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이 여자를 죽인 남자들

정창권 지음 <향랑, 산유화로 지다-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등록 2004.10.12 14:50수정 2004.10.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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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현재의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서는 한 여성의 자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향랑, 십대의 나이였더군요. 17세기 후반 조선의 평범한 서민층(양인) 가족의 딸이었던 향랑의 죽음은 세월따라 먼지처럼 흩어졌을 법한데,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이 남게 된 것은 순전히 향랑을 기념하는 열녀비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향랑의 열녀비를 세우기 위해 그녀의 자결 이후 조선의 지배 계층은 임금에게 숱한 상소문을 올렸더군요. 향랑이 죽고 나서도 조선 후기인 18∼19세기 동안에는 적잖은 문인들이 한시, 소설, 잡록 등의 형식을 빌어 열녀 향랑을 기리는 작품을 20편 넘게 쏟아놨다고 하는군요. 향랑이라는 십대 여성의 삶과 죽음이 무엇이었길래,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기록에 의하면 향랑은 시골의 무식한 십대 여성이지만 혼인을 했다가 지아비와 갈라선 뒤에도 개가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선택한 절의의 여인입니다. 재가금지법을 경국대전에 편입시킨 시기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 때라니까 나중입니다만, 그 이전인 당시에는 '부녀자는 한 지아비만 쫓아 생을 마치는 것이 예법'이라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드세게 확산되기 시작한 어수선한 때였지 싶군요.

한마디로 17세기 조선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고려 시대를 포함해 조선 초기까지도 양반이든 양인이든 가리지 않고 남편이 죽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갈라서면 여성은 자의대로 재혼을 했답니다. 그것이 이 땅의 오래된 관습이자 삶의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전하는 기록을 보면 세번까지 재혼한 여성도 있고 나이 쉰이 넘어서 재혼한 여성도 있더군요. 그다지 꺼릴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향랑이 살았던 조선 17세기부터 사정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앞서 말한 경국대전의 재가금지법은 여성의 재혼을 직접 금지하지는 않았지만(워낙에 그 이전까지의 유구한 전통이 있어놔서) 재혼한 여성의 자녀 벼슬길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답니다. 우회적 금지책이나 방법은 더욱 교묘하고 효과는 훨씬 컸겠지요. 내 자식의 미래를 막겠다는데, 누가 재혼을 했겠습니까? 게다가 나라에서는 재혼하지 않은 여성을 표창했고 세금 면제, 상금 하사, 신분 상승의 혜택을 주었다는군요. 뻔한 게임이지요.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대략 이런 사회 분위기로 치닫던 17세기 조선 후기에 향랑이 자결한 것입니다. 저자는 그녀에 관한 기록을 전부 거꾸로 읽고 있더군요. 향랑은 애초부터 하기 싫은 결혼을 억지로 했고, 난봉꾼 남편과 끝까지 같이 살아 보려고 애썼고, 끝내는 남편의 횡포로 쫓겨났고, 친정에 돌아와 홀로 살아가려고 의욕을 다졌으나, 어려운 살림의 부모가 자꾸 개가를 강권하자, 오갈 데가 없어진 향랑은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지요.

저자의 '열녀 거꾸로 읽기'는 향랑의 죽음을 열녀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그녀를 열녀의 길로 내몬 당대 가족 제도와 사회 체제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타살이라는 심정적 결론에 이르고 있더군요. 이같은 진실의 증명을 위해 저자는 책의 부제처럼 조선의 17세기 서민층 가족사를 파헤치는데, 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실의 재발견과 복원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6세기인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여권 존중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 딸과 사위가 친정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시대 …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았고 친족관계에서 본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다 … 재산을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상속받았고 조상의 제사도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를 하였다 … 여성의 바깥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 활동도 장려되었다…"

이와 같던 이 땅의 역사와 전통이 180도 뒤바뀐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300년 안팎)이라는 사실은 학계의 연구나 언론 방송의 소개로 간간히 접하기도 했었지요. 허나 저자는 열녀 향랑의 자살 사건을 뒤집어 해석함으로써 이 땅에 없었던 완고한 가부장제가 17세기의 조선을 거치며 어떤 음모적 기획으로 도입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드라마처럼 보여 줍니다. 그리하여 향랑의 자살을 열녀의 상징으로 기념해 온 조선 당국의 공식 기록을 거대한 의문으로 파헤치는 독특한 역사 스릴러물이 탄생한 것이지요.

