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의 변화를 바라며

"노사모의 아름다운 퇴장은 끝이 아니라…"

등록 2002.12.24 15:00수정 2002.12.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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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노사모 그리고 모든 회원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한 회원으로서 '노사모의 아름다운 퇴장'을 주장하는 글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올립니다. 그렇지만 '노사모의 아름다운 퇴장'은 또 하나의 '감동 있는 정치'를 이루기 위한, 그리고 우리들의 초심을 지켜나가기 위한 '단호함과 결단의 정치'라 믿기에 제 나름을 생각을 전합니다.

목적을 다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퇴장

현재 노사모의 변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노사모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적을 이뤄냈기 때문에 노사모의 퇴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노사모의 결성 목적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노풍이 기성의 정치 질서에 도전하기 시작한 후 그리고 대선을 목전에 앞두고 개혁의 향도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는 당면 목표에 힘을 보태신 분들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가 궁극적 목적이라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노사모의 퇴장'을 주장하는 것은 노사모를 자발적으로 결성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 사회의 개혁을 더욱 힘차게 추진하고 후원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많은 분들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 하십니다. 맞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개혁의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을 뿐이며, 이제부터 대오를 꾸려 개혁의 대장정을 떠나야 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과거에도 개혁을 위한 몸부림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개혁의 일꾼들이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차고 개혁의 장정에 뛰어들었고, 결국 그것이 굴레에 되어 개혁의 도정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전도는 험난하겠지만 이제야 우리들은 개혁이라는 대장정의 출발선에 아무런 굴레없이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개혁!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며,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가 틀어쥐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하나됨을 이뤄내야 하며,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성장위주의 경제발전이 낳은 계층간의 갈등을 분배의 정의로서 해소해야 하며, 치열한 경쟁에 의해 멍들어 버린 우리 사회의 인간미와 도덕성을 회복해야 하며, 세계사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을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혁신해야 합니다.

개혁의 지지와 후원은 절실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개혁의 장정을 걸어가는 동안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에서 수혜를 받던 사람들 중 일부는 개혁의 흐름에 쉽게 동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개혁의 지지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대통령 일인의 힘만으로는 수많은 개혁의 과제를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담당자이자 적극적인 후원자인 노사모 회원들은 진지하고 냉정하게 개혁에 참여하기 위한 올바른 방도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개혁- 권력의 형성과 행사의 제도화와 공개화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권력의 형성과 유지는 제도화되고 공개화'되어야 하며 권력의 행사 또한 '공개되고 투명' 해야 합니다. 국민의 합의와 법에 의해 공인되지 않은 비공식적 권력이 국민적 바램과 합의를 앞질러 권력의 행사에 개입하는 전근대적 정치질서를 '공개적(글라스노스트) 이고 투명한 민주적인 정치질서'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개혁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권력은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적 합의에 근거할 때 비로소 그 본분을 다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점은 개혁을 원하는 우리 노사모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적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또한 절실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정치권력이 되어버린 거대 수구언론이 건재하고, 지연과 학연을 배경으로 자기 이해를 실현하려는 집단과 그들의 '죄없식 없는' 관행은 뿌리 깊습니다.

그들은 정책을 통해 공개적으로 개혁에 반대할 수도 있고 음성적으로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개혁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성공적 개혁의 필요조건입니다.

