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겨레문화계엔 어떤 일이 벌어졌나

2005년 겨레문화 7꼭지 큰 소식

등록 2005.12.30 21:47수정 2005.12.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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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을유년 한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섣달 내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한국의 과학계가 사기꾼 집단으로 몰릴 수 있는 황우석 사건이 세밑을 우울하게 장식했다. 이렇듯 한해를 보내면서 뒤돌아보면 많은 회한에 싸이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런 일들을 종합하여 연말이면 각 언론사에서 다투어 10대 뉴스를 내보낸다. 그런데 어디에고 전통문화를 정리하는 보도는 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문화란 소중한 것이고, 우리의 자존심일진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굿거리가 없어서야 할 일인가? 그래서 나는 모자라는 것이지만 을유년 한해에 일어났던 겨레문화 관련 큰 소식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거창하게 10대 뉴스까지 찾을 것까지는 없고, 7꼭지 정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1. 한글날 국경일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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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국립중앙박물관) ⓒ 김영조

맨 먼저 겨레의 자존심 차원에서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한글날 국경일 승격일 것이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문화 수준을 세계 으뜸으로 올려놓은 귀중한 가치가 있으며,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아닐까?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것에 한글이 압도적으로 꼽힌 것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글, 즉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 만든 때, 만든 목적을 아는 유일한 글자이며,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이 들어있는 글자로 언어학자들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더구나 이 한글은 세종임금이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여 만든 인본주의 글자라는 데서도 큰 뜻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권과 경제계의 잘못된 생각은 1990년 한글날을 일반 국경일로 낮춰버리는 무모함을 저질러 15년 동안이나 한글이 푸대접 속에 살도록 방치한 기막힌 세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간절히 바란 한글단체들의 끈질긴 싸움과 '한글 세계화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도움에 힘입어 드디어 지난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의안번호 173572)'이 통과되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기리는 잔치를 열 수 있게 되었다.

2.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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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경 ⓒ 국립중앙박물관

겨레 문화의 전당인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에 지난 10월 28일 개관했다.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역사를 마무리한 중앙박물관은 터 9만2900여 평, 건물 연면적 1만4000여 평, 전시 넓이 8100여 평으로 건물 연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6번째 큰 박물관이다. 새 박물관엔 국보와 보물 150여 점 등 총 1만 10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문을 연 이래 여섯 차례나 이사를 했던 중앙박물관이 광복 60년 만에 세계적인 수준의 전용 건물을 갖게 된 것이다. 겨레문화를 자랑하던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은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일이었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44일(휴관일 제외) 만인 12월 16일 관람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3. 북관대첩비 돌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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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국립고궁박물관에 야외 전시중) ⓒ 김영조

새 박물관 문을 열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었다. 문 연 날 박물관 가운데 통로 중심에는 많은 사람으로 둘러싸인 탑이 있었는데 그것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약탈된 뒤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오다 돌려받은 북관대첩비였다.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임진왜란 때 선비 출신의 정문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 3천 명이 일본의 2만2천 대군을 물리친 전공비인데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이다. 이를 1905년 러·일 전쟁 때 함경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여단장 이케다 소장이 주민들을 협박해서 파내 가져간 것으로, 한국의 선비가 일본의 사무라이를 제압했다는 큰 의미가 담겨있는 비이다.

도쿄 한국연구원 원장 최서면 선생이 밝혀내어 비문에 이름이 있는 의병의 후손들과 정부의 노력으로 반환받았다. 특히 지난 6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비 반환에 대하여 남북한이 합의한 뒤 급물살을 타 지난 10월 20일 10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1월 6일까지 국민에게 선보인 이 북관대첩비는 보존처리를 거친 뒤 내년 북한에 돌려주기 전까지 국립고궁박물관(경복궁) 야외 잔디밭에서 전시 중이다.

4. 강릉 단오제 세계무형문화유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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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의 한 장면 ⓒ 문화재청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은 유네스코가 없어질 위기에 있는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을 지정하여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성을 보존하고, 문화 간 관용과 조화의 상호교류 및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에서 채택한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가 이미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세계무형유산)'에 뽑히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무형유산으로 2001년의 '종묘 및 종묘제례악'과 2003년 '판소리'에 이어 올해 2005년에는 '강릉단오제'가 선정된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 제사에 쓸 신주(神酒)를 담그는 때로부터 5월 6일의 소제(燒祭)까지 50여 일이 걸리는 대대적인 행사로 강릉 남대천변의 단오장을 중심으로 영동지역 주민들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들이 관노가면극과 단오굿, 씨름, 그네타기, 윷놀이 등을 함께 즐기는 지역 전통잔치의 마당이다.

