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린 참 행복하게 살았는데..."

준수가 수술 했습니다 (1)

등록 2004.10.21 13:34수정 2004.11.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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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이란 말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멀쩡히 잘 뛰어 놀던 아이가 학교에서 쓰러져 양호 선생님에 의해 구급차에 실려 개인병원을 거쳐 원주 기독교병원 응급실로 갈 때만 해도 며칠 병원에서 치료하면 나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두어 번 허리가 아픈 일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가까운 개인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단순한 허리 통증이려니 여겼던 것이지요.

그런데 척수 종양이라고 했습니다. 종양이란 말이 주는 중압감에 눌려 한동안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허리 통증을 넘어서 준수의 다리가 마비되어갔고 소변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독교병원에서는 수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주가 아닌 서울로 가서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고통과 두려움에 질려 우는 준수를 구급차에 싣고 캄캄한 어둠을 헤치며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구급차의 경적 소리가 가장 듣기 싫다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구급차에 준수가 실려 가는 겁니다. 구급차 경적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마비된 다리를 주무르며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려 애쓸 뿐이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실시한 결과를 자정 무렵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척수 종양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는데 양성이라고 해도 척수 신경에 생긴 종양을 수술을 통해 제거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종양을 제거하다 보면 척수 신경에 손상이 올 수밖에 없는데 수술을 하더라도 마비된 하반신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신경은 절단되면 재생이 안 된다는 겁니다.

연두부 같은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독한 약을 투여하며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진통제에 의존해서 고통을 이겨내는 아이는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홍성흔 선수가 연장 만루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들으며 웃기도 했습니다. 홍성흔 선수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밤마다 마비된 다리를 여기저기 주물러달라며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수술이 다가오면서 수술 후에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울었습니다. 살고 싶다며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준수에겐 병명을 숨겼습니다. 단순한 허리디스크에 불과하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으라고 달랬습니다.

수술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준수를 수술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불안해 하던 아이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수술 후에 하반신이 회복될 가능성이 1%도 없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에 울부짖던 아내도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준수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습니다.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서 아내는 맥없이 주저앉았습니다. 지난 일주일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버텨온 아내였습니다. 보호자가 먼저 쓰러지면 준수를 지킬 수 없다며 아귀처럼 밥을 먹었던 나와는 달리 아내는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병원 앞에서 사다 주는 죽만 몇 술씩 떠넘길 뿐이었습니다.

주저앉은 아내를 강제로 끌고 구내 식당으로 갔습니다. '준수 하나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당신마저 쓰러지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며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습니다. 못 먹겠다며 도리질을 하던 아내도 내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 아내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수술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보호자 대기실의 대형 TV를 통해 수술 환자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계속 떠오르는데 준수보다 나중에 수술을 시작한 환자도 수술이 끝나 회복되고 있었는데 준수의 수술은 계속되었습니다. 척수 신경 수술이 워낙 정밀한 수술이라 오래 걸릴 거라며 주변 사람들이 위로해주었습니다.

네 시간 후에 준수의 이름 뒤에 '회복중'이란 자막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자막을 보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수술이 잘못될까 마음 졸이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겠지요. 준수는 회복실에서도 꽤나 많은 시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각종 약을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온 준수는 엄마와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런 아이 옆에서 다리와 발을 주무르며 아이에게 얘기했습니다. 수술 무사히 마쳤으니 빨리 회복해서 집에 가자고 말입니다. 아이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린 참 행복하게 살았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내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파란 가을 하늘이 눈물에 젖어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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