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통령과 총리는 똑같이 생겼다

[해외리포트]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국정 최고책임 맡은 나라

등록 2006.07.31 01:43수정 2006.07.3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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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동생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임명장을 수여 받고 있는 형 야로스와브 카친스키. ⓒ Gazeta Wyborcza

지난 7일 저녁 폴란드 국무총리인 카지미에즈 마르친키에비츠가 느닷없이 사퇴를 선언하자 폴란드는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마치 미리 준비한 듯, 그의 사임 직후 바로 폴란드 최대 여당인 ‘법과 정의당’은 차기 총리로 현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형인 야로스와브 카친스키를 지목하였으며, 10일 예상대로 그가 총리직에 올랐다. 폴란드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대통령과 총리직을 맡는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폴란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두 자리를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2005년 9월 의회선거 때부터 나온 상태였다. 이 선거로 야로스와브 카친스키가 당수를 맡고 있는 법과 정의당이 승리를 거두자 자연히 그가 국무총리가 될 것이라 예상했고, 그의 동생인 레흐 카친스키는 10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상태였으므로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총리와 대통령을 두 형제가 차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리 물망에 올랐던 형 야로스와브는 동생의 대통령 출마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총리 자리를 7일 사임한 마르친키에비츠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동생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은 절대로 총리 직을 맡지 않을 것이며, 설마 동생이 낙선한다 해도 마르친키에비츠의 일을 도우며 정치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10일 그가 총리가 되면서 그 약속은 1년도 못 돼 깨어지고 말았다.

독-러에 의해 폐허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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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영화 <달을 훔친 두 아이에 관해서>에 출연한 쌍둥이 형제들.

겉으로 보기엔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완벽한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 이 두 사람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9년 6월 18일 독일과 러시아 양국의 침략과 폭격에 의해 잿더미가 된 바르샤바의 폐허 속에서 45분 간격으로 태어났다. 그들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정치에 데뷔하기 훨씬 전인 1962년, 14살 나이에 ‘달을 훔친 두 아이에 관해서’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하면서부터이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쌍둥이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그 영화는 폴란드 영화 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앓아도 같이 앓고 기뻐해도 같이 기뻐한다는 일란성 쌍둥이답게 그들의 행로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똑같이 법을 전공했고 80년대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운동에 참여하면서 같이 정치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생 레흐는 자유노조와의 연루로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자유화 후 바웬사가 폴란드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오른팔로 정치계에 떠올랐다.

그러나 레흐는 공산시절 당시 친 소련인사들과 그들의 비밀조직에 동조했던 정치인들을 척결해야 하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바웬사 대통령과 마찰을 빚기 시작하다가, 끝내 등을 들리게 되었고 ‘폴란드에서 가장 생각 없는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정치에서 물러나는 듯 했다.

그러나 90년대 말 레흐가 법무장관 직에 올라 정치적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도래했다. 2001년 레흐는 형인 야로스와브와 함께 현 법과 정의당을 창설했고. 2002년에는 바르샤바 시장 직에까지 올랐다. 바르샤뱌 시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부패와 관료 제도를 일소하는 등 여러 가지 성과로 그의 인기가 올라가는 듯 싶었으나, 2005년 초 바르샤바에서 열릴 계획이던 폴란드 동성애자 축제를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하자 세계의 인권단체와 유럽연합으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했다.

최근 10여 년간의 정치적 성과를 바탕으로 레흐는 마침내 2005년 10월 폴란드 대통령에 출마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 폴란드 내 분위기는 '시민연대당‘의 후보였던 도날스 투스크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아 레흐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였다. 예상을 뒤엎고 미미한 차이로 레흐는 폴란드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번 7월 10일 그의 형인 야로스와브마저 총리 직에 오르면서, 이 쌍둥이 형제는 폴란드 내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 가는 길에 독일과 러시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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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된 카친스키 형제에 관한 서적.

카친스키 형제가 이끄는 법과 정의당은 민족주의와 서민을 대상으로 한 풀뿌리 민주주의, 그리고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이 섞인 극우정당으로 손꼽히며, 그들의 외교정책이 가진 성격은 극도의 친미와 친 나토주의로 요약된다. “완전한 정치적 공동체 형태로의 유럽연합” 을 반대하고 각국 정부들에게 많은 권리를 이양하는 연방체제의 공동체를 지향하여 유럽연합헌법의 비준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권한을 늘려서 폴란드 내에 카톨릭 국가와 폴란드적 전통을 수호하고, 공산당 추종자이 공직에 나설 수 없도록 많은 제한을 두고자 하는 것이 큰 목표다. 그 목표를 위해서 동성애자들과 폴란드 내 소수민족들의 권익 역시 제한하고자 하고 있다.

