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박 대표는 '독재의 굴레'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등록 2004.07.31 16:41수정 2004.07.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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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에서 때아닌 연좌제 논란이 한창이다. 오래전에 용도 폐기된 연좌제가 되살아나 여야간의 정쟁에 화두로 등장한 것은 묘한 일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독재자의 딸’ 이라고 공격하면 그녀를 옹호하는 측은 “연좌제가 사라진지가 언젠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냐”며 되받는다.

박 대표가 산업화를 이룬 부친의 후광은 물려받되 과실은 연좌제 반대논리로 방어하려는 시도는 상당한 효용이 있어 문제를 제기한 여당측은 연좌제에 관한한 별다른 반론을 펴지 못하고 있다.

연좌제가 사라진 마당에 아버지의 업보를 딸이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일견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그럴 듯 하기는 해도 사실에 딱 들어맞는 것 같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이 행한 독재의 질곡에서 박 대표 자신도 피해갈 수 없는 ‘덫’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 대표가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 후에 한 역할을 기억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 때부터 79년 10.26사건으로 박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단순히 ‘박정희의 딸’ 정도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어머니 육 여사를 대신해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기에 당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비록 그녀의 역할이 의전 등에 한정돼 있었고 또 정책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퍼스트 레이디라는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그녀는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자식이어서 직ㆍ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박 대표에 대한 평가는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한다. 박 대표가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하면서 인권 등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조그마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다.

박 대표가 당시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노력을 한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 국민들의 뇌리에는 그녀가 부친 박 전 대통령 옆에서 외국사절 등을 맞이하는 ‘그림같이’ 우아한 자태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박 대표는 '청와대 내의 야당'으로 통했던 어머니 육 여사만큼도 세상과 국민의 여론을 아버지에게 전해주지 못했다. 그 당시 나이로선 대학을 졸업한지 오래되지 않아 뜨거운 가슴이 남아 있고 사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녀는 탐욕으로 인해 눈과 귀가 먼 아버지를 일깨워주지 못했고, 그것은 결국 10ㆍ26사태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퍼스트 레이디의 달콤함에 젖어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박 대표가 인권향상 등을 위해 노력했다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과 측근인물들의 성향으로 보아 성과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시대에 걸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민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사실은 평생 원죄로 작용할 것이며, 나아가 자질론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녀가 퍼스트 레이디로 등장한 뒤 10ㆍ26으로 역할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은 독재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책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박 대표 자신도 ‘독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박 대표가 최근 ‘친일ㆍ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 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퍼스트 레이디 당시의 역할 부족 내지 기피는 나이나 경륜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태생적 한계나 도덕적 자질부족의 결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박 대표가 차기의 대권을 꿈꾸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어두웠던 때에 시대적 소명을 일정부분 담당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유기한 사람이 과연 미래의 국가지도자로 적합할 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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