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여! 학생들의 마니아적 속성을 잠재우지 말라

김진경 선생의 <미래로부터의 반란>을 읽고

등록 2005.03.25 19:01수정 2005.03.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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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부정 사건이 회오리바람처럼 몰고 지나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다른 사건들이 우리나라 온 땅을 휩쓸고 있다. 이른바 일진회 같은 학교 폭력 사건이 그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역량을 드러내고 싶은 아이들이 끼리끼리 한 구성원이 되어 또래 학생들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못살게 만드는 모습이다.

사실 그런 모습들은 비단 어제 오늘에만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만연돼 있는 현상들이다. 다만 지금에 이르러서 그 폭력 수준이 더 포악해졌고, 집단구타도 더 극심해졌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런 현상들이 여기저기 곳곳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뿐이다. 마치 큰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댐으로 막아놨는데, 이젠 그 한계가 다하여 견디지 못하고 댐이 터져 버린 것과 같은 꼴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학생들 문제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단면일 뿐이다. 더 포악하고 더 끔찍한 일들은 지금도 교실 속에서, 학교 화장실 속에서, 인터넷 속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내일이라도 금세 무슨 일들이, 다른 많은 일들이 봇물처럼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중고등부 학생들 속에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됐는가. 누가 그 일에 대해서 돌팔매질을 당해야 하는가. 그 일을 꾸미고 있는 학생들인가. 아니면 그들을 관리하지 못한 선생님들인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육부당국 관계자들인가. 그도 아니면 자기 자식들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인가.

하나하나 잘잘못을 따지자면 모두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학생들도 선생님도 교육부 당국도 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학부모들 모두가 돌팔매질을 당해야 맞다. 그러나 돌을 던지고 책임 추궁하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확실한 원인과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런 일들은 자꾸자꾸 되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문제점과 앞으로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밝혀준 책이 있다. 바로 <고양이 학교>라는 어린이 동화책을 써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진경 선생의 <미래로부터의 반란>(푸른숲, 2005)이란 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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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이 책은 왜 아이들이 노랑머리 빨강머리를 하고 다니는지, 코와 혓바닥에 왜 링을 끼우고 다니는지, 몸 곳곳에 왜 그토록 이상한 문신들을 새기고 다니는지, 또 아이들이 왜 수업시간에 들고 있어야 할 교과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인지, 왜 학교 화장실 속에서만 쑥떡쑥떡 이야기하고 서로들 일을 꾸미는 것인지 그에 대한 이유들을 밝혀주고 있다.

"학교는 전국의 아이들을 일등에서 꼴찌까지 한 줄로 세우는 신분 상승의 외줄 사다리였으니까요. 그 서열을 매기는 기준은 교과서 속의 지식을 얼마나 많이 습득하고 있느냐 였지요. 말하자면 교과서는 인류의 문화의 정수를 압축해 놓은 정답집이었던 셈입니다."(79쪽)

김진경 선생님은 그에 대한 가장 큰 이유를, 중고등 학교와 선생님들과 교육부 당국과 학부모 모두가 학생들로 하여금 '신분상승을 위한 외줄타기'에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래서 일류대학이라는 학벌 마법에 학생들을 꼬드기고, 그 꼬드김을 받은 학생들은 난쟁이 통에 곧잘 사육되고, 또 입시 검투사가 되어서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그 치열한 전투에 기를 쓰고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고등부 학생들이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마니아적 속성과 그 참신한 창의력이 어떻게 돋보이는지, 그것을 찾아주고 그 진로를 북돋아주기보다는 오로지 교과서 속 지식 하나만을 머릿속에 온통 집어넣으려고 안달이고, 그래서 그 난쟁이 통 속이나 입시 검투사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럭비공 같이 교실 밖 어디론가 튕겨나간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마니아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열심일 뿐 아니라 놀랄만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 마니아적 속성은 요즘 아이들의 삶에 대한 열의와 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성감대와 같습니다. 자기가 관심을 갖는 것이 공적으로 허용되고, 또 그것에 기울인 노력이 인정을 받으면 삶에 대한 열의가 한없이 커져서 아이를 놀랄 만하게 변화시키지요."(216쪽)

학생들이 일탈을 겪고 있고 방황하고 있는 문제를 일으키는 그 진원지를 찾아냈다면, 이번에는 그 대처 방안에 대해 내놓고 있다. 그것을 김진경 선생님은 마니아적 속성에서 찾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만의 관심거리에 푹 빠져들 경우,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교 교육 풍토를 교육 당국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 모두가 협력해서 제공하라는 것이다.

김진경 선생은 그렇게 하려면 지금의 중고등 학교 학습제도와 대학입학 수능시험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목소를 높인다. 우선 중고등학교 수업 중 현재의 기본과정과 보충과정을 하나로 뭉뚱그려 기본과정 교과서로 만들고, 심화과정은 더 보완해서 별도의 심화과정 교과서를 만들자고 주문한다.

또한 대학들도 고등학교 학력 서열화나 서구식 개인성적 서열화를 내세워 평가하기보다는 학생들이 갖고 있는 개인 창의력과 무한대한 마니아적 속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진로독서매뉴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나름대로 갈고 닦아서 준비해 온 '독서이력철'을 토대로 대학들이 심층면접이나 심층 에세이를 쓰게 해서, 그 아이의 적성이나 특기 전공에 대한 관심도나 준비 정도를 판단하고 전공에 부합하는 학생들을 뽑자는 것이다.

"진로 교육은 어떤 하나의 직업을 준비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직업과 관련된 인생 행로 전체를 준비시키는 교육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마니아적 요구와 능력을 우리 미래 사회의 동력으로 건강하게 키워 내는 길은 진로 교육 개념을 교육의 원리로서 학교 교육에 전면화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버려져 왔던 아이들의 마니아적 속성을 커밍아웃하여 학교 지식에 새롭게 목적을 주자는 것이지요."(224쪽)

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푸른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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