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조차 않는 북한전문가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9> 최평길 교수의 <동아일보> 시론에 부쳐

등록 2002.12.09 14:39수정 2002.12.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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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가 터지고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냉각되자 민족대결을 부추기던 언론은 살맛이 났지만 북미간 긴장국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은 이들에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경의선, 동해선 연결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북한 당국과 유엔사간의 신경전으로 지체되었고 '냉전 언론'은 이를 반기면서 북측을 비난해 댔다. 군사분계선 월선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 상황을 보고 개성공단의 조기착공은 이제 힘들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북한은 약속했던 대로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 공표했고 그 내용도 대부분 남측이 요구한 것들을 수용했다.

기대했던 남북관계 정체국면은 안오고 개성공단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은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자 당연히 냉전 언론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성공단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비관적 해설기사를 싣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북한전문가는 신문 기고에서 개성공단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11월 29일자 <동아일보> 시론에 실린 연세대 최평길 교수의 '북 경제특구 성공하려면'이라는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북을 비난하는데 열중해온 대표적 학자인 최 교수는 이제 막 알려진 개성특구법을 별 전망 없는 불투명한 사업으로 간주하고 애써 그 의미를 반감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최 교수는 북한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아련한 기억에만 의존해 그야말로 성의 없는 글을 쓰고 말았다.

최 교수는 북한연구자로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을 틀리게 적고 있다. 물론 개성공단식 남북경협을 평가절하하는 자신의 논지전개와 직접 관련된 오류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 북한전문가로 불리우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북한이 최근 취하고 있는 경제특구를 설명하면서 최 교수는 동북지역의 장소로 '청진과 신포'를 거론했으나 이는 무지의 소산이다. 잘 알려진 대로 북한의 동북지역 특구는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된 라진선봉 지역인데 이를 최교수는 청진과 신포로 혼동한 것이다. 일부에서 특구 예정지로 남포와 원산, 함흥 지역이 거론된 적은 있으나 청진과 신포가 특구라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 특히 신포는 KEDO가 추진하고 있는 경수로 건설공사가 진행중인 곳이다.

또한 최 교수는 북한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최고권력기관으로 '군사위원회'를 설명하고 있으나 이 역시 국방위원회와의 혼동에서 비롯된 착오이다. 북한의 중앙군사기구로는 노동당의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가기관 부분에 국방위원회가 있는 바, 최근 시기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반면 김정일 총비서가 위원장인 국방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교수는 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군사위원회'가 최고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잘못 적고 있다. 오히려 군사위원회는 최근 개최 사실이 확인된 적이 없고 군사위원장직도 아직은 공석으로 되어 있다.(통일부, <2001년 북한기관단체별 인명집>)

또한 최 교수는 칼럼에서 '남북협의를 통해 특구경제 활동을 보장하는 규약을 과거 남북교류협력규정에 따라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른 서술이다. 북한의 특구 관련 법령은 뼈대가 되는 수개의 법과 다양한 '시행규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에도 '규약'이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또 최 교수가 거론하고 있는 과거 남북교류협력규정이라는 것도 금시초문일 뿐더러 아마도 1992년 기본합의서 채택에 따른 '경제교류협력 부속합의서'를 의미하는 듯 하다. 정말 고유명칭 정도는 귀찮더라도 사실확인을 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최교수는 북한이 서해교전 이후 유감표명으로 쌀 30만톤을 받아냈다면서 이같은 도발 후 원조 획득이라는 북한식 전략에 놀아나서는 안되다고 적고 있으나 여기서도 그의 오류는 바로 나타난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의에서 합의한 대북 쌀지원은 30만톤이 아니라 40만톤이다. 정말이지 사소한 사실인식마저 결여된 최 교수의 칼럼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국내 유력 일간지에 북한전문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것은 그에 따른 최소한의 책임성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주장이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에 딴지를 거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주장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실 확인에서 오류가 나타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번 최 교수의 칼럼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곳곳에서 사실과 다른 엉터리 내용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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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최정은

기대와 달리 북한이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하고 개성공단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듯 하자 민족 대결에 익숙한 최 교수로서는 이를 서둘러 폄하하려했고 이 과정에서 의도가 앞선 탓에 북한전문가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사실확인마저 생략하는 대담함을 보인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의 주장 즉 경제특구가 성공하려면 북한의 군사우위 체제가 변화해야하고 이를 위해 남북군사회담이 성사되어야 한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독자들에게 '횡설수설'로 들릴 뿐이다. 기본 사실에서조차 오류 투성이인 불성실한 북한전문가의 주장에 누가 귀기울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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