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는 2005년도 적용 최저생계비

[주장]최저생계비 수급자들이 물가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등록 2004.12.06 17:47수정 2004.12.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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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보건복지부는 2005년에 적용할 최저생계비를 4인 가구 기준으로 113만6332원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는 현재 적용되고 있는 최저생계비 105만5090원(4인 가구)에 비해 7.7% 증가한 금액이다. 여기에 가구균등화 지수의 상향조정에 의한 최저생계비의 실질인상효과 1.2%를 포함하면 실제 인상률은 8.9%가 된다.

정부로서는 8.9% 인상률을 앞세우고 싶을 것이고 또 실제로 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8.9%가 크게 부각되어 있다. 가구균등화 지수의 상향조정으로 수급자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급여액이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올라가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 상당한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최저생계비 인상률은 7.7%가 된다.

최저생계비는 우리 사회의 사회구성원들이 최소한의 문화적이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을 의미하며, 이는 한 달 단위의 지출액(소득액이 아니라)으로 표현된다. 대개 사람들은 최저생계비 액수를 자신의 한 달 임금소득과 곧바로 비교하여 그 수준을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비교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최저생계비는 모두 11개의 비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비목은 식료품비, 주거비, 광열수도비, 가구집기·가사용품비, 피복신발비, 보건의료비, 교육비, 교양오락비, 교통통신비, 기타소비지출, 비소비지출이다.

이는 최저생활 역시 '생활' 곧, 삶이고 따라서 최저생계비는 삶의 모든 측면이 고려되어 결정되며 다만 그 수준이 최저수준이라는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11개 비목 중 주거비를 예로 들면, 현행(2004년) 최저생계비에서 주거비는 월 20만 5천원 가량이다. 이는 최소면적의 주택(12평)을 확보·유지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한 달 단위로 환산해서 얻은 금액이다. 가구집기·가사용품비의 경우도 냉장고 등 소비자내구재를 구입하는 데 드는 금액을 한 달 단위로 환산하여 금액으로 표시한다.

자신의 소득과 최저생계비를 직접 비교하는 경우에는 임금소득을 가진 사람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주택과 자신의 집에 있는 각종 내구재 등을 모두 한 달 단위 금액으로 환산하고 이를 임금소득에 더한 다음 최저생계비와 비교해야 올바른 비교가 된다.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저생계비로 표현된 금액보다 상당히 더 높은 수준의 지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현재 설정되어 있는 11개 비목 가운데 일부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교양오락비나 교통통신비가 그러한 논란에 자주 휩싸이는 비목이다. 그러나 사실 그 세부항목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제외할 항목은 별로 없다.

지출액으로 표현되는 최저생계비 액수와 자신의 소득을 비교하여 그 소득이 최저생계비 액수 이하인 사람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을 공식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인정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초보장법이 시행된 2000년 말에 약 149만명에 이르렀던 수급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약 139만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동안 생활수준이 나아졌다면 모를까, 경제위기 이후 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빈부격차는 심화되었는데 수급자 수는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수급자 수가 증가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은 소득분배구조가 개선될 때의 이야기이고 상황은 그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수급자 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감소한 것은 우리가 가진 기초보장제도가 어딘가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허점 중의 하나가 최저생계비이다. 기초보장법 제6조의 규정에 의하면, 최저생계비는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수급권자의 가구유형 등 생활실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결정토록 되어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은 최저생계비 실계측연도에 한정되며 나머지 비계측연도에는 사실상 물가상승률만을 반영해 왔다.

그리하여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최저생계비는 연평균 3.2%씩 증가하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일반가구의 가계지출은 연평균 8.4%씩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일반가구 가계지출 대비 최저생계비의 비중은 1999년만 해도 48.7%였으나, 그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3년에는 41.2%, 2004년 1/4분기에는 38.1%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서 정부가 발표하는 최저생계비 금액은 실제의 최저생활에 필요한 지출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수치가 되어갔다. 그동안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은 최저생계비를 물가상승률만 반영하여 조정하게 되면 최저생계비는 점차 실제 최저생활수준과 괴리될 것이며, 나중에 이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많은 진통이 따를 것이므로 최저생계비 조정기준을 변경하여 실제 최저생활수준을 반영시키자고 누차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계측연도에는 물가만 반영하여 금액을 조정하면 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괴리는 계측연도, 즉 2004년도의 계측결과에 기초하여 보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기준 변경을 한사코 회피했다.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저생계비 실계측 결과, 그동안 민간위원들이 제기한 우려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해주었다. 계측결과 표준가구의 가구주 연령은 43세로 나타났고, 이 43세의 가장이 있는 표준가구(표준가구는 4인 가구이다)의 한 달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 기준으로 122만 5천원으로 계측되었다.

