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술먹여 만든 '노동당 간첩'

[고문의 추억 6] 1995년 간첩죄 뒤집어쓴 한국외대 박창희 교수

등록 2004.12.23 18:20수정 2005.01.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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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국회 내 간첩암약 폭로사건 이후, '고문'이라는 이름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 후 주 의원에 의해 '간첩'으로 지목된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은 자신이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우리사회에 고문은 없었으며, 있었다고 해도 90년대 이전의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90년대는 물론 2000년도까지도 여전히 공안기관 지하 밀실로 끌려가 국보법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이 자행됐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언들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10여 차례에 걸쳐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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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고문 수사'의 담당 검사는 정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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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교수 ⓒ 박창희

나는 한국외국어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95년 4월 26일 새벽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안기부에 연행되었다. 대법원에서 3년 6개월의 형 확정에 따라 복역 중, 98년 3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고 이듬해 사면복권되었다. 나는 여기 나의 실체험을 공개하여 국가보안법을 바탕으로 한, 안기부와 검찰에 의한 죄인 만들기 실태에 대해 알릴까 한다.

북 친형과 나눈 편지 빌미

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란, 6·25 때 친형 박윤희가 서울의 대학에 재학 중 행방불명이 된 후 생사를 알 수 없어 90년대 초반, 당시 재일동포 사이에서나 역사학계에서 신망이 있는 선배 역사학자에게 부탁해 북한에 혹시 형이 생존해 있는가 여부를 알아보려 한 것이다.

실제로 형은 살아 있어서 그 선배의 주선으로 북한의 형과 나는 한 통의 안부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국보법의 반국가단체와의 회합·통신 조항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들에게는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95년 4월 27일부터 20일 동안 나를 담당한 수사관은 3개 팀으로, 조사기록과 경비, 그리고 가학 고문으로 각 6명씩 담당하였다.

맨살 비틀고 얼굴에 주먹질

안기부 수사관들은 나의 가슴의 맨살을 비틀고 바닥에 꿇어 앉혀 구둣발로 차고 이가 흔들릴 정도로 온 얼굴에 주먹질을 예사로 했다. 아주 두꺼운 사전 같은 무거운 책으로 나의 머리도 몇 번이나 내리치기도 했다.

심한 욕설, 폭언뿐 아니라 '여기서 죽어 나가도 귀신도 모른다' 등의 말에는 그게 단순히 공갈이 아니라 들리고 나도 박종철군 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질려 있었다. 전기고문이니, 물고문 같은 것도 행할 것이라 내비치는 데다 입에 담지도 못할 심한 욕설과 폭언은 전기고문이나 물고문에 못지 않게 나의 마음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날마다 반복되는 가혹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학교 캠퍼스에서만 평생을 지내온 나로서는 그들의 심한 욕설과 가족들에 대한 비방과 폭언은 참으로 가혹한 고문,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수사관에게 선배 역사학자가 북한 공작원일 수 없고 그런 증거도 없으며, 형의 소식을 알게 해 준 것 이외에 나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한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꾸만 바른말을 하라면서 나를 협박했다. 나는 죽음까지도 상상할 수 있는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혀 어쨌든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하고 수사관이 하라는 대로 하게 되었다.

술취한 상태에서 허위진술서 강요

어느 날(지하실엔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전혀 분별할 수가 없었다)은 수사관들이 소주를 몇 병 들고 와선 나를 둘러싸고 마시라고 하길래 다 마셨는데,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들은 지금부터 진술서를 쓰자면서 부르는 대로 받아쓰라 했다. 그리곤 그곳에 손도장을 찍게 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 내가 강제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쓴 진술서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사관들에 의한 가혹행위와 욕설, 폭언, 폭행 그리고 강제음주, 절대적인 수면부족 등으로 공포와 절망감에 싸여 몽롱한 상태에서 써 내려간 허위 진술서에 의해 나는 어느 새, 북한공작원으로부터 세뇌받고 사상교육을 받고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가서 노동당에 입당하여 공작금 5만엔을 받고 사람을 포섭하려 했고 암호명까지 받아 김일성 추도문과 김정일 생일 축하문을 쓴 어마어마한 반국가범죄인으로 조작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절망 속에서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어렴풋이 깨닫고 수사관들에게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고 허위진술이니 고쳐달라고 했더니 '좋아, 고쳐 줄테니 그럼 대신에 큰 것 하나 내놓아라'하곤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건 모두 검찰에 가서 바로잡으면 돼'라고도 했다.

