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등록 2004.09.20 16:20수정 2004.09.2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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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둘째인 딸아이가 소풍을 다녀왔다. 전날 밤 비오지 말라고 하느님께 기도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소풍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설렘을 주고 있구나 싶어 덩달아 행복해 했던 적이 있다.

왠지 ‘소풍’ 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기분이 좋아진다. 파란 가을하늘 아래 줄지어 떠났던 들녘의 황금물결과 들꽃으로 발등을 수놓았던 봄소풍의 화사했던 기억 때문일까. 누구나 입가가 배시시 벌어졌던 소풍의 의미는 즐거움의 덩어리다.

그 때문일까. 머리에 쏟아지는 햇살은 우리들의 마음 만큼이나 속살거려 주었고, 옆구리 터진 김밥을 먹으면서도 왜 그리 기분이 좋던지. 배낭이 없어 종이가방이나 손에 들고 다니는 천가방에 도시락과 물통 과일 등을 삐져나오도록 불룩하게 담아 콧바람에 마구 흔들고 가도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예쁜 배낭도 없었지만 시중에 나온 가방은 부피가 크고 투박해서 가진 아이가 별로 없었다.

도착지에 가서 풀면 죄다 물러 터졌거나, 뜨뜻미지근한 음식이 되어 버리기 일쑤지만 그래도 맛있고 즐거웠다. 제 딴엔 신경을 좀 쓴다고 보온병에 물을 담아 오기도 하나 그것도 가다보면 목이 말라 나도 한입 너도 한입 하다가 길바닥에서 동이 나고 만다.

점심이 끝나면 반 대항 장기자랑으로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보물찾기와 수건돌리기는 소풍에서 필수적인 게임이다. ‘피크닉 퀸’ 도 그때 당시 빼놓을 수 없던 항목 중의 하나였다. 그때 TV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가장 큰 인기였기 때문에 물망에 오른 게임이었다. 반장은 누구를 세울 것인지 생각해두고 소품을 준비해 가는데 우리 반 은정이라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매번 그 아이가 출전하게 되었다.

별로 치장을 하지 않아도 단연 돋보였다. 머리에 꽃 하나만 꽂아도 분위기가 달리 보이는 그런 아이였기에 선생님들조차 넋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퀸’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여기서 꼴찌를 하면 왠지 반장이 능력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처음부터 끝까지 안무를 놓치지 않는 정말 실력가인 반장도 있었다. 1등을 한 반은 푸짐한 상품과 선생님의 한턱까지 이어져 다음날까지 소풍 분위기였다.

선생님과 하는 게임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유행춤 따라하기 경연대회라도 열린 것처럼 쾅쾅 울려대는 음악소리에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댔던 중고등학교 소풍. 지금이나 그때나 음치에 몸치에 둔치까지 겸비한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그들 옆에 서서 손뼉만 열심히 쳤다.

요즈음 같으면 고성방가에 풍기문란죄까지 씌워 경찰서로 줄줄이 들어갈 상황이었지만 시골이고 워낙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곳이다 보니 우리들 세상이었다. 이날 만큼은 선생님도 눈을 딱 감아 주었다. 아니 우리들의 등살에 인기 있는 선생님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함께 춤도 추어야 했다.

가끔은 주인 없는 감나무나 밤나무가 있어 돌아 올 때는 가방 가득 알밤과 주홍빛 땡감까지 주워 오기도 했다. 다들 담장 밑에 감나무 한그루쯤은 있기 마련인데 거기서 줍는다는 것에 더 신이 났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 시골에도 농약이다 개발이다 하여 뿌리고 파헤치고 하여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들과 산이 별로 없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다. 기껏해야 대공원에서 한 바퀴 휙 돌고 오는 것이 전부다.

별다른 이벤트가 있다 해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의 싱그러움을 몸으로 느낄 겨를이 없다. 순번대로 들어갔다 나오기 바쁘고 더러는 도자기 체험도 있지만 형식에 치우쳐서 제대로 흙이나 만져 보고 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더구나 초등학교 1학년 엄마들은 아이 소풍지까지 따라 가기도 한다. 아이가 메고 가야할 것까지 엄마가 대신하는 것을 보고 어쩐지 소풍의 의미가 퇴색해 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했다.

몇 해 전 일이다. 서울로 이사 오자마자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일학년이다 보니 엄마들이 죄다 따라 간다는 것이었다. 가지 않는 엄마의 아이는 왕따를 당한다느니 천덕꾸러기가 된다느니 하면서 집집마다 자가용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아는 이웃도 없고 가자니 지리를 모르겠고 안가자니 아이가 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늦게 옆집아줌마의 도움으로 가긴 갔지만 역시나 극성스러운 서울 엄마들임에 틀림없었다. 옆구리에 제자식을 끼고 김밥을 먹이고 물도 먹여가며 삼삼오오 있는 모습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 가운데 부모가 오지 않은 아이들만 모아서 김밥을 먹는 한 무리가 보였다.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려고 가만가만 가서 아이의 등을 탁 쳤다. 휙 돌아보더니 “안 와도 될 뻔 했어. 벌써 김밥도 다 먹고 놀려고 했는데 …”하는 것이 아닌가.

가지 않아도 될 것을 괜히 진땀 빼며 올라가서 이 고생을 했을까 싶어 자신이 못나 보였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스스로 뭔가 결정을 하며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싶어도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들도 내버려두면 다 하기 마련이다. 손이 부족할 땐 도우미 엄마가 따라가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그런 관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다른 아이들도 엄마들의 도움이 특별히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진다 해도 근원적인 뿌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가슴 설레고 기대되는 즐거움이 오래도록 아이들의 가슴에서 퇴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공간과 어른들의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소풍도 체험학습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피곤할 따름이다. 어차피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없다면 도자기체험을 간다고 했을 때 도자기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 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만들어서 구워지기까지 가마터도 보고 불은 얼마나 지펴야 하는지 또 그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큰지 시중에 나와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그릇들이 다 이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체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뿐만 아니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몇 개나 타고 어디를 갔다 왔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고학년이라면 놀이기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학적인 물음도 한번 생각해 볼일이라 싶다. 놀면서 터득하는 방법을 알게 했으면 하는 것이 욕심일까.

그렇지 않다면 동네 하천에도 충분히 소풍 장소로 물색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멀리 가지 않으면서 넓고 아늑한 곳이 하천 주변이다. 요즈음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전거 길도 있고 넓고 큰 운동장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뛰어 놀기 안성맞춤이다.

거기서 자전거도 타고 공도 차고 하다 보면 하루해가 후딱 지나 갈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이 ‘버스 인생’ 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버스에서 버스로 하루를 정리하게 되는 게 대부분 아이들의 실정이다 보니 그날 하루만이라도 가까운데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달리고 차고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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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느낀점을 수필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제이름으로 어느곳이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한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여기서 여러기자님의 글을 읽어보고 용기를 얻어 한번 지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김해등님의 글이 자극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이런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실력은 없습니다. 감히 욕심을 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엔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을만큼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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