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술의 위폐범 누명 벗겨주고 싶었다"

[인터뷰] <이관술 1902-1950> 작가 안재성

등록 2006.09.26 11:24수정 2006.09.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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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경주에서 열린 <이관술 1902-1950> 출판기념행사에서 안재성 작가를 만났다. 그는 보라색 생활한복을 입고 행사장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작가는 <경성트로이카>를 발표한 지 2년만에 그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경성트로이카의 주요 활동가인 이관술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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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괜찮은지?
"얼마 전에 척추 수술을 받았다. 수술받기 전에는 팔이 자주 마비되어 글쓰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괜찮고, 통증도 참을 만하다."

-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경성트로이카>를 쓰면서 알게 된 이관술의 개인사를 살펴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주변의 증언을 들어보면 성격이 참 소탈하고 참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위조지폐를 찍어냈다는 것에 의심이 갔다.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고 싶었고, 위폐범이란 오명을 쓰고 죽은 이관술의 삶을 재조명해보고 싶었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 <이관술 1902-1950>의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이관술 선생의 유족들이 참여했다. 감회가 어떠한가.
"이관술의 막내 따님인 이경환 할머니와 가족들이 나를 볼 때마다 운다. 인터뷰하느라 여러 번 내려왔는데, 그때마다 붙들고 우시고, 전화할 때도 우신다. 나와 통화하면 한 이틀간은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한다. 감격스러운 것도 있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버지 이야기를 써도 되는 건지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분들 마음에 맺힌 것 다 풀어졌으면 좋겠다. 자주 우시니까 조금은 시원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그분들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고, 그런 모습 보면 나도 좋다. 그것이 글을 쓰는 보람인 것 같다."

- 김시자 평전을 쓸 때에는 붕대를 감은 고인의 모습을 보는 환영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이관술 선생도 실존 인물인데 그런 경우는 없었나?
"<이관술1902-1950>을 쓸 때에는 괜찮았다. 나는 이관술에게 연민의 마음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넝마주이로 고물장수로 전국을 다니던 것 떠올리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안쓰럽다. 해방 후에도 양복을 입고 지낸 시간이 얼마 없었다. 또 다시 넝마주이가 되어 도피생활 했다."

-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선공산당이 자금난 타개를 위해 위폐를 찍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이 사건에 대하여 연구하지 않았나?
"자료조사를 하며 역사학자들의 연구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정판사 위폐 사건'은 재판이 끝난 후 누구도 재조사하지 못했고, 학자들도 연구하지 않았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세월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정황을 볼 때 조작된 것이 확실하다.

검찰의 기소내용을 보면, 1945년 10월부터 정판사 직원들이 정판사 빌딩 2층 조선공산당 사무실에서 이관술의 명령을 받고 인쇄기를 돌려 위폐를 찍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때 이관술은 정판사 건물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조선공산당이 정판사 건물에 입주하기 시작한 것은 11월 말부터이고, 완전히 입주한 것이 이듬해 1946년 1월이다. 더구나 해방된 지 한 달 반밖에 안 된 시점인데 공산당이 자금부족을 겪었다니 말이 안 된다."

- 정판사 위폐 사건의 물증이 있지 않은가.
"이 사건의 물증은 33장의 100원권 위조지폐와 징크판, 증언으로는 인쇄기술자들의 말밖에 없다. 재판관들은 정판사에서 압수한 징크판으로 100원권 지폐를 찍어보았는데, 너무 조악하여 화폐의 형태도 나오지 않았고 물증으로 제시된 33장의 위조지폐와 형태도 달랐다. 또 인쇄기술자들이 재판정에서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 그렇다면 이 사건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 사건은 김창선 등의 정판사 인쇄기술자들이 징크판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려다 적발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경찰이 조선공산당을 연루시키면서 확대되고 조작된 것 같다."

- <경성 트로이카>는 소설 형식인데, <이관술 1902-1950>은 소설이 아니고 평전의 형태다. 처음부터 의도한 형식인가.
"정판사 위폐 사건 같은 역사적 문제를 다루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질까봐 소설의 형식으로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평가는 별로 들어가지 있지 않으니 평전이라기보다는 전기라고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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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일제하,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인물들이 가진 헌신성에 대한 감동 때문이다. 그들은 요즘 운동에서 보기 드문 열정과 헌신성을 지니고 있다."

- 분단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다량 생산되었다. 아직 부족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나는 작품을 쓸 때 통일이나 분단문제의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노동과 계급적 관점이다. 그래서 일제치하든 해방 후든 빈부격차와 비민주에 대한 투쟁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거다. 나는 과거에 노동운동을 했었고, 그래서 노동운동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관술과 이재유 역시 노동운동을 했다. 그들은 노동운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한 것이다."

- 지난 5월에는 한전노조 민주화 투쟁 때 분신한 김시자 씨의 평전 <부르지 못한 연가>를 발표했다. 소설보다는 사실의 기록에 관심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내 자신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기록자라고 생각한다. 소설가로서의 명예를 바라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 노동운동을 할 적에도 늘 선전부장을 맡았었다. 글쓰기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유도 이관술도 조직에서 선전부장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웃음)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여순사건에 대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지리산에 내려가 좌익, 우익유족 모두 인터뷰하고 있다. 좌익 편을 들어 글을 쓸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실'이고, 그 사실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덧붙이는 글 | 작가 안재성 약력

1960년 경기도 용인 출생. 강원대학교 재학 중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어 제적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구로공단 동일제강, 청계피복노조, 태백탄광지대, 구로노동인권회관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94년부터 포크레인을 운전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경기도 이천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있다.

장편소설로는 <파업>(1998), <사랑의 조건>(1991), <황금이삭>(2003), 역사소설로 <경성트로이카>(2004)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작가 안재성 약력

1960년 경기도 용인 출생. 강원대학교 재학 중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어 제적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구로공단 동일제강, 청계피복노조, 태백탄광지대, 구로노동인권회관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94년부터 포크레인을 운전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경기도 이천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있다.

장편소설로는 <파업>(1998), <사랑의 조건>(1991), <황금이삭>(2003), 역사소설로 <경성트로이카>(2004) 등이 있다.

이관술 1902-1950 -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안재성 지음,
사회평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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