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이 가장 비열하고 조폭스러웠다"

[한국의 검사들 ③] 김영광 조폭전담 검사에게 듣는 '조폭 20문20답'

등록 2006.03.24 09:23수정 2006.03.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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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조폭도 지역별로 특징이 있나? 전라도 출신 조폭이 더 많다는 느낌을 받는데.
"1970년대 서울에서 깡패 100명을 잡으면 90명은 전라도 출신이었다. 전라도는 공업화가 되지 않아 깡패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먹고 살 기반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왔다. 부산 '칠성파' '신20세기파', 대구 '동성로파', '향촌로파' 등도 잘 나가는 깡패들이다. 그런데 왜 서울로 안 왔을까. 부산·대구는 산업화가 되면서 룸살롱이나 오락실 등 먹고살 경제시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라도 깡패가 서울을 접수한 후 고향 후배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산·대구 깡패는 서울로 진출이 안 됐다. 칠성파만 해도 부산에서는 그렇게 휘어잡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세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경상도 출신 깡패는 적고, 대부분 전라도 목포·순천·보성·전주 출신이다. 양은이파, 서방파, 오비파, 전주 월드컵파, 목포파, 순천시민파, 보성파, 군산 그랜드파, 이리 배차장파 등 큰 조직들은 그 지역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다.

재작년 중반까지 서울중앙지검 조직폭력 전담 검사가 3~4명이었는데, 모두 경상도 출신이었다. 그래서 서울 깡패들은 '경상도 출신 검사들이 전라도 출신 깡패들을 다 때려잡는다, 뭔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얘기하더라. 그런데 깡패 잡는 데 고향 같은 것은 필요없기 때문에 위에서도 (인사에) 신경을 안 쓴 것 아니겠나."

[질문 2] 일상생활에서는 조폭의 존재를 실제 피부로 느끼기 힘들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조폭은 어떤 유형이 있나.
"유흥주점에 가면 깡패들의 최말단 친구가 있고, 성인오락실은 깡패들의 힘과 자본주의의 돈이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마시술소나 남성휴게텔 등 퇴폐 유흥업소에는 조폭 끄나풀 정도가 나와있고, 조직은 뒤에 들어가 있다. 이게 공생관계다. 조폭이 없으면 그 사람들이 장사를 못 한다. 일반인 중에도 성격이 과격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들도 영업이기 때문에 소위 '깍두기' 머리에 검정 양복 입은 인간들이 보이면 영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가능하면 그런 인간들은 노출을 안 시킨다. 깡패들도 20~30대 초반이나 깍두기 머리를 하고 있지, 30대 중반 넘어가면 아주 세련돼 있다. 살도 빼고 머리도 기르고 잘 생긴 깡패도 꽤 있다. 그런 깡패가 계급도 높다. 가끔 길에서 덩치가 작은 깡패가 덩치가 산만한 깡패 뺨을 때리거나 정강이를 차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폭들의 패션, 페라가모 구두에 미소니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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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질문 3] 젊은 조폭은 왜 '깍두기' 머리를 하나?
"모르겠다. 패션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깡패들의 패션에 공통점이 있다. 깡패들은 항상 명품으로 알려진 페라가모 구두에 미소니 양말을 신는다. 깡패를 불구속 수사할 경우 윗옷은 양복이나 점퍼를 입지만 정장 바지를 입을 경우 10명이면 9명은 반드시 이 상표를 신더라. 왜 그 상표를 선호하는지는 모르겠다."

[질문 4]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 불어닥친 조폭열풍은 어떻게 보는가.
"국민들이 (조폭 세계를) 안 겪어봐서 그럴 것이다. 별개의 세계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정말 의리 없는 조직이고 돈 없는 조직인데, 영화에서는 정말 의리도 있고 돈도 있고 로맨스도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질문 5]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검사가 조폭을 잡으러 직접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는?
"해방 이후 몇 번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1990년대에 '자녀 안심 운동'을 하면서 검사들이 그런 것을 계획했는데, 그 때도 총이 아니고 가스총을 들고 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질문 6] 싸움 잘 하나? 유단자인가?
"제 체격이 이런데 싸움을 잘하겠나? 하하. 전혀 배운 적 없다."

[질문 7] 조폭 검사는 다른 검사에 비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나?
"조폭 검사를 하려면 집착을 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질문 8] 총은 쏴 봤나?
"개인적으로 훈련장에서 쏴본 적은 있지만 검사 직무와 관련돼서 검사들에게는 총이 지급되지 않는다. 원래 규정상 그렇다. 총을 쓰려고 해도 신청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대신 가스총은 들고 다닌다. 가스총은 검찰청에 비치되어 있는 수사용품이지만, 총은 검찰청 전체에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안다. 검사는 총을 안 쏜다."