노사모, 그 깃발로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렇지만 노사모의 이름을 내걸고 우리의 초심을 어떻게 지키내고 발전시키며, 개혁을 지지·후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노사모'라는 깃발은 그 자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노사모를 결성할 때의 우리들의 초심을 지켜내기에는 여러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다소 거치나마 몇 가지의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이 되고 나면 노동자 편만을 들 수는 없다. 사회 전체를 균형있게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수많은 과제들을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열정에만 입각해 본다면 '당장 개혁하고 싶은 대상'은 우리 사회에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라는 공식적 권력의 대표자는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정책을 실행해야 하며, 국민적 합의를 구하고 필요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정부 차원의 개혁은 우리의 간절함에 비춰볼 때 행동이 더디고 반응이 늦을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사모가 그 실천의 길을 앞서서 열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될 경우, 법과 제도에 기반한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개혁이 '공연한 오해' 때문에 제대로 목표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권력화한 수구언론의 왜곡과 반격에 큰 약점을 노출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을 담당한 인격체의 이름을 딴 '단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노사모는 분명한 정강과 정책을 가진 단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회원들의 이념적 정책적 편차는 아주 큽니다. 그것이 노사모의 큰 장점이지요. 그런데 노사모가 개혁의 지지자 혹은 권력의 감시자가 된다고 했을 때, 회원들간에 구제적인 정책 방향과 행동 방향을 합의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임의 성격상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매 시기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노사모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구체적인 과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 회원 혹은 각 단위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일치단결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앞으로 노사모가 개혁의 지지자와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원할히 수행하려면 매 시기마다 실천 과제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사모는 구체적 정강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발적인 회원의 모임인지라 구체적 실천 과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고 힘든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선의에 의한 논쟁이 본의 아니게 내부 갈등으로 비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대선 패배로 '핏발이 섰다'는 힘을 가진 상당수 수구세력의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개혁의 이끄는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비화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소한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노사모가 7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모두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한 분들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사모가 자발적 참여의 모임이라는 장점을 가진 단체이기에 중앙에서 지역을 그리고 회원 개인의 활동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회원이 판단 실수로 노사모의 취지에서 벗어난 행위를 할 수도 있으며, 개혁이 직면할 수많은 어려운 고비에서 그것이 과장되고 왜곡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개혁이라는 것, 질서를 바꾸는 것은 많은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신중한 행동이 아니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조용한 탈퇴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노사모가 가져온 승리와 그 감격을 떠올리면 노사모의 이름을 거두어들이는 일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개혁 과제가 산적한 이 시점에 순수성과 힘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은 자랑스런 노사모가 역사적인 개혁의 대장정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으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노사모의 변화를 주장하는 분들도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노사모의 존속을 바라시는 회원님들은 해체나 변화를 주장하는 분들께 조용한 탈퇴를 권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탈퇴하더라도 '한 회원 한 회원의 자랑스런 과거'가 '노사모의 현재'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누구도 혼자 가질 수 없고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아름다운 과거가 현실의 거대한 힘이 되어 존재합니다.

노사모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할 일을 다해서 그만 두자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우리 뜻을 실질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 희망이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 안타깝지만 담담하게 노사모의 깃발을 잠시 접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일상 속에서 개혁에 동참할 수도 있으며, 각자의 목표와 조건에 따라 점차 성숙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여러 단체나 새로운 정당에서 개혁의 일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곳에서 노사모의 정신을 전파하는 것이 또한 노사모에 담았던 우리의 바램과 정열을 살아 숨쉬게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노사모의 미래가 '존속과 해체'라는 두 극단적 대안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동안 쌓아놓은 우리의 저력을 다음 활동의 직접적인 힘으로 삼고자 한다면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역동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이제 '헌법 기관'이 된 인격체의 이름이 담긴 '노사모'라는 명칭만은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노사모의 퇴장 또 다른 감동입니다.

노사모는 일상인의 자발적인 모임입니다. 감동의 정치에 갈증을 느낀 보통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순수함을 인정받았고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노사모는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떤 분들은 과거의 좋지 않은 전례 때문에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큰 것을 이뤄냈고 현재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사모는 대통령도 무시할 수 없는 조직입니다. 그런 까닭에 더더욱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로 있는 최소한 향후 5년 간은 그의 이름이 명칭에 들어있는 조직은 스스로 그 이름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최고의 명예와 힘을 누리고 있을 때 스스로 그 깃발을 내리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정치문화의 출발을 선언하는 것이며, 또하나의 감동이 되어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노사모의 깃발이 내려지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일터에서 혹은 새로운 역동적인 조직에서 개혁의 일꾼이 되어 노사모가 영원히 살아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다시 하나의 이름, 아니 노사모의 이름 아래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개혁은 5년만에 목적지에 다다르기에는 너무나 먼 그리고 험난한 행군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노사모의 아름다운 퇴장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며 개혁된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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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와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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