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14주년에 부쳐

성숙한 맏형의 자세로 60년 뒤를 바라보자

등록 2003.11.10 21:31수정 2003.11.1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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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왔다. 2001년 7월 나는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관에서 있었다. 옛 소련측 검문소인 찰리 포인트는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을 맞아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3층 건물에는 수많은 동독인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장벽을 넘은 스토리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 트렁크를 개조해 장벽을 통과했고, 열기구를 이용한 사람도 있었다. 독일인들이 자랑하는 딱정벌레 차 폴크스바겐, 디자인을 차용한 동독제 자동차 트라바스의 트렁크는 우리 차로 생각하면 기아 '프라이드'의 그것보다 좁다. 여기에 세 사람이 포개져 탈출했다. 열기구를 타고 탈출한 사람은 착륙 장비가 부실해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기록영화도 보았다. 89년 가을, 동독에서 서독으로 직행하는 통로가 열리기 전 동독에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경유해 서독으로 들어가는 우회 탈출로가 열리자 수많은 남녀가 기차의 객차를 가득 메우고, 독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흥남 철수 작전에 쓰이던 미군 수송선에 덕지덕지 앉았던 한국전쟁 기록사진과 분위기가 유사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담을 넘게 만들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나왔다. 잘못된 정치 체제는 국민의 비탄을 낳고 그 비탄은 조그만 탈출구라도 있으면 총구를 비집고 뛰어나오는 법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렇다.

통일 후 14년이 지난 지금 동독과 서독은 여전하다. 국가 체제는 붕괴했지만 옛 공산당 계열의 정당은 동독 지역에서 강세다.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돈만 아는 놈들이라고 하고,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게으르다고 꼬집는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 도착하기 며칠 전, 나는 동독의 문화 수도 드레스덴 근교의 허름한 콘도에 머물렀다. 포도주에는 화이트와 레드 외에 분홍빛 투명한 로제 와인이 있음을 알려준 독일인 슈마허씨 내외. 그들은 나에게 독일 통일의 후유증을 있는 그대로 일러줬다.

콘도는 3층 건물로 절반만 사용중이다. 원래는 동독 정부에서 운영하는 목공예품 공장이었다. 통일 이후 이 공장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다. 독일 정부의 서독인 동독 이주 권장 프로그램에 따라 이들은 고향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우리 집사람이 한 나절에 할 일을 세 사람이 이틀 걸려서 한다”고 슈마허씨는 말했다. 세탁, 침실 정리, 청소 등을 위해 사람을 현지 주민을 고용하지만 작업 성과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적당히 시간 떼우고 집에 가서 맥주 한잔에 옛 동독 시절 연속극 보는 것 외에 세상살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통일이 된 후 자본주의가 동독 지역으로 물밀 듯 밀려들어온 것 같지만 실제 이에 부응하는 숫자는 전체 동독 주민의 20%선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연금제와 실업보호제, 의료보험제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은 가족 내에서 가정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다시 전수됩니다”

지금 우리가 북한에 돈맛을 가르쳐야 할 이유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경제 성장을 웬만큼 해낸 뒤 통일이 되어야지 누구 말처럼 주석궁에 국군 탱크가 진군해 노동당사에 태극기 꽂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2천만 북한 주민이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천문학적 의석 전환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북한을 경제 시스템이 존재하는 나라로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지지하고, 노무현 정부가 좀더 일관성을 가지고 평화 번영정책을 펴 나가길 기대한다.

오늘은 베를린 장벽 붕괴 14주년. 부자 나라 독일도 14년째 헤매고 아직도 해결이 안 나는 마당에 우리는 제대로 된 통합, 또는 제대로 된 1민족 2체제하에서의 공존을 위해 최소한 다음 두 세대는 투자해야 한다. 민족사에서 60년은 낙엽 한 장 떨어지는 시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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