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신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다

등록 2006.02.18 13:34수정 2006.02.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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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7일)는 내 아들녀석이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다시 말해 내 모교이자 아들녀석의 모교가 된 태안중학교의 제58회 졸업식이 열린 날이었다.


(나는 태안중학교 14회 졸업생이다. 태안여자중학교를 나온 막내 누이를 제외하고 우리 7남매 중에서 6남매가 태안중학교를 나왔는데, 여기에 내 아들녀석이 보태지게 되었다. 지난해 오늘의 '가족메일'을 1년 후 같은 날인 오늘 내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 그 편지를 읽어보니, 지난해도 2월 17일에 태안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사실과 작은 생질녀석의 졸업을 축하하러 내가 졸업식에 참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의 태안중학교 졸업식에 내 아들녀석은 참석하지 못했다. 아들녀석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다. 서울 '한림대학교의료원 강남성심병원'의 한 병상에 누워 있다. 지난 14일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을 했고, 비뇨기 계통 정밀 검진을 받은 다음 20일 오후로 예정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콩팥 하나가 골반 가까이 내려가 있는데(보기 드문 기형인데), 정상 위치에 있지 않은 그 콩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능히 '정보 공유' 차원으로 가져갈 수 있는 사항이므로 자세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지난해 12월 13일 논산대건고등학교 신입생 예비 소집에는 참가를 했는데...큰 키에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
지난해 12월 13일 논산대건고등학교 신입생 예비 소집에는 참가를 했는데...큰 키에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지요하
나는 이틀 동안 줄곧 병원에 머물며 아들녀석의 정밀 검진 상황을 지켜보다가 16일 오후에 잠시 집에 내려와 있다. 딸아이가 서강대학교 기숙사에 입소하게 됨에 따라(15일 오후의 발표를 병원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했다) 급히 입소 준비를 해야 하는 사정에다가, 태안중학교 졸업식에 아들녀석 대신 참석하고픈 마음으로 16일 집에 내려온 것이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있다가 대학교 기숙사 입소 준비를 위해 같이 내려온 딸아이는 동생이 없는 중학교 졸업식을 지켜본 다음 점심도 먹지 않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동생을 외롭지 않게 해주려는 딸아이의 마음씨가 고맙다. 딸아이에게 동생도 없는 졸업식을 왜 굳이 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자기 눈으로라도 졸업식 장면을 자세히 보아두어야 동생에게 얘기를 해줄 것 아니냐고 했다. 아내는 오늘 학교 종업식을 마치는 대로 서울로 가기로 했고, 나는 20일 오전에 다시 병원에 갈 계획이다.)


지난 10일 천안 복자여고 졸업식에도 가서 누나에게 축하 꽃다발을 주었는데...
지난 10일 천안 복자여고 졸업식에도 가서 누나에게 축하 꽃다발을 주었는데...지요하
나는 예정대로 아들녀석이 빠지게 된 태안중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일단은 씁쓸하고 허전한 기분이었다. 아들녀석이 없는 졸업식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졸업식 후에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저마다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숱한 학부모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들녀석이 없는 졸업식에 참석한 내 초유의 경험도 특이한 일이지만, 아들녀석은 더욱 섭섭한 심정일 터였다. 병상에 누워 졸업식 풍경을 그려보고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자신의 신세를 아들녀석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병상에 누워 있느라 중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일은 아들녀석에게 평생 동안 우울한 기억으로 남을 터였다. 졸업식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그 허전한 기억의 공백은 그야말로 평생 '공백'으로 남을 것이 아닌가.