또 대 독일, 러시아 정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주변 나라들을 상당히 어렵게 할 정도이다. 레흐는 독일이 유럽연합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위험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 대전에 패배해 동쪽 영토를 폴란드에 넘겨줘야했던 독일은 언젠가 반드시 그 땅을 자기들에게 돌려달라 요구할 것이라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도 있으며, 2차대전 중 폴란드가 독일에 의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독일 총리 슈뢰더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체결한 북유럽천연가스관 사업에 반대하여, 그것을 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1939년 히틀러-스탈린 조약과 비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 독일 정부에게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껄끄럽기만 하던 독일과 폴란드 외교노선에 본격적으로 장애물이 놓인 것은 7월 3일 독일, 프랑스, 폴란드간에서 전통적으로 열리던 바이마르 3국 회담에 레흐가 참석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복통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그 사건 이후 대내외적으로 폴란드 대통령의 행동에 관한 비판이 쏟아졌다.

1990년 이래 일해왔던 전직 외무부 장관들의 반대가 심했으며, 특히 브와디스와브 바르토솁스키는 “비행기 사고가 아니라면 이런 중대한 자리에 빠지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호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7월 7일 사임해야 했던 마르친키에비츠 총리 역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레흐 대통령의 바이마르 3국 회담 불참에 심히 실망한 그는, 5일 새로운 정치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레흐의 적수였던 ‘시민연대당’ 도날드 투스크를 만났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마르친키에비츠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독일에 불고 있는 반 폴란드 분위기

독일의 유력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은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그의 형을 “어린 폴란드 감자들 –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개구쟁이”로 표현하는 독설적인 기사를 내놓아 독일-폴란드 간 외교관계에 그늘을 드리웠다.

폴란드는 그 일에 대해 독일 정부에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으나 독일 정부대변인은 대외정책에 관한 기사가 실린 일간신문 내용에 대해 정부는 특별히 거론할 말이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 이후로도 카친스키 형제들에 대한 우려가 담긴 기사는 끊이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폴란드의 해명 및 사과요구에 대해서 “마호멧 만평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반응을 떠올리게 하는 바보 같은 짓”이라 평했고,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폴란드 신 정부는 쇼비니즘과 극우 민족주의 같이 좋지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평을 내놓았다.

그렇게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가 어려운 단계로 치닫게 되자 7월 12일 독일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은 신임 총리인 야로스와브 카친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양국이 해결한 곤경에서 빠져나올 문제를 찾아야한다고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비판은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레흐 카친스키는 대통령이 된 후 그와 정치색을 같이 하는 폴란드 내 우익정당들과 연합전선을 이루어 폴란드 정치색깔을 극우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호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카친스키 형제가 이끄는 법과 정의당이 폴란드 극우정당의 쌍벽을 이루는 ‘자기방어당’'폴란드 가족연합당’과 연합전선을 이루자, 친 유럽 성향 외무장관이었던 스테판 멜러는 그에 반대하여 사임을 하고 말았다.

이번 사임한 마르친키에비츠 총리 역시 우익화되어가는 정치분위기를 말소하고자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친유럽연합 정책을 펴고 있는 ‘시민연대당’과 동조관계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친 유럽적인 스테판 멜러의 사임 이후 그 자리에는 안나 포티가가 올랐다. 그녀 역시 강경외교노선으로 이름나 카친스키 형제들과 정치적성향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이런 다소 급박한 물갈이로 인해 폴란드 정치판이 전부 '그 나물의 그 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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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방울의 물처럼 똑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붕어빵 같다거나 판에 박은 것 같다는 표현을 폴란드 사람들은 이렇게 한다. ⓒ Gazeta Wyborcza

지난 1981년 현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가 자유노조 운동과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경찰은 곧 그의 형이자 동지인 야로스와브 카친스키와 관련된 정보가 담긴 서류를 발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류의 주인공은 얼마 전 수감된 레흐 카친스키와 성도 같고 생년월일도 같았다.(폴란드인들은 자기가 가진 이름과 별도로 아버지의 이름을 딴 두 번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두번째 이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여권 같은 신분증에는 같이 기록이 되어있다. 일란성 쌍둥이 형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경찰은 단순히 인쇄에서 착오가 생긴 것이라 여기고 중요한 정보를 지나쳐버렸다.

두 명은 대개 이렇게 정치무대에 같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동생이 대통령이 되면 형도 총리 자리 정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고 총리인지 기자들과 국민들은 잘 구분할 수 있을까. 그 둘은 이렇게 정치적 성격은 물론이거니와 생김새마저 똑같은 완전한 일란성 쌍둥이다. 야로스와브가 2005년 총선 이후 총리 자리를 거부한 것은, 일란성 쌍둥이가 최고 자리에 동시에 오르게 되면 세계 언론들이 그것을 빌미로 우스꽝스러운 기사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라는 평가도 있었다.

둘 사이에도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대통령인 동생은 코 옆에 사마귀가 하나 있고 머리도 단정하게 잘 빗어넘기는 편이며 형보다 얼굴이 좀 더 둥글다. 반면 형은 머리를 잘 빗지 않지만 얼굴이 비교적 깨끗하고 동생보다 약간 갸름하다.

그리고 동생인 레흐는 이미 결혼을 했지만, 형 야로스와브는 아직 미혼이고 어머니,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다. 레흐는 지난 21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형과 함께 공공장소에 모습을 같이 드러내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국민들과 주변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은 그들의 생김새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정말 일란성 쌍둥이들처럼 색깔이 똑같은 사람들만 모여서 정치를 하게 되면, 폴란드 정치인들도 전부 다 똑같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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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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