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의 고향집에서 체취를 느끼다

프랑스 미생물학의 창시자 '루이 파스퇴르'의 고향 '아르부와'

등록 2006.10.19 15:50수정 2006.10.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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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 브뤼노 라투르

기억은 하나가 아니다.

아니, 기억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예컨대 '서울은 한국의 수도다'라든가,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렸다'와 같은 일반 상식들을 가만 살펴보면, '나는 2006년 10월 2일 서울역에서 광주로 가는 기차를 탔다'와 같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기억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익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하고 있는 지식들, 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의미론적 기억'이라고 한다.

파스퇴르와 그의 행적이 정확히 어떻게 내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파스퇴르'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유제품 상표 때문에, 중학교 생물수업 시간에 파스퇴르라는 이름을 어떻게 익혔는지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새겼던 지루했던 시간들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파스퇴르는 이제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파스퇴르가 광견병을 치료했다'는 상식은 나에게 '의미론적 기억'이 됐다.

프랑스 미생물학의 창시자인 루이 파스퇴르(1822∼1895)가 쥐라 지방(Jura) 출신의 촌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지나쳤던 도시, 돌(Dole)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돌'이 많을 것 같은 프랑스 도시 '돌'은 '두'(Doubs)라는 강을 끼고 있으며, 스위스 국경에서 멀지 않다.

'아르부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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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가 태어난 집 ⓒ 최미숙

프랑스 혁명을 거쳐 나폴레옹 시대를 살았던 루이 파스퇴르의 아버지, 쟝-조셉은 스페인 전쟁에도 참여한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군에서 제대를 한 뒤, 피혁 공장을 하면서 돌에 정착했고, 1822년 루이가 태어난다. 루이가 다섯 살 무렵, 부모는 돌에서 가까운 '아르부와'라는 마을로 이사를 하고, 나중에 아들 파스퇴르는 그 집을 상속받아 평생 간직한다.

파리 고등 사범(E.N.S) 과학 분야의 책임자가 되고,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어도, 파스퇴르는 휴가 때마다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아르부와까지는 기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담쟁이덩굴로 가득 덮인 그의 집 앞에 서니, 문득 단정한 턱수염에 나비 넥타이를 맨 과학자가 내게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하는 것 같은 환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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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부와 집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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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 ⓒ 최미숙

집안으로 들어서니 안내인이 주의를 준다.

"절대로 만지지 마세요! 모든 것은 파스퇴르가 살던 당시 그대로 보존된 것입니다"

검은빛 도는 초록 무늬로 가득 찬 현란한 벽지는 어제 바른 듯 깨끗하고, 루이 15세 스타일의 탁자와 의자는 100년이 넘은 가구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3층 건물 안에는 19세기 중상류 층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당에는 알자스 풍의 접시와 식기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옆방에는 지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는 파스퇴르가 즐겨 이용했던 당구대가 있다. 그 옆으로는 오래된 피아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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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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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대와 피아노가 있는 방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19세기의 묵은 향기를 맡으니 시간 더미에 눌려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레이스 장식이 있고 주름이 풍성한 치마를 입은 파스퇴르 부인은 조용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고, 파스퇴르는 아르부와 백포도주를 마시며 당구에 몰두하고 있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부모를 방해하지 말라는 유모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

소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고, 가족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아르부와 집이 파스퇴르에게 얼마나 소중했을 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집을 비운 지 100년이나 지난 오늘날, 아르부와 집은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파스퇴르가 이용했던 여러 실험실들 중에서 아르부와 집의 개인 연구실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내인은 연구실을 보여주면서 마치 자신이 파스퇴르이기라도 한 양 자랑스럽게 그의 작업을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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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파스퇴르가 평생에 걸쳐 했던 작업들, 즉 자연 발생 연구, 발효 연구, 콜레라 연구, 광견병 연구 등은 그 일부가 이 실험실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미 유명한 파스퇴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일이 1885년에 일어난다. 그는 광견병 백신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투여하고, 이 실험은 성공을 한다. 미친개에게 물려 사경을 헤매던 두 아이, 알자스 지방의 마이스터와 쥐라 지방의 쥐피르는 파스퇴르의 실험 덕분에 목숨을 구한 최초의 광견병 환자들이었다.

특히 쟝-바티스트 쥐피르를 기념하는 조그만 동상은 아르부와 근처에 있는 촌마을(빌리에-파를레) 입구에 아직도 서 있다. 마치 파스퇴르를 기억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8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프랑스 쥐라 지방을 여행한 경험담입니다. 파스퇴르에 관해서는 <파스퇴르>(피에르 다르몽, 파이야 출판사), <파스퇴르, 과학, 스타일, 세기>(브뤼노 라투르, 페렝 출판사), <루이 파스퇴르의 한나절>(과학 아카데미)를 참조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8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프랑스 쥐라 지방을 여행한 경험담입니다. 파스퇴르에 관해서는 <파스퇴르>(피에르 다르몽, 파이야 출판사), <파스퇴르, 과학, 스타일, 세기>(브뤼노 라투르, 페렝 출판사), <루이 파스퇴르의 한나절>(과학 아카데미)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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