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사 35년 "지나보니 너무 짧구먼!"

대전 대신고 길홍기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등록 2005.12.31 17:15수정 2006.01.02 10: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선생님! 사랑해요!" ⓒ 박병춘

"샘! 사랑해요! 샘! 저희들 위해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2월 29일 오후 2시. 겨울방학을 하루 앞두고 대전 대신고등학교 2학년 6반 교실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평교사로서 교직 생활을 해 온 길홍기(윤리·62)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료교사로부터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카메라를 준비하여 2학년 6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더니, 학생들이 일제히 나와 칠판에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평소 잘 쓰는 언어와 감사의 마음이 담긴 문구들을 칠판 가득 적었습니다. 드디어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학생들은 일제히 교실 출입구에 모여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a

지난 35년 동안 오직 한 길 아이들 위해 사도를 걸어오셨습니다. 길홍기 선생님! 감사합니다. ⓒ 박병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기에 선생님께선 다소 당황하셨지만 이내 미소를 머금고 학생들의 열렬한 박수에 화답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고맙다!"

심약한 제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교탁에 놓인 출석부에 교과명과 지도교사 이름을 기록하고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떠셨을까요?

a

35년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수업. 그 2학년 6반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 박병춘

길홍기 선생님은 별명이 '길도사'입니다. 도사라는 별칭이 붙은 까닭은 그 동안 윤리를 가르치면서 대입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기가 막히게 적중시킨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주어진 일이라면 빈틈없이 모두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소유하여 길도사라는 별명은 저희 학교 역사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살아온 세월 참 많은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너무나 짧구먼!"

보름 전, 선생님께서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한 말씀 주셨습니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으니 교사의 길 참되고 바르게 걸으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평교사로서 35년! 이제 교직 생활 18년을 맞이하고 있는 제게 언제나 훈훈한 덕담과 바른 생활로 모범이 되어 주시던 선생님! 그 많은 세월 동안 결근 한번 안 하시고 승진 싸움이나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 길 아이들 위해 걸어오신 자취를 존경합니다. 선생님! 아쉬운 마음 넘치지만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축하합니다.

a

"그래그래, 이렇게 축하해주니 고맙구나!" ⓒ 박병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빌라왕'에 속고, 공인중개사에 속고... 인생 망했죠"
  2. 2 "나경원 털었던"... 그 검사 5명이 지금 하는 일
  3. 3 김만배와 8명의 법조팀장들, 그들이 모두 거쳐간 '이곳'
  4. 4 이 많은 '미친 여자'들을 어떻게 모았냐고요?
  5. 5 "난방비 폭등은 문재인 정부 탓" 국힘 주장 '대체로 거짓'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