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가는 통로 시안(西安)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⑩] 시안의 명고성과 비림

등록 2006.10.10 12:06수정 2006.10.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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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상징 명고성 전경 ⓒ 오창학

'과거로 가는 통로 시안'

비에 젖은 시안(西安). 모든 여행자들이 시안 이야기의 서두를 비 이야기로 시작하기에 어쩜 이리도 상투적일까 싶었는데 나마저도 그 전철을 밟는다. 그만큼 먼지로 이루어진 고도(古都)에서 만나는 비가 각별한 심회를 돋운다.

시간의 장막이라 할까? 내리는 비가 나를, 그리고 이 도시를 먼 과거 어디쯤으로 옮겨 놓는다. 시안에 들어서며 느꼈던 교통 지옥과 도시의 현란한 조명은 이곳이 고도 장안(長安)이라는 사실을 잊게 했었다. 그런데 오늘 비는 1400여 년 전, 당 장안 어느 거리로 나를 안내한다.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에 필적하는 ‘팍스 당’의 그 시대.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근대법 체제가 일찍이 실현된 국제인의 도시 장안.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108개의 방(坊)에 신분의 귀천과 사농공상의 직능에 의해 엄격히 분리된 100만의 인파가 우글대는 통제의 도시.

불교, 조로아스터교, 네스트리우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의 용광로. 최치원으로 대표되는 조기유학파 학자나 의상·혜초 등의 승려, 고구려의 천남생 같은 망명객, 흑치상지와 고선지 같은 무장, 왕모중 같은 모사가 꿈틀거렸던 귀 익은 도시 장안.

눈앞엔 비안개에 가린 고층빌딩의 상이 맺히는데 마음속에선 여전히 종루에서의 70번째 종소리에 맞춰 열리던 장안성과 300번 정오 북소리에 개장하고 300번 일몰 종소리에 폐장하던 동시, 서시의 정경이 읽힌다.

어쩌면 저 골목 어디선가 그네들을 만날 것 같다. 서시(西市) 한 켠에선 소그드 상인이 분주한 셈을 놓고 장안 호걸이 호녀(胡女)를 찾아 잰걸음을 줄이고 있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먼지의 땅에 내리는 비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 옛 정취를 가득 간직하고 있는 시안의 매력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시안은 과거로 가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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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고성의 성루. 버스 두 대가 능히 비껴갈 만한 넓이이다. ⓒ 오창학


명고성에 올랐다. 14C에 당대의 흙벽 성곽에 명대 주원장이 벽돌로 개축하여 쌓았기에 굳이 ‘명’고성이라 이른다. 당대의 국제도시 장안은 이런 규모의 성곽에 둘러싸여 있었다. 동서 25리(9.7Km), 남북 20리(8.2Km)의 거대한 장안성. 결코 함락될 것 같지 않던 이 고성도 안전한 방패막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안록산으로부터도, 이자성으로부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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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나를 지키기 위한 벽이냐, 가두기 위한 벽이냐. ⓒ 오창학


성벽을 볼 때면 묘한 느낌이 든다. 저건 나를 지키는 방벽일까, 가두는 감옥일까? 결국 성 안에 둥지를 튼 이의 힘 크기에 따라 성은 방벽이 되기도 하고 감옥이 되기도 한다. 갑오농민전쟁 때 전주성에 입성한 동학군이 꼭 그렇고, 흉노를 두려워해 만 리에 걸쳐 벽을 두른 진시황도 마찬가지다. 성은 확실한 방어의 상징이지만 성밖의 세상으론 더 이상 발을 내딛지 않겠다는 소심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지속적이진 않았으나 유목민족이 정주민족을 누르며 세상을 호령한 것도 정주민족을 성벽 안에 가둘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망루에 서서 성벽 너머의 세상을 보는데 바람결에 이백의 ‘소년행(少年行)’이 환청으로 앵앵거린다.

오릉(五陵)의 젊은이 금시(金市) 동쪽으로
은안장 백마 타고 봄바람 뚫고 간다
낙화를 밟으며 어느 곳에 놀려는가
웃으며 맞는 호희(胡姬)가 있는 술집으로


오릉은 한나라 역대 황제의 능묘지역으로 당대에는 유명한 협객들이 많이 살았다. 그러니 당대의 압구정동(오릉)의 젊은이가 삐까 번쩍한 외제차(은안장 백마)타고 돈 벌러 온 러시아 아가씨들(호희:651년 사산조 페르시아가 망하면서 들어온 여인들)이 있는 ‘깔삼한’ 나이트로 행차하신다는 말씀인데…. 세월은 흘러도 사는 모습은 어째 이리 똑같더냐.

