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날 이해할 수 있겠어요?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의 주인공 '마리안네'가 띄우는 편지

등록 2006.07.30 11:35수정 2006.07.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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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어떤 말이든 변명이 될 뿐이겠죠. 그렇지만 난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은 그냥 들어주세요.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당신은 짐작조차 못 하시겠죠.

나는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의 주인공 마리안네에요. 시아버지와 남편 막스가 있는 집을 버리고, 사랑하는 아이까지 놔두고 집을 나와 버린 여자예요. 한 남자의 단 한 마디 때문에 훌쩍 그 남자와 함께 떠난 바로 그 여자예요.

아직도 그를 처음 봤을 때가 생생해요. 나는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그는 남편 막스의 제안으로 제정된 상을 타게 된 작가였죠. "현실에 대해서 예술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는 그의 말에 난 귀를 쫑긋 세웠고, 그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에 관심을 쏟았어요. 처음 본 남자였는데도 말이죠. 그도 나를 보고 있었어요. 나는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내게 다가와 그 말을 건넨 순간. 아, 난 이제 더 이상 내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던 거예요. 어쩌면 나는 그 순간을 지난 몇 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기다려왔던 건지도 몰라요.

아니, 첫사랑 아르님과 헤어졌을 때부터…. 아니아니, 태어났을 때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것도 같아요. 말이 안 되지만, 그 순간 내게는 모든 게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그와 함께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잘못된 일인 것 같았어요. 그건 우연이라거나 운명이라거나 하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했던 그 모든 것이 실은 당연한 일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예술가와 함께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몰랐어요. 그는 자신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간다 해도 그러려니 할 사람이었어요.

누군가를 질투한 적도, 무엇에 상처받은 일도 없었다고 했어요. 그런 면에서 그는 차갑고 건조한 사람이었죠. 그는 늘 자기는 진짜 작가가 아니라고, 자기가 글을 쓰게 된 것은 권태로움 때문에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했죠.

무엇이 그를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어요.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늘 무언가를 감추는 그의 모든 것을 나는 알고 싶었어요. 무엇이 그를 지금처럼 만든 것인지, 왜 나를 자꾸 밀어내는지 나는 궁금했어요.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외출을 하는 것뿐이었죠.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는 내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를 떠나려고도 했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차마 그 사람을 배신할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그가 쓴 시를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는 행복을 꿈꾸고, 그것을 알고 있지만
가질 수는 없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불행…….


그는 형편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가 좋았어요. 행복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도 그 순간 행복할 수 있었던 걸까요? 우린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어떤 순간은 전 생애 이상의 순간이기도 했죠. 그러나 그의 시처럼 사람이란 존재는 행복을 완전히 가질 수 없는 거겠죠?

우리는 11월을 기다리면서 견디고 있었어요. 우리는 약속했거든요. 늦어도 11월에는 그가 쓴 작품으로 개막 공연을 할 것이라고, 연극이 성공하면 우리가 산 폭스바겐에 올라 함께 여행을 떠날 거라고요.

그러나 결국 11월이 되기 전에 나는 그를 떠났죠, 첫사랑 아르님을 떠났던 것처럼. 아르님을 떠난 건 그가 유부남이어서가 아니에요. 부모님이 반대했기 때문도 아니에요. 나는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막스와의 안전한 결혼생활이 낫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언제나 떠나는 건 나였죠. 나는 비겁했어요. 그는 붙잡지 않았고, 나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어요.

예전과 같은 평온한 삶이 지속됐죠. 행복한 삶이 아니라 평온한 삶 말이에요. 남편은 내가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보이도록 내가 행동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예전의 나와 같을 수는 없었어요. 내 머릿속에는 그와의 시간이 남아 있었죠.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여자는 그럴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요?

나는 11월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침내 11월이 되고, 아! 약속을 지키듯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죠. 내가 사는 도시에서 말이에요. 약속대로라면 나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앞자리에서 공연을 봐야 했죠. 나는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약속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죠. 그는 우리 집에,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던 거예요.

그 다음의 얘기는 더 이상하지 않을게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모든 게 우리 두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던 걸요.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남자의 단 한 마디 때문에 가정을 버리는 여자를 말이에요. 나를 욕할지도 모르죠.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할 지도 몰라요.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도덕적으로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게,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그게 잘못일까요?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에게 어떤 남자가(혹은 어떤 여자가) 다가와 그 말을 건넨다면. 그가 내게 했듯 그렇게 말을 한다면. 아마 당신도 그 말 한마디를 이겨낼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내게 말했죠.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그 순간. 당신도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덧붙이는 글 | <늦어도 11월에는>은 1955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공감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소설 속 여주인공 '마리안네'가 되어 이 편지를 써봤다.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문학동네, 2002.

덧붙이는 글 <늦어도 11월에는>은 1955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공감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소설 속 여주인공 '마리안네'가 되어 이 편지를 써봤다.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문학동네, 2002.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문학동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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