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자 <청와대브리핑>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 기고.
"나도 MBC PD수첩의 이 보도가 짜증스럽다. 그러나 막상 MBC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용을 모르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 문제를 다룬 MBC < PD수첩> 보도와 관련, 따가운 비난여론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소식지 <청와대브리핑> 기고에서 "고통스럽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번 보도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윤리기준을 정비하고 다시는 이런 혼란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연구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지지가 뜨거워 모두가 이렇게 힘을 모아주면 국제적인 신뢰회복의 문제도 극복이 가능할 듯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 < PD수첩>에 대한 몰매여론과 광고취소로 이어지자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항의 글, 전화쯤이야 있을 수 있고 그 정도는 기자와 언론사의 양심과 용기로 버티면 되지만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도를 넘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고 이는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기자들은 기자들이 할 일이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면서 "서로 다른 생각이 용납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걱정 되던 차에 반가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다소 마음이 놓인다"면서 '일그러진 애국주의가 번진다'는 제목의 <한겨레> 26일자 기사 전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이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 전문이다.
줄기세포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에 관하여 MBC PD수첩에서 취재를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처음 취재방향은 연구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황교수가 매우 힘들어 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수십 명의 교수, 박사들이 황교수와 짜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세계가 그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말인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지만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부터는 난자 기증을 둘러싼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며칠 후,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면서 무슨 대책을 의논해 왔다. 이 자리에서는 취재의 동기와 방법에 관하여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호의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노성일 원장의 기자회견, MBC의 보도가 있었고, 그에 이어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에서 진지한 해명과 공직사퇴 선언이 있었다. 대체로 양해가 이루어지는 듯한 여론의 반응을 보면서 이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윤리기준을 정비하고 다시는 이런 혼란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구에 대하여는, 잘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민들의 지지가 뜨거웠다. 모두가 이렇게 힘을 모아주면 국제적인 신뢰회복의 문제도 극복이 가능할 듯싶었다.
이런 정도의 과정으로 사태가 수습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MBC PD수첩이 몰매를 맞는다는 것이다. 그저 몰매를 맞는 수준이 아니라 12개 광고주 가운데 11개 광고주가 광고계약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MBC의 이 기사가 짜증스럽다. 그리고 취재의 계기나 방법에 관하여도 이런 저런 의심을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연구과정의 윤리에 관하여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방법이 꼭 이렇게 가혹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막상 MBC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용을 모르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항의의 글, 전화쯤이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정도는 기자와 언론사의 양심과 용기로 버틸 일이다. 그러나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 모른다.
각자에게 자기의 몫이 있다. 기자들은 기자들이 할 일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용납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이런 걱정이 되던 차에 반가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다소 마음이 놓인다. ‘일그러진 애국주의가 번진다’는 한겨레신문 기사다. “아! 그래도 우리 사회에 비판적 지성이 살아 있구나.” 물론 한겨레도 좋을 때 보다 불만스러울 때가 훨씬 많다. 신문이니까. 그래도 나는 이런 기사에서 미래를 본다. 반가운 김에 한겨레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2005년 11월27일
대통령 노 무 현
| | <피디수첩>에 사이버 뭇매…‘일그러진 애국주의’ 번진다 | | | | * 다음은 <한겨레> 26일자 해당 기사 전문이다... 편집자 주
황우석 교수팀의 윤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비이성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22일 황 교수팀의 난자 채취 문제 등을 보도했던 <피디수첩>에 대해 마녀사냥식 공격을 가하고 나섰다. 또 황 교수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을 ‘매국’ 행위로 몰아가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 등 전문가들은 사회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려면 비이성적·감정적 애국주의에 빠지지 말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성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일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통해 <피디수첩>의 보도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많은 누리꾼들은 이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는 업체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올려 ‘불매운동’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각 업체들에 항의전화 등이 빗발쳐, 25일 이 프로그램의 12개 광고주 가운데 11개 광고주가 광고 중지를 요청했다.
누리꾼들은 또 인터넷에 이 프로그램 담당인 ㅎ아무개 프로듀서의 가족 사진을 공개하고 “가족들을 다 죽여라”는 등의 글들을 올렸다. 이로 인해 이 프로듀서 가족들은 바깥 출입도 하지 못하고 있다. 황 교수와 관련해 윤리 문제를 제기했던 민주노동당 게시판에도 이날 오후 현재 200건 이상의 비난 글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누리꾼들이 익명성에 기대 감정적 민족주의를 분출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황 교수 연구의 공과를 신중하게 따지지 못하는 언론의 태도가 이런 과격한 반응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엔지오학과 교수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사안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보도한 특정 방송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공격하면서 감정적인 민족주의를 배설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사이버상의 익명성을 이용해 여론몰이에 동조하기보다는 사실과 의견을 정확히 분리해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애초 언론이 황우석 교수의 난자에 대한 의혹을 전혀 다루지 않고 찬양 일색으로 ‘황우석 신드롬’만 키운 것이 문제”라며 “국민들이 <피디수첩>에 대해 보이는 맹목적이고 국수적인 반응의 책임은 결국 일차적으로 언론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한국언론정보학회장)는 “<피디수첩> 보도는 언론의 책무인 비판기능에 따라 당연히 보도했어야 할 사안으로 본다”며 “지금 당장은 비판이 쏟아지지만 멀리 보면 황 교수 연구에 건강성을 보태는 계기가 될 것이며,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연한 국익 논쟁보다는 윤리 문제와 여성의 건강권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해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척수를 다쳐 장애인이 된 김종배(미국 피츠버그대 재활기술학과 연구원) 박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줄기세포연구로 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척수손상인’이라고 밝히고 “개인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지만, 인권과 윤리 문제를 무시하고 무조건 난자를 기증하자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분명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선희 정혁준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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