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족 몰살' 글로 끝내 감옥살이
네티즌 "한국은 '무권유죄'의 사회?"

서울지법, '협박글' 쓴 네티즌에 징역10월 선고

등록 2003.05.13 20:44수정 2003.05.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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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회에 참석한 박경춘 서울지검 외사부 검사.
지난 3월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회에 참석한 박경춘 서울지검 외사부 검사.
대검찰청 홈페이지(www.sppo.go.kr)에 검사들에게 '협박성 글'을 수차례 올린 네티즌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네티즌의 글중 일부 자극적인 표현을 문제삼아 검찰에 손을 들어준 법원 판결을 놓고 인터넷에서는 '보복수사'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1일 서울지법 형사5단독 유승남 판사는 서울지검 박경춘 검사와 수원지검 김영종 검사를 협박하는 글을 15차례에 걸쳐 인터넷에 올린 김모(32, 부동산임대업)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유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했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해 3일간 14회를 게시한 다음 15일 뒤에 다시 1회 게시하는 등 수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 판사는 "인터넷 특성상 불특정다수에게 전파가능성과 파급효과가 커 모방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폭력행위'를 적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검사를 비방했다가 구속 기소(4월9일)된 네티즌에게 신속한 판결을 내린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김씨가 박 검사와 악연을 맺게된 것은 3월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월28일에도 대검찰청 '국민의 소리'에 검사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때만 해도 김씨의 글은 다른 비판 글처럼 '위험수위'를 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검사 토론회' 다음날 김씨는 갑자기 박 검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박 검사가 '주간조선' 3월6일자 편집장 칼럼("요즘 우스갯소리로 '노무현 대통령은 83학번'이란 말이 있다"는 대목이 들어있다)을 읽고 "내가 83학번인데 동기생이 대통령이 되셨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김씨는 대검찰청과 문화방송 게시판에 총 15건의 글을 남겼는데, 이중 한 건은 토론회에 참석한 수원지검 김영종 검사에 대한 것이었다.


법원, 검찰이 문제삼은 김씨의 '범죄 증거'

▲ 김씨가 '저승사자' 아이디로 대검찰청 게시판에 남긴 글

1. 다른 건 몰라도...최소한 그 학번 물어본 새끼는 사형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 새끼 이름하고 주소 아는 분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애국은 제가 할테니... (3월10일 오전 4시6분)

2. [RE] 당신 아버지 고졸이건 다 아는데...부부 싸움하다가 당신 와이프가 시아버님 몇학번이에요 그러면 어쩔라우? 다리몽둥이 부러뜨리고 싶지 않겠소? (3월10일 오전 5시13분)

3. 딴놈은 몰라도 박경춘이는 내손으로 꼭 죽인다! 니 딸년들 둘까지 한꺼번에... 밤길 조심해라! (3월10일 오전 6시39분)

4. 박경춘이를 토막낼까...아니면 신나로 태워죽일까? 여론을 수렴하여 수행토록 하겠습니다... 나도 이 나라에 태어나서 애국한번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 (3월10일 오전 7시41분)

5. 관리자...출근했으면 박경춘이한테는 꼭 좀 전해줘... 그 새끼 못죽이면 내가 자살한다고...죄송스럽게도 대학후배한테 개죽음을 당하게 되서 졸라 씁씁하겠지만... 그런 선배를 둔 내가 도저히 그 새끼 숨쉬는 거 보면 못살 것 같아서... (3월10일 오전 7시48분)

6. 박경춘이란 어떤놈이냐 하면은요... 고졸 대통령한테 학번 물어보면서 치졸한 모욕을 한 놈이구요... 주소는 아직 모르겠네요... 혹 아시는 분 있으면 꼭 좀... (3월10일 오전 7시58분)

7. [RE] 너 관리자지? 일찍 출근했구나...아까 내말 박경춘이한테 꼭 전해라! 안그러면 너도 같이 죽는다... (3월10일 오전 8시7분)

8. 도선도사...일찍 출근했으면 일이나 해...아가리 닥치고... 아니면 메일내용을 쥐새끼들한테 프린터해서 좀 돌리던지... 박경춘이한테는 꼭... (3월10일 오전 8시29분)