나는 그 당시 '국민학교 이름 고치기 운동'을 몇 년 째, 각계 시민들과 연계해서 활발하게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안기부에서는 그 운동조차도 북한의 지령에 의해서 시작한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관계하고 있던 각계 시민 지도자들도 지하조직으로 꾸며서 맘대로 조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담당 검사까지 구두 발길질

20일간에 걸친 안기부 지하실에서의 감금조사 후,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검찰에 송치된 나는, 95년 5월 15일 검사실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오랏줄에 묶인 채 조사를 받았다. 담당 검사는 다른 부분들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노동당 입당에 대한 진술만 확고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 부분에서 그건 사실이 아니고 수사관들의 강요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하자 갑자기 자리에서 뛰쳐나온 검사는 구두를 신은 채, 발길질로 나의 정강이를 걷어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바닥에 무릎을 꿇려 앉히곤 바른말을 하라고 계속 걷어차고 짓밟았다.

이렇게 하기를 약 5시간. 끝까지 노동당 입당사실을 부인하고 버티자, 검사는 결국 노동당 입당 사실을 기소할 수 없게 되었다. 그밖에도 안기부에서 조작된 허위자백의 내용들을 검찰에서라도 바로잡으려 하였지만 담당 검사는 그럴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는 듯했다.

안기부는 나를 검찰에 송치할 즈음에 이미 각 보도매체에 노동당 입당 혐의로 송치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벌써 간첩이 되어 버린 후였다. 이에 대해 나의 가족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기사를 요청하여 6개 신문사에서는 늦게나마 정정기사를 작은 크기로 실었다.

나의 가족들은 구두발길질과 주먹질 등을 행한 검사의 가혹한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법원에 제소하였고, 나 자신도 검찰총장에게 담당 공안검사의 처벌과 진상조사를 요구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검찰청에서 '혐의 없음'으로 간단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검찰청의 검사조차도 이러한 가혹행위를 마음대로 행한다는 것에 대해 큰 공포를 느껴 안기부 수사 단계에서의 허위자백 진술을 번복하려는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다만, 공판정에서야 겨우 피고인 발언을 통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문과 폭력행위 인정 않는 법정

하지만 이 때에도 안기부 지하실과 검찰에서의 공포감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한참동안 시간이 걸렸다. 공판 내내, 안기부 수사관들이 모두 방청석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지 않나, 또 다시 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공포심이 계속되었다.

법정에서는, 안기부 지하실의 수사과정과 검사실에서의 조사과정에서 갖가지 폭력과 폭언, 협박과 가혹행위가 있었고 치밀한 방법으로 허위자백이 강요된 것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특별한 물증이 없이 피고인의 진술만으론 고문과 폭력행위가 입증이 안 된다고 하는데, 아무런 증거도 없는 간첩죄를 뒤집어 씌워놓고 바로 가혹행위를 당한 당사자가 증언을 하는데도 그 당사자의 진술이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는다면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법정에서 그런 피고인의 진술을 인정한다면 국가보안법의 위신 자체가 손상되고 허위자백 조작의 특정정치목적을 이룰 수도 없고, 안기부와 공안검찰의 입지를 약하게 하기 때문에 그런 인정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1999년 2월에 사면복권이 되었다고는 해도 말만 그렇고, 그 후로도 아직까지 보안관찰법으로 인해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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