태안중학교 제58회 졸업식장 풍경. 딸아이가 찍었는데 왠지 어둡게 찍혔다.
태안중학교 제58회 졸업식장 풍경. 딸아이가 찍었는데 왠지 어둡게 찍혔다.지요하
아들녀석은 고등학교 입학 초입 머리에서도 이미 한가지 기억의 공백을 안게 되고 말았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3박4일 동안 실시된 논산 대건고등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불참을 한 것이다. 그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논산 대건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소를 하기 위해) 13일 오후 출발을 하려고 할 때 다시금 아랫배 한 곳의 격심한 통증을 겪게 되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하복부 한 곳의 이상한 통증 때문에 태안의 한 외과의원을 거쳐 방사선과의원에서 검진을 받은 다음 서산의료원으로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14일 오후 서울의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긴 것인데, 나는 아들녀석이 겪는(앞으로 더 많이 겪어야 할) 고통도 안타까웠고,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기억의 공백을 안게 된 것도 적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논산대건고등학교는 3월 2일 신입생 입학식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입학식에는 아들녀석을 꼭 참석시키고 싶었다. 비록 오리엔테이션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입학식만큼은 기억의 공유를 확보한 채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3월 2일 안에 해결을 볼 요량으로 강남성심병원으로 갈 때 응급실을 경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약 방식을 택하면 시간을 많이 잃을 터였다. 비록 구급차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응급실을 경유한 덕에 아들녀석은 쉽게 입원이 되었고, 정밀 검사가 잘 진행되어 20일 오후 수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2월 맹장수술을 했을 때 아들녀석은 회복이 빨랐다. 나흘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이번의 수술은 비정상 위치에 있는 콩팥과 방관 사이의 통로(방관)를 확장하고 각도를 교정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30분 정도 걸린 맹장 수술과 달리 서너 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회복 기간도 최소 일주일이라고 했다.

성장기에 있는 아들녀석이 빠르게 회복이 되어 이달 말쯤에는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렇게만 되면 3월 2일의 고교 입학식에는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졸업식 후 아들녀석의 졸업장과 상장들을 대신 받아 들고 조은상 담임선생님과 함께...
졸업식 후 아들녀석의 졸업장과 상장들을 대신 받아 들고 조은상 담임선생님과 함께...지요하
태안중학교는 올해부터 졸업식에서 처음 실시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졸업생 대표에게만 졸업장을 준 다음 각 교실에서 담임선생님들이 각자에게 졸업장을 배부하는 형식을 피하고 졸업생 전원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학교장에게서 직접 졸업장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지만 지난 10일 천안 복자여고에서 본 것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저 졸업장을 받은 다음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옆에 담임선생님이 서 있지도 않았고, 담임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아서 싱겁기도 했다.

또 하나는 졸업생이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을 때 무대 후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그 졸업생의 재학 시절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스크린에 나타나는 졸업생의 큼지막한 얼굴과 이름은 색다른 볼거리였고, 지금은 디지털 시대임을 실감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나에게는 아들녀석의 부재를 더욱 확연하게 부각시켜 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스크린에 눈을 주면서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녀석의 가엾은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삼켜야 했다.

아들녀석은 3년의 중학 시절을 잘 살았다. 공부도 잘해 주었다. 202명 중에서 3년 종합 4등이라고 했다. 우등상과 3년 개근상, '태안군교원총연합회장상'과 표창장(공로상)을 받고,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는다고 했다.

그 바람에 반장 친구가 세 번이나 단상에 올라 대신 상을 받는 수고를 해야 했다. 남의 상을 대신 받는 것은 어찌 보면 고역이기도 할 터였다. 그 일을 권현진이라는 친구가 기꺼이 맡아주었는데, 그 학생은 아들녀석과 가장 친한 사이였다. 우리 집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3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되면서 아들녀석에게 이끌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성탄 때는 세례도 받았다. 세례를 받으면서 동갑인 내 아들녀석을 대부로 삼았을 정도로 그들은 각별한 사이였다.

비록 3년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내 아들녀석은 병상에서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나는 졸업식장에서도 잘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내게 와서 아들녀석의 안부를 물었다. 아들녀석의 휴대폰에 친구들의 문자 메시지가 폭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병실에서 안 사항이었다. 아들녀석이 수술을 받고 나면 봄방학을 이용하여 친구들의 면회 행렬이 이어지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10일 천안 복자여고 졸업식 후 가족이 함께 한 기념 사진. 17일의 아들녀석 중학교 졸업식장에서도 이런 가족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지난 10일 천안 복자여고 졸업식 후 가족이 함께 한 기념 사진. 17일의 아들녀석 중학교 졸업식장에서도 이런 가족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지요하
아들녀석이 병실에 있는 바람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그리하여 3년 중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기억을 친구들과 공유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안타깝고 안쓰럽긴 하지만, 아들녀석이 중학 시절을 잘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콩팥 하나가 비정상 위치에 자리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들녀석이 병상의 고통을 치르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은 감사한 일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듯한 수술이 잘 되어 아들녀석이 하복부 통증 고통에서 해방되고,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비정상 부위 콩팥의 남은 기능도 평생 잘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부터는 아들녀석의 건강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수술이 잘 되고 빨리 회복되어 아들녀석이 3월 2일의 고교 입학식에는 꼭 참석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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