"'조폭검사'는 총 안 쏜다, 현장도 거의 안 나간다"

[질문 9] 조폭 영화를 본 적이 있나.
"<공공의적 2>를 보고 감상문을 써달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쓰기 싫어서 끝까지 안 보다가 지난 설에 TV에서 봤다. 우리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하려고 상당히 노력했다. 전에 근무했던 1110호 검사실 사진을 찍어서 그대로 만들었더라. 스토리도 그렇고 하여튼 검사에 대해 비교적 애환을 잘 그려준 부분은 있는데, 여전히 영화라는 측면이 있으니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조폭 전담 검사는 부하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죽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던데, 난 '오토바이 안 타야지'하는 생각만 했다.

그 외에 <조폭마누라> <넘버3>, <친구> 등의 영화를 봤다. 드라마도 그렇고, 검사가 매일 노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 그렇게 노는 검사는 없다. 평일날 감히 나가서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인데, 드라마니까 그런 것 같다(웃음)."

[질문 10] 영화 속 조폭 담당 검사와 실제 검사의 차이점은?
"제일 큰 차이는, 검사는 여간해서 현장을 나가지 않는다. 거의 안 나간다고 보면 된다. 검사가 현장에 나가면 객관적인 판단력을 잃게 된다. 조폭 수사의 경우 검사는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조폭을 검거하거나 정보를 수집할 때 전문적으로 나가는 검찰 수사관들이 있다. 서울중앙지검에만 9명이 있는데, 모두 무술 유단자들이고, 조폭 정도는 충분히 제압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여자 조폭검사는 있었지만, 여자 조폭은 드라마에서만"

[질문 11] '조폭 검사'역에 가장 잘 어울렸던 영화배우와 '조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배우를 꼽는다면.
"본 영화는 많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공공의적 2>를 본 게 가장 최근인데 (설경구씨가) 검사 쪽에 가장 부합했던 것 같다. 조폭으로는 <친구>에 나왔던 장동건씨가 가장 비열하고 조폭스럽게 연기한 것 같다."

[질문 12] 조폭 담당 검사 중 실제 여성 검사가 있는가.
"수원지검에서 조폭 담당으로 정옥자 검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있다. 다시 조폭 담당 검사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 지금은 여성 검사가 없다."

[질문 13] 조직폭력배 보스 중 여성이 있는가.
"여자 깡패조직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에서 봤지만 우리가 다룬 사건에서는 아직 못 봤다. 아직 여자 깡패에 대한 사건을 수사해본 적은 없다."

[질문 14] 영화에서 보면 망치나 번개처럼 별명을 쓰는 조폭이 많던데 실제 그런가.
"내가 수사했던 조폭 중에 토끼, 엄지 정도는 있는데 특별히 유명한 조폭 중 그런 별명을 쓰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청량리 지역 깡패의 모체가 됐던 조폭이 '까불이파'인데, 두목의 별명이 까불이였다."

[질문 15] 사시미, 재떨이 같은 별명을 쓰는 깡패들은 정말 그런 무기를 쓰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보통 칼을 쓴다. '칼잡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폭이 있다고 하면 검거하러 나갈 때 더 조심을 하기는 한다."

[질문 16] 조폭들은 배신을 하면 정말 손가락을 자르는가.
"30대 후반 이후 조폭을 보면 손가락 하나 없는 사람이 꽤 있다. 배신만이 아니고 무엇을 결의할 때도 하나씩 자른다. 20대 조폭 중에서는 아직 못 봤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가락의 마디 하나를 다 자르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고 손가락 끝 부분을 조금 자른다. 생각해 봐라. 마디를 자르려면 뼈가 있어서 얼마나 힘이 들겠나. 그래서 손가락 끝을 자르더라."

"불법 카지노바 단속 중 신정환씨 발견, 우리도 놀랐다"

[질문 17] 조직폭력 전담 검사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2002년 하반기부터 조폭 담당 검사를 했다. 꼭 계기라기보다는 평소에도 조폭 수사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고 싶었고, 기회가 온 것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하고 싶다."

[질문 18] 조폭에게 협박을 당한 적은 없나.
"(다른 검사는) 꽤 있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우발적으로 '두고 보자'는 말을 하긴 했지만 계획적으로 협박을 한 적은 없었다."

[질문 19] 조폭 전담 검사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는.
"조폭과 연계된 불법 카지노바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정착되기 전에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10월 강남 일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한 카지노바를 덮쳤더니 거기에 가수 신정환씨가 있었다. 있는 줄 모르고 갔는데 신씨가 있어서 사실 우리도 많이 놀랐다.

사건 자체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후 국민들이 카지노바 폐해에 대해 알게 됐고, 경찰이 집중단속을 벌여서 지금은 카지노바라고 내놓고 영업할 수 없게 됐다. 예상치 않게 신씨가 현장에 있어서 언론에 보도가 됐고, 결과적으로 신씨가 희생양처럼 됐지만 나름대로 단속을 촉발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그 때 신정환씨 말고 다른 연예인도 있었다는 루머가 떠돌았는데, 적어도 우리가 덮쳤던 현장에 다른 연예인은 없었다."

[질문 20] 조폭 전담 검사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은.
"업주들로부터 지역이 조용해졌다는 편지가 많이 온다. 깡패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는데, 구속 돼 1∼2년 살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는 깡패들의 편지도 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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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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