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이 불명예 부문 1위라고?

<해럴드 경제>의 '통계 왜곡' 기사를 반박한다

등록 2005.08.25 13:55수정 2005.08.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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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통계를 신뢰한다. 숫자로 나열된 자료 앞에서 자신과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보다도 객관적인 진실이 있을 것으로 믿기 쉽다.

그러나 여론 조사와 통계작업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사회 통계와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다. 정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여론 조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교묘히 왜곡된 통계나 왜곡된 인용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이 시간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오래간만에 리플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기사가 있다.

「한국여성, 지구촌 '불명예 1위' 싹쓸이(헤럴드 경제)」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각종 '불명예'스러운 세계 최고 기록을 한국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저 출산율을 비롯한 '성형수술'과 '제왕절개' '흡연' '이혼율' '낙태율' 등에서 세계 최고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링크] <헤럴드 경제> 기사 전문 보기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기만 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제대로 된 비교도 없고 순위에 대한 언급은 단 하나도 없다.

흡연율 : 왜 한국 여고생과 개도국 여성을 비교하나

우선 흡연율을 보면 "20대 여성의 흡연율은 1990년 1.5%에서 99년 4.8%로 가파르게 상승했고 여고생 흡연율은 8%대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개발도상국가 여성 흡연율을 평균 7%대로 추정하고 있다"는 말이 전부다.

이 자료만 보아도 20대 여성 흡연율 4.8%는 '개발도상국' 여성 흡연율 평균치인 7%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왜 10대 전체도 아닌 한국 '여고생' 흡연율을 유독 '개발도상국' 여성 전체의 흡연율과 비교할까. 이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 부문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통계를 보자. WTO의 세계 각국 흡연율 통계(1996 발표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남자의 흡연율은 68.2%로 미국(28.1%), 영국(28%), 독일(36.8%)등 선진국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반면 15세 이상 여성 흡연율은 6.7%로 미국(23.5%), 독일(21.5%), 일본(14.8%)에 비해 낮았다.

좀 더 최근 자료도 유사하다. 대한결핵협회자료와 한국갤럽자료(1999년)에는 20세 이상 한국 남성 흡연율이 65.1%, 여성은 4.8%이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서 한국 남성 흡연율은 선진국의 2배 정도고 한국 여성 흡연율은 선진국 평균과 전체 평균을 크게 밑돈다.

왜 유독 '한국 여고생' 흡연율과 '개발도상국 전체 여성' 흡연율 통계를 비교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한국 여성의 흡연율이 높다는 결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저급한 조작이고 왜곡인 것이다.

얼마 전 통계수치까지 인용해가며 한국 여성 흡연율이 세계 최고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흡연자의 하루 '흡연량'이 높다라는 것을 인구당 흡연인구 수가 높은 것처럼 왜곡한 것이었다.

성형률 : 아시아 4위가 '세계 최고'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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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에 실린 기사

흡연율보다 더 믿을만한 것처럼 보이는 성형률은 어떠한가.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의 2002년 발표 자료를 보면 1인당 국민수로 환산한 성형수술 건수 통계에서 인구 1천명 당 2.19명이 성형수술을 하는 스위스가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사이프러스와 스페인이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 1위는 다름 아닌 홍콩(인구 1천명 당 0.68명·전세계 6위)이다. 아시아 2위와 3위에 대만(1천명 당 0.44명·전세계 12위)과 일본(1천명당 0.33명·전세계 18위)이 달리고 있으며, 한국은 아시아 4위이긴 하지만 인구 1천명 당 0.19명이 성형수술을 받아 전세계로 치면 27위에 불과하다. 27위가 '세계 최고'로 둔갑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이 자료 또한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성형 비율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성형 수술 받는 이들 중 1/3에서 1/5 가량이 남성임을 고려할 때(최근 취업준비생에 대한 조사를 보면 남성의 성형수술 비율이 여성의 1/3을 넘는다) 더더욱 이러한 통계가 '무분별한 한국 여성'들을 비난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기사에서는 비교할 만한 통계나 순위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아 의도적인 조작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철저히 조작된 결론을 위해 끼워맞춘 부분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 밖에 제왕절개(39.6%)와 낙태율(매해 100만건 이상) 등도 세계 최고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역시 비교나 순위는 생략한다.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부 : 여성부·생리휴가·간음죄가 여성을 불행하게 만든다?

기자는 이러한 '왜곡된 사실'의 원인 또한 이상한 방식으로 찾고 있다.

"네티즌은 한국 여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로 한국 여성만을 위한 세계 유일의 제도가 각종 불명예 1위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부가 설치된 국가는 한국과 뉴질랜드에 불과할 뿐 아니라 생리휴가제도와 혼인빙자간음죄, 공무원 여성할당제 등도 한국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제도라는 것. ID swak는 '한국 여성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결국 한국 여성들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극히 거짓되고 비객관적인 주장이다.

세계에서 '여성부'가 설치된 곳은 한국을 포함해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네팔, 파키스탄, 뉴질랜드 등 6개국이며, '여성청'이 설치된 곳은 4개국(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이다. 독립된 여성부를 갖고 있지는 않으나 과거 한국의 정무 제2장관처럼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장관을 두고 있는 나라로는 영국, 스웨덴, 인도네시아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법무부 등 산하에 위원회를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일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이집트,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등 16개다. 이밖에 벨기에, 독일 그리스, 인도, 말레이시아가 국(국)급의 정부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낙태율 : 한심하고 문란한 한국 여성 탓?

낙태율 또한 '한심하고 문란한 한국 여성'을 주장하기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

위의 거짓된 통계와 달리 한국 여성 낙태율만은 세계 1위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 수준임은 맞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체 중 기혼 여성의 낙태비율이 7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낙태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미혼 여성의 문란한 성생활'이 아님을 보여준다.(1994년 갤럽 조사 기준)

낙태 이유 중 58.3%가 피임 실패, 14.8%가 산모 건강, 10.6%가 경제적 어려움, 8.4%가 임신 중 약물 복용이고, 5.0%가 '딸이어서', 2.9%가 기타이다. 피임 실패의 경우에도 기혼자의 비율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콘돔 사용률이 12%에 불과해 안전하게 피임하기 힘든 것이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낙태율이 단순히 '문란한 여성'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음에도 기자는 '한국 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다.

여성할당제 문제는 길게 언급할 것도 없다.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 서구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국회의원이나 심지어 당원까지도 30%, 혹은 40%까지 한 성이 독점할 수 없도록(실직적인 여성 할당제) 하고 있으며 심지어 노르웨이에서는 최근 사기업 이사진까지 40%를 여성으로 할당하지 않으면 기업을 처벌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여성, 장애인, 유색 인종에 대한 할당제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가 깊다. 여성할당제가 우리나라만 있다니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할 따름이다.

의도적 악의를 의심한다

통계라는 것이 원래 주의하지 않으면 조금씩은 왜곡되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악의를 띠고 기사 처음부터 끝 문장까지 왜곡한 기사는 처음이다.

이 기사는 각 포털 사이트마다 게시되자마자 수 천 개의 리플이 달리는 등 인터넷 리플 전쟁을 가져왔으며, 리플을 단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사의 내용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좌시하기 어렵다.

무분별한 황색 저널, 인터넷 언론이 난립하면서 기초적인 사실 확인마저 철저히 무시한 이러한 기자와 기사가 발붙일 수 있는 작금의 언론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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