5. 청계천 복원

마침내 청계천에 다시 맑은 물이 흐른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1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청계천 새물맞이 축제'를 열어 수십 년 동안 닫혀 있던 청계천 물길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1937년 태평로~광교 구간이 처음으로 덮여진 지 68년 만이다. 1977년 박정희 정부가 하류까지 모두 시멘트로 덮은 때로부터 하면 28년 만의 일이다.

1394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로 천도한 이후 사대문 안 한복판을 흐르는 명당수인 청계천은 영조임금 때 대대적인 준천사업을 벌이기도 했으며, 많은 서민의 삶의 터전이 돼왔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개천 위를 덮는 복개 공사를 하고, 1967년 이후엔 고가도로까지 놓여 청계천은 자취가 사라져 삭막한 회색도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어온 터였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청계천을 다시 부활시킨 것은 생명질서의 회복을 꿈꾸던 학자, 작가들의 원대한 꿈에서 출발했다. 학자 20여 명은 2000년 '청계천살리기연구회'를 꾸려 복원 가능성을 연구했고, 작가 박경리씨 등은 생명 운동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의 당위성을 강하게 말해왔다.

이후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제1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시장이 당선됨으로써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총 3850억 원을 들여 마무리한 청계천 복원은 '문화복원'이 아니라는 문화계의 성토를 받아야 했다. 수표교 등을 제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끝내 큰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6. 광화문 현판 교체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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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 현판 ⓒ 이대로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현판은 박정희 전 태통령의 친필글씨로 과거사정리 차원에서 철거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일부에서는 친일파 박정희의 현판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주장했고, 한글단체 쪽에서는 한국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광화문 현판이 한자로 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며, 날카롭게 대립했었다.

이런 논란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으로 잠시 물밑에 가라앉았다. 문화재위원회는 광화문 건물의 복원 계획을 발표했는데 교체를 두고 논란을 빚었던 광화문 현판은 당장 교체하지 않는 대신, 조선 고종시대 원위치로 광화문이 복원될 때 그 시대 원형을 살려 복원하도록 했다. 광화문 복원은 2009년까지 완료 예정이지만 문화재청은 최대한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김형오 의원 등 국회의원까지 가세해 논란을 빚었던 현판 교체 문제는 일단 한글단체의 승리로 보이기는 하지만,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은 "문화재 복원은 원형을 찾아가는 게 원칙이다"라고 말해 광화문 현판 '한글 복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뜻을 밝혀 또 다른 논란이 숨어 있다고 하겠다. 현판은 '원형 복원' 원칙에 따라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복원될 전망이다.

7. 문화다양성협약 채택

나라 밖 소식으로 유일하게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을 꼽아본다. 그것은 나라 사이의 일만이 아닌 우리 문화를 지켜낼 수 있는 주춧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지난 10월 20일 "문화 콘텐트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협약(협약의 공식명칭ㆍ(Cultural Diversity Convention)"을 채택했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협약을 표결에 부쳐 148개 회원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만 반대했다. 미국으로부터 스크린 쿼터 폐지 요구를 받아온 우리나라도 어정쩡하게나마 찬성표를 던졌다.

협약은 "문화의 획일주의에 반대"하며 "각 나라가 자국문화 보호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협약 제20조는 "이 협약을 다른 어떤 조약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며, 다른 조약의 해석ㆍ적용시 이 협약의 관련 규정들을 고려한다"라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협약은 비준될 경우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물론 협약은 나라별로 비준되어야 효력이 생긴다.

영국의 비비시(BBC) 방송은 협약 통과를 "할리우드에 대한 승리"로 말한다. 협약은 미국 문화의 범람을 막기 위해 프랑스가 주도해 만들었으며, 주로 미국 영화와 음반의 일방적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문화를 상품처럼 보지 않고 별도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힘이 약한 나라가 세계를 향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문화일진데 이 협약은 그래서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 '겨레문화 7꼭지 큰 소식'은 나만의 생각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들이나 문화담당 언론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도 아닐 터여서 생각하는 이에 따라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을유년 겨레문화를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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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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