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전하는 메시지

등록 2004.03.31 14:41수정 2004.03.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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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천을 유원지로 가꾸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때는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까 의구심이 일었다. 집 뒤로는 안양천이 옆으로는 도림천이 있지만 일년 내내 시커먼 물이 흐르는가 하면 사람들이 버리고 간 휴지며 오물까지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최근에 이곳이 깨끗한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여 좋았다.

산림이 우거진 숲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차차 나무도 심고 꽃도 피고 공도 찰 수 있는 넒은 공간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침마다 운동을 하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늘 생각했던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안양천에 넓은 운동장과 묘목이 보이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땅으로 변모되었다.

아직도 가꾸고 단장해야할 것이 너무 많지만 이만해도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쑥이 돋고 냉이가 들판을 오롯이 채우고 있는 동안 사람들의 가슴엔 향수를 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 봄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바람냄새가 이것이었을까. 야릇한 흥분이 감돌았다. 나도 쑥을 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의 손처럼 생긴 이파리는 뽀얀 솜털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으로 쑥떡도 해 먹고 국도 끓이기도 한다. 봄이면 할머니가 해주신, 콩고물 없는 시커먼 쑥떡이었지만 지금은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별히 잘 먹는 것도 없지만 잔병 없이 쑥쑥 크는 그때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들에서 나는 약과도 같은 나물을 많이 먹은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속이 냉한 사람에겐 쑥이 좋다고 하니 전혀 일리 없는 말도 아니다. 그것뿐이랴 질겅질겅 씹던 칡뿌리도 요즈음엔 건재상이나 약방 또는 길거리에서 파는 칡차에서나 그 맛을 조금이나마 음미 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시절엔 이 모든 것이 가난의 굴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이젠 사람들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는 자연의 위대함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가꾸고 실천하는 마음은 부족한가 보다. 예쁜 꽃을 보면 꺾고 싶고 한번이라도 손을 대어 보아야 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걷다가 가만히 발 밑을 살펴보게 되었다. 설핏 보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여린 보랏빛 꽃이 피어 있었다. 순간 우리집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이러면 여기 오는 사람들의 기쁨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거야. 이 꽃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가 이 꽃의 자유를 꺾어 버릴 수는 없어. 여기 이렇게 피어 있는 게 옳은 게지.

얼른 마음의 문을 수습하였다. 그러고 보니 들꽃이야기를 쓴 작가가 생각났고 거기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들꽃에 대한 사랑이 생각났다. 무너미 마을이 수몰지가 되면서 마을사람들은 일정액의 보상금액을 받고 그 마을을 떠나버렸지만 그 수많은 들꽃에 대한 전설을 사진작가에게 들려주면서 산기슭에 옮겨 심는 노인의 애정 어린 시선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언젠가 충주호를 다녀왔는데 그곳도 수몰지라고 했다. 난 이곳도 아마 그런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깊고 넓은 골짜기를 보면서 한때는 마을을 이루고 있었지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서늘했다.

인간적인 삶과 그 흔적을 들꽃에 담아 지키는 노인과 세속에 대한 미혹 때문에 들꽃에 대한 귀한 선물을 결국 버렸던 사진작가.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과 개발이라는 아픈 상실의 이야기였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들꽃 같은 '벙어리' 소녀의 맑고 순수한 사랑은 등나무의 꽃말처럼 ‘부활된 사랑’의 메시지를 품고 다시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다. 희망을 준다는 결말로 맺어졌지만 끝내 할아버지는 수몰지에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보랏빛 작은 꽃잎에서 그 흔적을 보았음일까. 폐수로 뒤덮인 이곳 물밑은 시커먼 흙으로 변해 있었지만 갈아엎고 다시 걸러내고 하여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하천만 된다면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의 공기도 한결 가시리라 생각된다.

맑은 물을 마시고 기름진 흙과 공기가 있는 곳에서 피는 들꽃은 그 빛깔도 다르리라. 맑으면서도 힘이 있고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있다면 매연이 가득한 길가의 꽃은 그 빛깔마저도 힘겨워 보인다.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여리고 작은 꽃잎에도 아름다움과 소박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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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느낀점을 수필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제이름으로 어느곳이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한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여기서 여러기자님의 글을 읽어보고 용기를 얻어 한번 지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김해등님의 글이 자극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이런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실력은 없습니다. 감히 욕심을 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엔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을만큼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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