패망한 페르시아 여인들이 호선무(胡旋舞)를 추며 연명하던 이곳에서 당나라에 끌려온 백제와 고구려 여인들의 같은 운명을 떠올린다. 국제유학생들로 바글대던 장안. 외국 인재를 유학으로 영입하고 다시 고국에 돌아가더라도 친미파가 되게 만드는 위대한 아메리카 제국의 정책보다 1400년 앞섰다.

아, 이곳 시안(장안)이 어찌 나와 연관 없는 그저 남의 나라 도시에 지나지 않겠는가. 지금과 단절된 과거의 땅에 그치겠는가.

'돌로 만든 도서관 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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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 ⓒ 오창학

비림(碑林). 말 그대로 비석의 숲, 돌로 만든 도서관에 들렀다. 구양순, 구양통, 안진경, 왕희지 등의 작품이 그대로 남아 서체의 화석들이 모여 있는 곳. 비를 뚫고 비림에 들어섰다. 한대부터 근대까지 1800여 개 비석을 7개 진열실에 전시하는데 논어 등 12부 경서를 비석에 새겨 보존한 1진열실이나 당대의 기라성 같은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2진열실도 볼만한 것이지만 내가 정말로 찾고자 한 것은 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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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경교유행비 ⓒ 오창학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781년 음력 1월 7일 제작. 비문의 작성자는 경정(景淨, 시리아 명 아담) 비의 건립자는 이사(伊斯, 이지드부지드).

1620년대에 한 인부가 집을 짓느라 땅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비석으로 대진(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주교 알포펜이 이끄는 사절단이 635년 당나라 조정의 포교허가를 받고 장안의 서시 가까운 의녕방에 교회를 세운 이래의 중국 내 네스트리우스교 전래 상황을 소상히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처음엔 페르시아의 종교라 하여 ‘파사교’라 하였으나 현종 때에 ‘큰 태양처럼 빛나는 종교’라는 의미로 ‘경교(景敎)’라 한 것인데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해진 종교가 불교에 국한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당나라 때. 중앙아시아를 통해 전파된 네스트리우스교가 당시 서역과 접촉이 활발했던 오아시스비단길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온 것인데 이후 200여 년간 중국에서 교세를 넓히다가 845년 불교를 포함한 외래종교를 금지한 조치인 회창법난과 874년 황소의 난에 휘말리면서 중원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다.

그 후론 중앙아시아 대초원으로 무대를 옮겨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게 되는데 경주의 7∼8세기 신라유적에서 경교 유적으로 보이는 성모 마리아 상과 돌 십자가가 출토되는 것을 보면 실크로드의 경로가 한반도까지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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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 광경 ⓒ 오창학


진열실 한 켠에서 탁본을 뜨고 있다. 저렇게 견본 비석에 탁본 뜨는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산 교육을 시켜주고 그 탁본은 판매용으로 넘기니 일석이조다. 헌데 비림 해설원 아가씨가 저건 견본비석이 아니라 진품유물이라 말한다. 설마? 탁본을 뜨고 있는 저 비석이 진품유물이면 소위 문화재라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돈을 밝혀도 문화재에 설마 저런 짓이야 하겠나. 이리 생각하는데 안내 아가씨가 탁본판매대 아주머니께 묻더니 다시 와 말한다.

“진품비석 맞습니다.”
“엥?”
놀랍다.

“탁본이란 게 자꾸 반복되면 비석이 상할 텐데 진품 문화재의 탁본을 떠서 판다고요?”
“그래서 비교적 최근(청대)의 비석으로 탁본을 뜹니다.”
“아무리 가까운 시기의 비석이래도 문화재는 문화재잖아요.”
“그래서 하루에 3장만 탁본합니다.”
“….”