이 금액은 2004년도 자료를 사용하여 계측한 것이니 결국 2004년의 실제 최저생활수준은 122만 5천원 지출수준이라는 의미이다. 2004년도에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최저생계비는 105만 5천원이므로 연구원의 이 계측결과는 금액으로는 현행보다 17만원, 비율로는 16.1%가 더 많은 것이다.

즉, 2004년 현재 우리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최저생계비는 실제 최저생활수준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약 17만원이 모자라는 비현실적인 금액이라는 의미이다. 이 계측결과를 2005년에 적용할 금액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126만 2천원이 된다. 이는 정부가 12월 1일에 발표한 최저생계비 113만 6천원보다 12만 6천원가량이 더 많은 금액이다.

122만 5천원이라는 금액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쨋든 그 후의 논의 과정에서 표준가구 가구주 연령은 39세로 하향 조정되었고 따라서 최저생계비 역시 118만 3천원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 금액 역시 2004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2004년에 실제 적용되는 105만 5천원과 비교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12만 8천원, 12.1%). 118만 3천원이라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가지고 2005년도에 적용할 최저생계비를 구하면 이 역시 121만 9천원으로 복지부가 발표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된다.

어떤 결과를 기준으로 하든 2004년도에 실제 적용되는 최저생계비는 실제 최저생활수준에 비해 12만 8천원 내지 17만원만큼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발표한 2005년도 최저생계비도 실제 최저생활수준에 비해 적어도 8만원 정도의 괴리를 보일 것이다.

이처럼 계측결과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2005년도 최저생계비가 결정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이었다. 혹자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예산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어디에도 최저생계비를 결정함에 있어서 예산을 고려하라는 조항은 없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예산고려보다 더 중요하며 우선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렇다고 해서 예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선순위이다).

또 혹자는 경제가 어려운 때에 조세부담을 증가시키는 최저생계비 인상은 경제에 주름살을 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는 우리 사회에서의 빈곤한 수준과 빈곤하지 않은 수준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존재할 뿐 그 금액을 정부가 그대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최저생계비 금액 이하의 소득과 재산을 가진 사람을 가난한 사람으로 정하여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 및 재산의 합계액과 최저생계비 금액의 '차액'을 각종 급여로 제공한다. 올해의 경우도 수급권자들이 정부로부터 현금으로 받는 급여는 가구당 평균 14만 원 정도이다.

가난한 사람은 정부가 제공하는 급여를 받아 이를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 및 재산에 보태어 최저생계비 금액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발표하는 금액만큼 조세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자립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해서 스스로 소득을 획득하여 살아가야지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급여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야말로 혼자만의 힘으로 자립적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직장을 가지고 자립적으로 생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들보다 주위의 도움을 더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일상적으로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을 볼 때 자신들이 그들보다 더 많은 도움(정부로부터의 도움은 아닐지라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진실로 고기 잡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 역시 한때는 자신들이 아는 고기 잡는 방법으로 가난하지 않게 살아왔던 사람들이며, 따라서 그들 역시 세금을 납부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고기 잡는 방법을 아는 듯이 말하는 우리들 역시 그 방법을 혼자서 깨우친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고기 잡는 방법을 깨친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 방법을 깨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은 지금 고기를 잡을 물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에 갈 통로를 봉쇄당한 사람들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 물가에 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주고 통로를 만들 때까지 고기를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가난해지게 된 것은 그들이 고기 잡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 그 방법을 써먹을 물가로 가는 길이 그들에게는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경쟁사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모두를 돕지 않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체제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빈부격차가 심화해가는 오늘 모두가 모두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고 그러한 도움의 연결망을 제도화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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