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도 부인도..." 맥아더 발언의 실체는?

박성환밴드 '맥아더' 노래 가사에 학자들 "출처 모르겠다"

등록 2005.09.15 17:33수정 2005.09.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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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철거' 논란에 휩싸인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에 휩싸인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약탈 및 양민학살의 책임자로 규정한 노래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민중가수 박성환밴드가 지난 7일 발표한 <맥아더>라는 제목의 노래는 "노근리의 양민들을 쏴 죽이라 명령했던 그 자 맥아더" "신천의 양민들을 기름으로 태워 죽인 그 자 맥아더"라는 구절이 담겨있다.

총 3절과 후렴부로 구성된 노래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끝 부분의 나레이션이다.

"서울을 탈취하라. 그 곳에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3일 동안 서울은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 - 1950년 9월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박성환밴드는 10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열린 '미군강점 청산 국민대회'에서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맥아더 동상의 이전 내지 철거에 공감하는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들조차 맥아더 발언의 출처에 대해서는 "어디에서 그런 말이 나왔냐"고 되묻는 분위기다.

'출처'로 지목된 한홍구 교수 "그런 내용 쓴 적 없다"


밴드의 리더 박성환씨는 15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산하 한국민권연구소의 장창준 연구위원이 6월 25일 <자주민보>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을 맥아더 발언의 출처라고 밝혔다.

장 연구위원은 "2002년 민권연구소에서 발간한 <정세동향>에 글을 쓸 때 인터넷을 검색해서 나온 얘기를 쓴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글에서 인용한 내용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한 교수는 "2002년 5월2일자 <한겨레21>에 맥아더에 대한 글을 쓴 적은 있지만, 그런 내용을 쓰지는 않았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부인했다. 한 교수는 "맥아더는 동상을 만들어 기릴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일선 지휘관들이 그와 같은 지시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맥아더가 직접 그런 말을 했는 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80∼90년대 대학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 박세길씨도 "관련 자료가 있으니 그런 얘기가 나왔으리라는 짐작은 있지만 발언 출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에 정통한 익명의 대학교수는 "맥아더가 양민학살을 지시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지금처럼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들을 밀고 나가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고 우려했다.

현대자동차노조신문 홈페이지에 게시된 2000년 8월 '맥아더 발언' 기사.
현대자동차노조신문 홈페이지에 게시된 2000년 8월 '맥아더 발언' 기사.현자노조신문
진보성향 학자도 우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 밀고나가면 큰일"

한편, <오마이뉴스>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000년 8월 9일 '미군양민 학살 사진전'을 열었고, 이튿날 배포된 노보에도 문제의 발언이 소개된 사실을 확인했다.

노보 관계자는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여름이면 노근리 양민학살이 쟁점이 돼 이러저러한 주장이 검증되지 않고 유포됐던 시기"라며 "지금에 와서 전임 집행부에서 있었던 일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래 가사에서 맥아더 장군을 황해도 신천의 양민들을 '기름으로 태워 죽인' 책임자로 묘사한 대목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북한은 신천 학살을 해리슨이라는 이름의 중대장이 저지른 만행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황석영씨가 소설 <손님>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라는 '외래의 손님들'을 끌어들인 동족간의 참극으로 묘사하는 등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박성환밴드'의 노래 가사가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 연구위원은 한홍구 교수가 부인했다고 하자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기술했다고 해도 할말이 없겠다"고 말끝을 흐렸고, 박성환씨도 "우리가 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발언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를 좀 더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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