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제국 흔적, '파형동기'와 '청동솥'

국립김해박물관에서 가야제국의 신비를 음미하며

등록 2006.09.04 10:27수정 2006.09.0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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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미 나미오라는 일본학자가 있었다. 그는 고대 일본 민족의 원형이 북방에서 한반도를 거쳐 내려온 기마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심심찮게 출토되는 북방계 유물이 그 증거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주장대로 옛 금관가야의 수도였던 김해지역에서는 북방계 유물이 몇 점 출토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르도스형 청동솥'인데, 분명히 이 청동솥은 남방계 유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일본학자 에가미 나미오가 착잡해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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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솥 ⓒ 김대갑

그러나 에가미 나미오의 주장은 고대 한국과 일본의 미스터리를 규명하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더군다나 에가미는 기마민족설을 주장하면서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터라 한국 입장에서는 다소 거북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런 에가미가 지난 1990년에 대성동 고분군 발굴현장을 방문해서 고대 일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어떤 유물을 보고 한편으로는 기쁨을,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기뻤던 이유는 학자였기 때문이었고, 착잡한 이유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유물이었기에 북방 유목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식견을 가진 그가 그런 심정에 빠졌을까?

쇠의 바다인 김해시 구산동에 가면 김수로왕의 탄강지인 구지봉이 넉넉하면서도 안온한 자태를 지닌 채 김해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이 구지봉 정상에 오르면 우선 수로왕비인 허황후릉이 눈에 뜨이고, 부산에도 없는 국립박물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1998년 7월에 정식으로 개관한 이 박물관은 '국립김해박물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고학 전문 박물관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990년 대성동 고분군서 '파형동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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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파형동기, 그 2000년의 비밀은? ⓒ 김대갑

이런 특성답게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90년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고대 가야 고분군의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과 가야사 전공 학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에가미 나미오로 하여금 기쁨과 착잡함을 동시에 안겨준 유물 또한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고대 일본 왕족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파형동기(바람개비형상 동기)'라는 유물이다.

'파형동기'는 대성동 고분군을 경성대학교 박물관 팀이 발굴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에서 보듯이 바람개비 형상을 한 이 유물은 일종의 장식품으로서 나무 방패에 부착하였던 액세서리였다.

이 유물은 대성동 13호 고분에서 6점이나 출토되었는데, 여태까지 이 유물은 고대 일본 지배자들의 무덤에서만 출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야의 대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13호분에서 일본 것보다 훨씬 큰 파형동기가 발견됨으로써 일본 고유의 유물이라는 주장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또한 이 유물의 존재로 인해 고대 일본 지배층이 가야에서 건너간 계층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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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 ⓒ 김대갑

에가미가 기뻤던 것은 자신의 학설인 북방기마민족설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파형동기가 가야 지배자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북방의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부에서 지배층을 형성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배층이 되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착잡했던 것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반도인이 고대 일본을 경영했음이 '파형동기'에 의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파형동기'라는 유물은 고대 가야와 일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중요한 유물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최인호씨도 가야를 다룬 소설인 '제4의 제국'의 서두를 '파형동기의 발굴 장면'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다양한 가야제국 모습 볼 수 있는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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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앞 문화의 거리 ⓒ 김대갑

'국립김해박물관'은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김해를 경주 못잖은 문화관광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전임 시장과 시청 직원들의 열정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1도 1국립박물관의 원칙을 가진 문화부와의 갈등, 시공사의 부도, 부지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립김해박물관'은 1998년 7월 정식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현재 김해박물관은 두 개의 실내 전시실과 1개의 야외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금관가야를 비롯한 가야의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으며, 부산·경남지역의 선사사대의 문화상과 변한의 문화유산도 아울러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을 복원하는 사업과 가야 관련 학술회의와 강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지역의 문화 사업을 향상시키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와 변한, 금관가야의 유물을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타임터널은 관람객들에게 고대 가야로 날아가는 듯한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또한 당시의 매장의례를 보여주기 위해 실물크기로 복원한 창원 다호리 1호 무덤과 그 출토유물은 보는 이들에게 고대인들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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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내부 ⓒ 김대갑

제2전시실에 가면 다양한 가야 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금관가야를 제외한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의 유물이 관람객들을 반기게 된다. 이 전시실을 찬찬히 둘러보면 관람객들은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6가야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은 분명 6가야였는데. 그리고 '비화가야'는 또 어디에 있던 곳인가 말이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학자에 따라 가야제국의 수를 6개에서 20개까지 본다고 한다. 그리고 가야제국 중에서 유물과 유적이 입증된 곳은 금관, 대, 아라, 소가야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 4개 가야제국에 대한 유물은 있지만 나머지 가야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기록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동안 우리들이 가야에 대한 알고 있었던 것은 일종의 '도그마(교조적인 지식)'였던 셈이다. 현장 학습은 이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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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왕국, 가야의 판갑옷 ⓒ 김대갑

넓고 훌륭한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난 후 야외로 나가보니 우선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 하나가 눈에 쑥 들어온다. 이 고인돌은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고인돌이라고 한다. 그것 참 넉넉하게 생겼다!

야외전시장에는 이밖에도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실물크기로 전시되어 있어 옛 사람들의 자취를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 고분들은 지배자들의 무덤이다. 그래서 이 무덤들에는 가야 민중들의 피와 땀이 애잔하게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의 정치체제가 어떠하였든지 간에, 그 시절의 민중들이 어떤 어려움을 갖고 살았든지 간에 이 유물들은 나직하게 외칠 것이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너희들의 행위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박물관의 잔디밭에 내리고 있었다. 야외에 마련된 민속마당에서는 젊은 부모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굴렁쇠를 굴린다, 널뛰기를 한다, 제기차기를 한다 하면서 즐거운 웃음을 터트린다. 그 해맑은 웃음이 보기 좋아 나도 덩달아 웃어본다. 문화의 향기란 이렇게 즐거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덧붙이는 글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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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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