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결혼

참으로 어색한 만남의 과정에서 생겼던 이야기들

등록 2005.04.27 21:24수정 2005.04.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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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1988년 여름 맞선을 보러 갈 때였습니다. 손아래 올케와 맞선을 볼 장소를 찾아서 광명 사거리를 갔을 때였습니다. "고모, 고모, 저 사람인가봐." 모자를 썼고, 하얀 바지에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고, 유난히도 똥배가 나온 사람을 보고 올케가 내게 말했을 때도 웃음이 나오는 겻을 참았습니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그냥 올케에게 말했습니다.

37살 노총각인 신랑감이 장모님이 오시는 것을 반대해서 장모님대신 올케가 나가게 됐습니다. 약속한 장소에 가서 서로 인사를 나눌 때 보니 올케가 말했던 그 사람이라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중매를 서신 분과 그분의 따님, 시어머님 되실 분, 신랑감, 올케와 저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35살이 된 노처녀인 저는 선을 별로 보지도 않았지만, 그 자체를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중매를 서신 분의 따님이 저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고, 중매를 서신 분이 제게 역시 후덕하게 생겼다고 점수를 많이 주셔서 우연히 선을 보러가게 되었던 자리였지요. 그런데 그렇게 어색해하던 신랑감이 두 손을 번갈아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며 ‘아구 부끄러워, 아구 부끄러워’하면서도, 눈동자는 저를 슬금슬금 훔쳐보고 있었는데요.

그 모습을 보고서 시어머님 되실 분이 우리 아들한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먼저 웃음을 터트리셨습니다. 늘 새색시 같다는 평을 듣던 저였지만, 그날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저 역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시어머님과 저는 웃다 못해 그만 울어버렸는데요. 신랑감은 시어머님 되실 분과 제게 손수건을 건네주었습니다. 눈물을 닦으라고…….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웃었던 것 같았습니다.

신랑감은 예술인이라서 모자를 쓴 것이 아니고 대머리라서 모자를 쓴 것임을 곧 알았습니다. 제 신랑감이 대머리 총각일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올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너무너무 재미있었다고, 이런 선이라면 백번이라도 보러 가고 싶다고"

하필이면 비오는 날 맞선을 보자고 한 그 사람과 두 달 뒤에 결혼을 하긴 했지만, 제 이상형은 아니랍니다. 그러나 저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평생 동안 웃음이 묻어나는 삶은 보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 예상은 맞아 떨어졌지만, 가끔씩 저의 신랑은 제게 황당한 소릴 하곤 합니다. 어렸을 때 영등포에서 5대 갑부 중에 한집이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재산이 많았으면 당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자아, 그럼 우리 고려 시대로 한번 넘어 가봅시다. 나는 그때는 유씨가 아니라 왕씨였으니 분명 왕족이었으니 양반도 아닌 그저 그런 정씨하고 결혼을 했겠느냐고 되물으면 저의 신랑은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 말 못하고 저만 쳐다보고 있곤 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신랑을 바보 온달이라 하고, 저는 평강 공주라고 한답니다. 결혼식 때 제 절값을 가로채 갈 정도로 영악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대판 바보온달이 저의 남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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