9. 경춘아...니 주소 동문회 주소록에 좀 올려주라...찾아봐도 없더라... 어제 오늘 수소문해서 법대후배들에게 주소록은 얻었는데 왜 주소가 직장꺼 밖에 없냐? 집주소 좀 알려주라... 여기다 올리면 더 좋고... 직장으로 갈려니까 사실 좀 겁나고... 걍 집으로 갈테니까...
아...그 때도 물어봤지만...칼이 좋겠냐....신나가 좋겠냐? 그건 니가 선택해라...
그리고 걍 니가 엉뚱한 생각 할까봐 말하는건데... 난 법학과아니고 경영학과 89학번이다... 그러니까 후배들 족치지마라... 알겠지? (3월11일 오후 6시26분)

10. 이글이 거의 10번째인데...박경춘이가 한번은 봤을텐데... 왜 주소를 안 가르쳐주지... 이번주밖에 시간없는데... 경춘이나 그 마누라 아니면 두 딸년 중....아무나 이 글 보면 주소좀 알려줘...(3월12일 오전1시15분)

11. 현직검사, '검사스럽다' 신조어 반박....정말 씨발놈들이구나! 이런 것만 욕이냐? 상대의 가장 취약한 약점을 비열하게 들춰내서 모욕을 주는건 의견이냐? 좆만한 씨방새야! (3월12일 오후2시12분)

12. 검사쉐이들! 이제 언론마다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는데... 박경춘이 얘기는 절대 안하네... 그 새끼도 좀 감싸보지? 이 새끼는 절대 용서못해! 고등학교 체육선생 미친개 이후로 제일 비열한 새끼야! (3월12일 오후4시19분)

13. 씨발놈아 우리 회사에도 함 보내라... 회칼로 목을 따줄테니까... 박경춘이 이 개새끼가 제일 나쁜 새끼인 줄 알았더니.... 김영종 이 십쌔야... 내꺼도 함 해봐... 니 마누라를 확 따먹어버릴테니까 (3월27일 오후10시35분)

▲ 김씨가 실명으로 문화방송 게시판에 남긴 글

14.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학번 물어본 박경춘이는 죽입시다! 이런 새끼는 가족까지 몰살시켜도 무죄입니다. 같이 가실 분 연락세요. (3월10일 오전4시48분)

15. 83학번... 그 새끼 서울지검 박경춘 검사입니다.... 소문 좀 내주세요... 같이 죽이러 가실 분 있으면 연락주시고.... (3월10일 오전8시42분)

"칼이 좋겠냐....신나가 좋겠냐? 니가 선택해라" "이런 XX는 가족까지 몰살시켜도 무죄" "내손으로 꼭 죽인다! 니 딸년들 둘까지 한꺼번에..." 등등 몇몇 표현에 대해서는 판결에 비판적인 네티즌들도 지나쳤다는 반응이다.

김씨 자신도 법정에서 "토론회에서 대통령을 무시하는 검사에 대해 화가 났을 뿐이지 생명을 위협할 의도는 없었다"고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고. 한 네티즌은 "그 사람도 멍청하다. 검사들은 죄인들 잡아 가두는 사람들 아닌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판결을 옹호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을 '괘씸죄 처벌' '무권유죄, 유권무죄'라고 규정,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김씨의 글에 언급된 김영종 검사의 경우 수원지검이 김 검사에게 항의메일을 보낸 여교사를 소환해 메일주소 입수경위를 조사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구속기소 → 실형선고'라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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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신기록'은 "자신들은 대통령에게 공공연히 까불어도 되고 국민들은 익명일지언정 인터넷에 한마디 잘못 쓰면 아무리 반성하고 사과해도 끝까지 추적해 실형을 때리는 사상 초유의 빠른 사건처리"라고 평했다.

박경춘 검사는 누구?

전남 완도 출신으로 서석고-연세대를 졸업한 박 검사(38)는 8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검찰과 인연을 맺었다.

2001년 2월 서울지검 외사부로 발령받은 후 같은해 11월 "안기부가 87년 남편에게 살해된 수지김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작년 11월에는 일부 재외공관 외교관들의 비자 발급비리사건을 파헤치기도 했다.

반면, '80년대의 공안검사'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의 퇴임이 결정된 지난 3월11일,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함께 김 부장을 찾아가 용퇴를 만류한 행위를 놓고 '검찰조직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손병관 기자
"인터넷에서 노무현은 '쭈글이', 이회창은 '회충알'이라고 부르고,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검사, 판사와 관련된 건만 수사하지 말고 전부 뒤져서 유사한 사건 다 실형 선고하라"는 질타도 있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www.jinbo.net) 정책국장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다고 해서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무책임한 네티즌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입증됐다"고 이번 판결에 우려를 표명했다.

사건의 단초를 마련한 박경춘 검사는 13일 오후 7시경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재판이 진행중이고, 법원이 판단한 문제이기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좀 바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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