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 유족들 "조작주범 전두환 처벌하라"

17일 연희동 전씨 집 앞 기자회견... "국정원은 김현희 비호 중단하라"

등록 2006.01.17 16:44수정 2006.01.1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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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L858기 대책위와 가족위가 17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지난 87년 11월 29일 승객 115명과 함께 추락한 KAL858기 사건이 당시 정권에 의해 폭파 테러사건으로 조작됐다고 주장해온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조작 책임자로 지목하면서 이들의 사죄와 진실고백을 촉구했다.

KAL858 사고 유족들로 구성된 '대한항공 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858기 사건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10여명은 17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노 전 대통령 등 당시 관련자들에게 의혹 해명을 요구했다.

대책위원회는 "사고 이후 지금까지 19년간 안기부의 수사 발표가 모두 거짓임을 확인했다"며 "(사건진상에 대한) 가족회와 대책위 질의에 대한 국정원의 답변도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현지조사 시작하기도 전에 '북한테러' 언급"

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21명의 인물 및 단체의 명단을 발표하고 연루 의혹에 대한 해명을 재차 주문했다.

가장 먼저 거론된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 대책위원회는 "전두환은 현지사고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12월 2일부터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의한 테러 추락사건'으로 언급했다"며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진상규명 요구를 묵살한 채 언론을 조종해 테러사건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론됐다. 대책위원회는 "노태우는 현지 수색이 진행 중인 13대 대선기간 선거연설에서 '북한테러'로 주장하며 사건의 진실을 호도했다"고 지적한 뒤 "유족들이 거부했음에도 일방적으로 김현희를 특별사면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또 당시 김현희씨 사면을 발표했던 최병렬 공보처 장관과 안무혁 부장, 이상연 국내담당 차장, 정형근 수사담당 차장, 박철언 특별보좌관 등 당시 안기부 주요 책임자 등이 조작 책임자로 지목됐다.

이어 당시 김현희씨 기소 및 재판과 관련된 이상형(김현희 담당 검사), 김기춘(검찰총장), 배석(대법관), 이회창(대법관), 김상원(대법관), 김주환(대법관)을 비롯 당시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했던 최광수 외무부 장관과 김씨 신병 인도를 맡았던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보 등의 이름도 언급됐다.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기자와 <조선일보>도 도마에 올랐다. 대책위원회는 이들이 "사고 이후 해마다 KAL기 사건 관련 보도를 통해 사건을 왜곡하고 관련 의혹을 감추는데 일조했다"고 비난했다. 수사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검찰과 대한항공, 김현희씨 등도 연루자 명단에 올랐다

대책위는 "국정원이 아직도 핵심 당사자인 김현희를 보호하고 있다"면서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진실고백과 사죄 ▲검찰의 수사기록 일체 공개 ▲국정원의 김현희 비호 중단과 진상규명 협조 등을 촉구했다.

"박철언, 사건조작을 기획한 책임자"

▲ KAL858가족위와 대책위가 "박철언이 조작을 기획한 주범"이라며 제시한 88년 2월 박철언 당시 안기부 특보가 김현희와 함께 찍은 사진.
ⓒ 오마이뉴스 안홍기
대책위는 사건 직후인 지난 88년 2월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김현희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며 "범죄자가 어떻게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안기부장 특보 사무실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느냐, 박철언이 사건조작을 기획한 책임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 사진은 박철언씨가 지난해 여름 출간한 회고록에 실린 것으로 당시 박 특보와 함께 안기부에 근무했던 강재섭 현 국회의원 등 4명이 함께 찍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대책위 측은 "기자회견문을 전두환씨에게 전달하겠다"며 전씨 집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막고 있던 경찰 20여명에 막혔다. 이들은 경찰에게 비켜줄 것을 요구했으나 봉쇄는 풀리지 않았고, 양측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대책위원회 측은 "KAL858기 조작 주범 전두환을 즉각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앉았고, 2시간 여 농성을 벌이다 오후 1시 20분쯤 자진 해산했다.

KAL858기 사건, '북의 테러'인가 '실종'인가

KAL858기 사고는 아직도 '폭파사건'으로 불린다. 그러나 유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KAL858기 사건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실종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지난 87년 11월 29일 미얀마(버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대한항공 KAL858편 보잉707 여객기가 흔적없이 사라졌고,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는 이를 '비행 중 폭발에 의한 추락사고'라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고가 하치야 신이치·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이름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저지른 테러였다고 발표했다.

체포된 김현희는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당시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승리를 위해 안기부를 동원, 조작한 사건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후 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대응은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사고 비행기가 교신을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지점에서 약 403km 떨어진 곳에서 수색작업이 벌어졌고, 원인규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블랙박스(비행기록 장치)를 찾기 위해 필요한 장비(수중공명위치탐지기)를 갖추지도 않은 채 수색하는 등 의도적인 소홀함을 보였다는 것.

또 정부는 실종자의 시체 한 구, 유품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사고발생 10일 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시켜 수색작업을 중단했고, 이후 김현희 자백에 거의 의존한 수사가 이뤄졌다.

비행기 사고의 경우 1년인 실종 유예기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교통부가 유족 동의없이 일괄적으로 사망 신고를 한 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현희가 설치했다는 폭발물의 양으로는 비행기 잔해가 한 조각도 남지 않을 정도의 폭발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대책위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바레인에 체포돼 있던 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한 것도 대선 하루 전 날이었고, 당시 압송 책임자로 바레인에 파견된 정부 관리가 압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바레인 수사당국에 떼를 쓰다시피 했다는 정황이 보도되기도 했다.

'폭파범' 김현희에게도 의혹이 발견됐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임을 입증하는 어린 시절 북한에서의 사진 3장을 발표했으나 사진 속 김현희 모습이 지금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현희 아버지 김원석이 사건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와 수사 당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80여곳에 이른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2002년 3월 유가족들은 이런 의혹을 풀기 위해 당시 수사기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냈고 2004년 2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KAL858기 사건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항소했고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판결에 다시 불복, 지난해 12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한편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지난해 2월 김대중납치사건, 민청학련·인혁당사건 등과 함께 KAL858기 폭파사건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정원 진실위는 그동안 김현희씨를 면담하고 당시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내용이 발표될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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