저자는 사료의 행간과 시대의 맥락과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해 '진실'을 파헤칩니다. 지아비에 대한 정조 때문에 자결한 열녀 향랑인가? 향랑의 뜻과 다르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열녀로 둔갑시킨 사회적 타살인가? 저자는 입장이 분명한 만큼 과감하게 수사를 진행합니다. 17세기 조선, 그 음모에 가득한 과도기의 사회 체제와 가족 제도, 지배계층에 의해 위로부터 강요된 가부장제가 바로 향랑 살해의 피고 자리에 앉아야 하며 역사라는 법정의 최고 형량을 선고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사건의 기록자들은 향랑에 대해 용모가 방정하고 성행이 정숙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향랑을 열녀로 만들어 자기 이득을 취하려고 한 것일 뿐, 실제의 그녀는 장화나 홍련처럼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여인이었다. … 마지막의 자결 행위는 막힌 사회에 울분을 표출한 강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 자실 직전에 나무하는 소녀를 만나 '이제부터 내 한없이 원통한 사연을 말하고 죽으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낱낱이 공개하는 장면 … 소녀에게 (자신의 사연과 죽음을) 꼭 기억하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십대 여성 향랑이라는 존재는 고대로부터 조선 중기까지 찬란했던 여성 르네상스기의 선조 여성들의 삶과 단절 당하고, 이후 끝간데 없이 치달은 수난과 억압의 300여년 역사를 운명인양 받아들여야 했던 비참하고도 슬픈 여성들의 전환점에 서 있는, 마지막 저항이자 암흑의 미래를 예고하는 역사적 상징이 되는 셈입니다.

열녀비로 남아 있는 향랑을 이렇듯 전혀 다른 맥락과 이야기의 인물로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저자의 치밀한 사료 조사와 함께 탐정 뺨치는 의문과 소설가적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양성 평등과 조화를 향한 그의 열정과 정치적 입장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가부장제 하에서도 서민층 여성들은 비록 죽음이란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들도 분명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임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아시겠지만, 이땅의 여성사를 완전히 개악한 조선 17세기 이후의 사회정치적 음모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와해의 조짐을 보인 봉건 질서를 재구축하기 위해서 기획된 지배 계층의 신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합니다. 가문주의와 혈연주의로 중무장한 가부장제를 위로부터 아래로 전 사회에 적용하고 관철하는 과정에서 향랑은 자살했습니다. 이러한 정치 음모의 이득을 누리고자 했던 세상의 남자들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여자, 그 이름이 향랑인 것이지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비단 대륙을 향해 뻗어 있던 당시의 국경선을 확인하는 일 뿐일까? 조선 이외의 역사 탐구가 미미한 국내 현실에서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은 어쩌면 조선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땅의 여성들이 누렸던 당당한 삶을 복원하고 재조명하는 일은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근대화 시대를 살아온 신여성이라고 해서 조선 17세기 이전을 살았던 이땅의 여성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끝으로 향랑이 자결 직전에 읊었다는 <산유화>의 전문을 옮깁니다. <산유화>는 원래 백제 시대 부여 지방의 민요라고 하는군요. 이 노래를 향랑이 부른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결혼도 이혼도 재혼도 열녀도 원치 않았던, 그저 한 사람의 개인으로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꽃피웠다면, 향랑은 지금 우리가 드문드문 보고 있는 쿨하고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
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가
천지가 비록 크다 하나
이 한 몸 의탁할 곳이 없구나
차라리 이 강물에 빠져
물고기 배에 장사 지내리

향랑, 산유화로 지다 -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정창권 지음,
풀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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