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한다고, 그럴 수도 있지"

[서평]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등록 2006.07.11 11:23수정 2006.07.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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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겉표지. ⓒ 문이당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축구는 이 소설의 인물이고, 사건이고, 배경이다. (그래서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재밌게 읽었고, 축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누군가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겠고, 축구에 대해 아예 모르는 누군가는 모르는 부분이 나와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읽는 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식의 재미를 느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인 '나'와 FC 바르셀로나의 팬인 '아내'와 역시 FC 바르셀로나의 팬인 아내의 또 다른 남편 '그놈'. 세 사람의 인연은 축구에서 시작되어 축구로 계속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아내'라면 '나'의 아내일 텐데, 그렇다면 '나'는 아내의 남편인 것인데, 아내의 또 다른 남편인 '그놈'이라니?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러면서도 나와 이혼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이혼하지 않았다. 역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런 아내와 헤어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놈은 남편이 버젓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 또한 사랑한다는 이유로.

대체 사랑이 뭐길래?(177쪽)


그렇다. '나'와 결혼한 '아내'는 '그놈'과도 결혼했다. "일부일처제가 절대 유일의, 절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내에게는 남편이 두 명인 것이다. 감독인 아내는 '나'와 '그놈'의 투톱 체제를 고수한다. 원톱 스트라이커로 뛰고 싶은 '나'의 마음은 몰라주면서 말이다. '꼭 그렇게 투톱을 유지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내의 대답은 '그렇다' 일 것이다. '아내'는 투톱을 모두 사랑하니까. 아,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아이를 낳고 아내는 매우 뿌듯해했다. 그녀는 두 명의 남편 앞에서 의연했고 당당했으며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오직 행복한 삶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삶이라고 말하려는 듯이.(267쪽)

두 남편과의 두 집 살림살이에서 아이까지 낳는 '아내'. 그녀의 캐릭터에 내가 빠져 들었던 것은 단지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과의 결혼을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전부야."라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다가도 '꼭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것도 같은데'하게 되다가 나중에는 '생각해보면 어떻게 말이 될 수도 있는 거지'하게 만들었다.

사실 한 사람과 수십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한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닌가? 정말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일까? 훌쩍 소설은 빠르게 읽었지만, 소설이 끝나고 내 사고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결혼한 내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남편도 여전히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 안의 누가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도 있지' 내 안의 또 다른 누가 말한다. 물론 나는 두 남편과 함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 '아내'처럼 두 집 살림을 그렇게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나의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일부일처제(곧 일처일부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남편을 둔 소설 속 '아내'에게 불쾌감이나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은 틀렸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녀는 '나'도 사랑하고, '그놈'도 사랑하고, 자신의(!) 딸도 사랑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어떻게 함부로 욕할 수 있을까.

20년의 나이 차이에도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성별인데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생각을 틀린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가진 신념과 어긋난다고 해서 '일처다부제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신념을 쉽게 버리지 않는 사람은 멋지지만, 신념을 버려야 할 때 버리는 사람은 더 멋진 법이다. 나는 여전히 일처일부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일처다부제로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는 각 팀에서 11명이 뛰는 것이 규정이지만, 퇴장으로 10명이 뛴다고 해서 축구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떤 동네에서 축구를 각 팀에서 12명씩 뛰면서 즐긴다고 해서 그것을 '저건 절대 축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이 말이다. 11명이 아니라 12명이 뛴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축구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일처일부제가 아니라 일처다부제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 있는 가족'일 것이다.

그래서 내게 이 소설은, '축구를 인물, 사건, 배경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 2006.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덧붙이는 글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문이당, 2006.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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