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돼지 저금통 이사 가던 날

박신양 핑크 돼지 저금통이 가져다 준 제주도 여행의 꿈

등록 2004.08.25 00:27수정 2004.08.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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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많은 신드롬을 낳고 끝이 난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박신양이 김정은에게 선물을 하면서 일약 유명스타(?)가 되어버린 <핑크색 돼지저금통>이 장안에 화제다.

드라마는 이미 끝이 났지만 <파리의 연인>이 남긴 흔적들은 아직도 인터넷과 거리에서 날개 돋친 듯 활개를 치고 있다. 김정은의 패션 스타일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서 극중의 박신양 말투와 대사를 흉내내는 남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기업의 마케팅에도 이들의 유행을 뒤따르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박신양은 극중 협찬사의 자동차회사 자동차 모델로 기용되었는가 하면, 드라마 주인공들의 대사가 광고 문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비록 유명연예인을 광고에 사용할 수 없지만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박신양 핑크돼지 저금통>을 활용해서 파리의 연인 특수를 누려보고자 하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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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판매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명 박신양 돼지 저금통 ⓒ 이인우


지난 주말 한 친구의 식당 개업식에서도 커다란 돼지 저금통을 기념 사은품으로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는데 남녀 연인끼리 온 손님들에게만 주는 것이지만 특별히 내게 주는 이유는 빨리 결혼을 하라는 이유에서란다. 순간 움찔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의 내 모습은 스스로도 눈에 띄었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스스로가 왜 그렇게도 느꼈는지는 아마도 핑크색 돼지저금통이 가지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이미지를 내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돼지저금통을 든 내 모습이 남들의 시선에 초점이 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나는 열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큰 누님댁으로 발길을 향했다. 조카에게 저금통을 주고 갈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친구의 식당 개업 선물로 받은 박신양의 돼지 저금통은 조카 녀석의 거대한 저금통이 되었다.

저금통을 들고 집에 들어서자 누님은 "마침 하나 사려던 참인데 잘됐다"면서 그동안 모았던 몇 마리의 돼지들을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박신양의 돼지 저금통으로 옮겨 넣기 시작했는데 무려 한 시간이 넘는 대규모(?) 이사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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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기르던 작은 돼지 우리와 박신양 핑크 돼지 저금통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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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토큰, 곰팡이가 난 동전까지 보인다.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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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기르던 작은 돼지 우리에서 꺼낸 동전과 지폐들 ⓒ 이인우


작은 돼지의 배를 갈라 한 곳에 모아놓은 동전과 꼬깃꼬깃 접혀진 지폐가 마치 공짜로 생긴 것인 양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는 비명을 지르는 누님의 모습이 마치 조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작은 돼지들을 큰 우리로 몰아넣는 작업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올림픽 중계프로그램을 보면서 일일이 작은 구멍을 통해 그 많은 동전을 한 곳으로 집어넣는 데는 한 시간이 소요됐는데 다 끝나고 하는 누님의 말은 "이런 일은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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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큰 돼지 우리로 동전을 옮기고 있는 누님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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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에 걸친 돼지 우리 이사 대작전의 흔적 _ 손끝이 새까맣게 됐다 ⓒ 이인우


누님의 손 끝은 동전에 묻은 때로 인해 새까맣게 됐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누님이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하나 둘씩 넣고 있는 동안 소파에 앉은 매형은 계속해서 10원짜리 동전은 은행에 가서 바꿔야만 우리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며 동전을 내일 아침 은행에 가져가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누님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매형은 "10원짜리 하나 만드는데 10원 이상의 제조 원가가 들어가는데 우리처럼 저금통에 쌓아두고 있는 관계로 한국은행에서 필요 이상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며 누님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결국 누님은 한 시간에 걸친 꼬마돼지 이사 대작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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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이 든 박신양 돼지 저금통을 들어보려는 조카 ⓒ 이인우


그리고는 조카에게 저금통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 제찬이는 저금통을 들지 못했다. 내가 들어본 느낌에도 약 10kg 정도는 될 듯했다. 꽤나 무거웠다.

"제찬아 이제 조금만 더 저금하면 내년 여름에는 제주도 갈 수 있다."
"와! 그럼 우리 내년 여름방학에 제주도 가는 거야?"
"그렇지!"
"와우!"

누님과 조카의 대화에는 이미 내년 여름 방학에 제주도 여행을 결정하고 있었다.

한푼 두푼 모은 동전이 오늘의 꿈을 내일의 희망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누님과 조카는 알고 있었다.

"제찬아! 내년 제주도 갈 때 삼촌도 데려가줘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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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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