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 어떡하면 좋아요?

동네 아이들이 다 돌아와도 내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록 2006.04.05 18:19수정 2006.04.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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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이들이 다 돌아와도 내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나 아들 때문에 방과 후면, 신경전이 벌어진다. 머리꼭지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되어야 잠잠하던 핸드폰이 숨가쁘게 울어댄다.

"통화를 원하시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주세요."

핸드폰 맨위에 있는 숫자버튼 1을 누름과 동시에 나의 입에선 고운말이 나갈 리가 없다. 그럴 때마다 왠 변명거리는 그리도 많은지.

5학년인 딸아이는 툭하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떡볶이를 사먹는다거나, 아니면 모닝 글로리에서 예쁜 학용품을 구경하다가, 그래도 학원 갈 시간이 남았다 싶으면 놀이터에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뺑뺑이를 돌리며 놀다 오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면 이집 저집 전화해서 친구들을 불러모아 수영장을 꼭 가야 하고, 아니면 안양천이나 길거리에서 인라인스케이트라도 타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저번 일요일엔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 가 본 곳이어서 그만 지하철을 반대로 타 저녁 7시쯤에야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의 말은 놀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고, 반성문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손 들고 꿇어앉아 벌을 섰다.

그런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딸아이의 방과 후는 여전히 늦다. 조바심에 복도에 나가 내려다 보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오리무중이다. 그러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를 원하시면 아무 버튼이나 눌러주세요."

아파트 내 공중전화박스에서 거는 전화였다. 1번을 누름과 동시에 통화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매우 들떠 있었다.

"엄마, 오늘은 좋은 일 했어."
"뭐~, 좋은 일 뭐?"
"중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양평역이 어딨냐고 묻길래 이 길로 주~욱 가시면 된다고 했는데도 모르겠다고 하셔서 양평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는길이야."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분명 착한 일이구나. 그런데... 너 혼자 갔었니?"
"혼자 갔어. 고맙다고 할머니가 500원을 주시길래 요 앞에서 애플파이 사먹었어. 나 거짓말 아니야. 정말 좋은 일 했다니깐~."

이럴 때 왜 의심부터 하게 되는지. TV에서 연이어 없어지는 아이들의 그림 화면이 순간 내 얼굴에 오버랩 되는 건 팍팍한 나의 인심 탓일까.

"다음부턴 그럴 경우 될수 있으면 친구와 함께였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좋은 일이 두 배가 되지 않겠어. 얼른 올라 와서 책가방 다시 챙겨야지."
"알았어용, 엄마."

통통 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가볍다. 등 뒤로 쌩하니 날리는 바람소리가 딸아이의 기분을 말해주듯 웃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학생인 아들은 땡하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 사우나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 모습으로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오기가 일쑤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엔 아예 손등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농구를 하다가 결국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인들 어찌 이 아이를 이해하겠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을 2년 동안 들어왔는데 아직 1년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다.

다들 얌전히 교복을 입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을 때에 아들아이는 교복와이셔츠 윗단추가 하나는 풀어져 있고, 이마에는 삐질삐질 땀이 흘러내리며 조끼까지 갖춰입은 아이들 틈에 혼자 하얀 와이셔츠만 입은 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한다고 하니 믿고 지켜봐주는 길이 최선의 길이라 여기며 살며시 뒷문을 빠져나왔다.

학기초에 공개수업을 참관하다가 본 모습인데, 3학년이 되어도 여전한 것을 보니 아들아이 가슴엔 아직도 활화산 하나가 타고 있나 보았다. 그렇게 뛰지 않으면 내 몸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들은 아이답게 놀아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글귀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10대에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듯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분명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앞지르거나 또 너무 퇴보적인 사고와 행동도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이 오류를 최소한 간소화하며 성장해 주기를 잠깐이나마 기도를 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나는 건 봄날의 새싹처럼 하나하나 머리를 디밀고 올라오는 지난날의 추억이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혼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건 흉내를 잘 내는 딸아이 때문이다. 한 쪽 다리와 팔로 '띠리띠리띠리'하며 엇박자로 댄스를 할 때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보기와는 달리 남을 잘 웃게 만드는 딸아이의 개그때문에 가끔은 행복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여서 어른이 되었을 땐 추억거리가 되겠거니 생각하면 그다지 야단칠 일도 없지만 조금만 더 놀기 좋아하는 것을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러다보니 깨지고 다치는 것이 다반사다.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싸우며 사랑하며 채워나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너무 놀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때문에 난 지금도 복도 난간에 서서 동네를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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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느낀점을 수필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제이름으로 어느곳이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한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여기서 여러기자님의 글을 읽어보고 용기를 얻어 한번 지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김해등님의 글이 자극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이런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실력은 없습니다. 감히 욕심을 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엔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을만큼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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