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수도회 '쟈코뱅 교회'에 가다

분홍빛 도시, 프랑스 남쪽 도시 뚤루즈에서

등록 2006.06.30 22:41수정 2006.07.02 08:01
0
원고료로 응원


쟈코뱅 교회는 뚤루즈라는 프랑스 남쪽 도시에 있다. 교회는 '어부들 수도회' 소속 수도원과 함께 있으며, 이 수도회의 수도사들을 '쟈코뱅'이라 부른다. 그래서 교회의 이름이 쟈코뱅이다. 쟈코뱅 교회는 뚤루즈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도 있는데, '어부들 수도회' 소속 교회는 모두 쟈코뱅 교회라고 불린다.

'쟈코뱅'이라는 이름에서 금방 프랑스혁명을 좌지우지 했던 '쟈코뱅파'가 떠오른다. 이 그룹은 물론 수도사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아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공격을 당하고, 그해 10월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가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이송되었다.

그후 로베스피에르도 끼여있었던 의원 그룹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비밀리에 소그룹 모임을 가졌는데, 그곳이 바로 파리의 쟈코뱅 교회였다. 그런 이유로 이들 그룹을 쟈코뱅파라고 부르는 것이다.

뚤루즈의 쟈코뱅 교회는 1230년에 짓기 시작해서, 1335년경에 마무리를 한다. 도시 전체에는 옅은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넘쳐나고, 그래서 뚤루즈는 '분홍색 도시'라고 불린다. 교회도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벽돌 집인데, 교회 안의 벽과 기둥은 회색, 베이지색과 섞이면서 분홍빛이 돈다.

a

c2.jpg ⓒ 최미숙


교회 한 쪽에는 수도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낡았지만 육중한 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서면 수도원의 정원이 줄 맞춰 정렬된 기둥들 사이로 보인다.

1790년 이래로 수도원은 문을 닫았지만, 2차 대전 후에 잘 복원을 한 덕에 수도사 한 명 없어도 여전히 수도원 냄새가 난다. 엄숙, 경건, 그리고 조용. 아니 어쩌면 그냥 조용하기만 한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은 공간에 덧붙이는 나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이의 소란스런 웃음, 투정, 뛰는 소리가 울리던 햇살 좋은 아침이었다.

a

j14.jpg ⓒ 최미숙



뚤루즈의 쟈코뱅 교회가 내게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가끔 교회나 성당의 바닥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돌이 부족해서 다른 돌을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수도사들의 묘지이다. 이런 형태의 무덤을 불어로는 '세필튀르'라고 하고, 묘비석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a

s1.jpg ⓒ 최미숙



a

s4.jpg ⓒ 최미숙



쟈코뱅 수도원 바닥에서 발견한 묘비만도 12개였다.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찬찬히 둘러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본다. 1658년, 1769년, 1875년 아직도 선명하게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묘비들을 밟으면, (바닥에 있으니 밟을 수밖에…) 세월을 밟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시간은 내 발 밑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1228년에서 1274년까지 살았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묘지도 이곳에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대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에 근거한 신의 해석에 반대한다. 즉, 현실 세계와 이데아(신)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플라톤식 해석을 거부하면서, 그는 질료(현실, 감각)와 형상(이데아, 지성)은 결합돼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여 신을 해석한다. 신은 그가 창조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어찌됐든 간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어 돌아간 곳은 쟈코뱅 교회였고, 1368년 그의 묘지는 뚤루즈에 있는 다른 성당, 생-세르낭으로 옮겨졌다.




생-세르낭의 문 앞에까지 갔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의 무덤을 찾아보는 대신, 아이와 성당 문 앞에 있는 돌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맞은편 길모퉁이에 있는 악사들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말이다.

아랍풍의 처연한 노래와 감미로운 기타 소리가 성당을 감싸고돌았다. 새에게 빵을 나눠주랴, 노래 들으랴, 또 내 채근에 못 이겨 샌드위치를 먹으랴 바빴던 산이는 샌드위치를 다 먹고 길을 떠나며 내가 들려준 동전 하나를 악사들의 깡통에 집어넣는다. 커다란 하얀 웃음을 지으면서 악사들은 "메흐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부끄러운 산, 얼른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5. 5 채상병·김건희 침묵 윤석열... 국힘 "야당이 다시 얘기 안 해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