕좌왕 했던 거예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말이 딱 맞아요."
아빠의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