할 말이 없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3장만 탁본한다? 300장을 뜰 수도 있는데 3장만 뜨니 문화재는 훌륭히 보호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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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로 그린 그림. 이 비식들은 진품인가 모조품인가. ⓒ 오창학


나리님이 글씨로 그림을 형상화한, 아니 어쩌면 그림 속에 글씨를 넣어 좋은 뜻을 새긴 비문의 탁본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덩달아 자포님도 눈독을 들였다. 두 분 모두 지루한 협상 끝에 적정가에 구입하고 나서는데 누군가 같은 탁본을 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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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흥정. 하루 '딱 3장'만 찍는다는 탁본을 앞에 두고. ⓒ 오창학


얼래! 3장뿐이라며? 어디서 저렇게 계속 나오는 겨? 아마 누군가 사러 가면 또 한 장을 내놓겠지? 그래서 우리가 3장뿐이라며? 하고 말하면 그럴 게다. 이건 어제 뜬 것 중 안 팔린 분량이야. 어차피 장삿속으로 앉은 사람에게 긴 말 해봐야 입만 아픈 일. 내 알기로 탁본용 비석은 모조품으로 알고 있는데 저리 진품이라 우긴다.

그 말이 사실이면 관광수입의 대가로 문화재를 파괴하는 불학무식 한 족속이 되고,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장사를 하는 사기꾼이 된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비난을 면키 어려운 수를 두고 있다. 차라리 ‘정밀’하게 복제한 모조품임을 강조하고 판매하는 것이 나을 성싶은데 나리, 자포 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저 비석이 진본이 아니기만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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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삐를 매어두는 기둥들. 머리장식이 이채롭다. ⓒ 오창학


전시실을 돌아 마당으로 나서는데. 여러 형상의 머리장식을 가진 돌말뚝들이 열 지어 있다. 가이드 철봉씨가 어떤 용도의 조각기둥들이겠냐고 문제를 낸다. 오호라 알겠다. 박재동 화백이 ‘목에 힘주지 않고 창작한 조용한 걸작’이라 평한, 그래서 ‘느끼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고 말한 바 있는 말매기 기둥(말고삐를 묶는 기둥)들이렸다. 편견 없이 봐도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자태가 보기 좋다. 때론 하늘을 나는 예술가의 나무 기러기보다 목수의 수레바퀴가 더 값진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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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비각의 '비림' 현판 ⓒ 오창학


현종비각의 획 빠진 ‘비림’현판을 다시 확인하며 비림을 빠져 나온다. 아편전쟁의 주역 임칙서가 영국의 압력으로 좌천되어 있을 때 현판 글씨를 부탁 받고 일부러 ‘비(碑)’자의 위 획 하나를 빼놓았다는 설이 있다. 장군투구의 위 꼭지가 떨어진 것을 형상화해 획 하나를 빼고 언젠가 복권되면 찍어 넣겠노라 했다는 것인데, 낭설인 것 같다.

‘구라’라고 하기엔 좀 심하고 그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라고나 할까. 원래 서예에선 ‘비’자를 쓸 때 대개는 꼭지 획을 넣지 않는다. 활자판에서나 넣을 뿐. 그리고 임칙서가 잠시 좌천의 시기를 겪었다 하나 윈난성(雲南省)의 이슬람교도 반란(청의 입장에서 볼 때)을 성공적으로 진압해 태자대부의 직명을 얻었고, 1850년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러 가는 중에 병사하였으니 과거의 명예는 찾은 셈인데 왜 획을 안 그어 넣었냐는 말이지.

때론 해몽이 꿈을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며 비림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7.14∼8.21까지 중국 내 실크로드 구간 1만4000Km를 국산 사륜구동 2대로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 내에서 외국차가 운행하기까지 공안국이나 국가여유국, 인민해방군 작전부 등 여러 부처의 승인을 얻고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비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작년에 한중 간 자동차 여행 자유화를 위해 산동성 일부구간 시범 운행이 있었고, 향후 적용 지역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라 하니 이 연재가 끝날 때쯤이면 자동차 여행이 훨씬 수월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모험과 역사, 그리고 대자연을 동경하여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라이프(http://www.rvlife.co.kr)’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7.14∼8.21까지 중국 내 실크로드 구간 1만4000Km를 국산 사륜구동 2대로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 내에서 외국차가 운행하기까지 공안국이나 국가여유국, 인민해방군 작전부 등 여러 부처의 승인을 얻고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비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작년에 한중 간 자동차 여행 자유화를 위해 산동성 일부구간 시범 운행이 있었고, 향후 적용 지역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라 하니 이 연재가 끝날 때쯤이면 자동차 여행이 훨씬 수월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모험과 역사, 그리고 대자연을 동경하여 자동차 여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라이프(http://www.rvlife.co.kr)’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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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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