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

16년 동안 동거동락한 자가용과 이별하기

등록 2006.11.20 11:06수정 2006.1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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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
남편의 이 한 마디 안에 16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우리 집 차에 대한 애정과 헤어짐의 섭섭함이 다 담겨있다.


지난 11월 11일 새벽 1시가 지난 시간에 예기치 못한 접촉사고로 우리 차 앞부분에 치명적인 흠집이 생겼다. 경인고속도로 초입 목동 지하차도에 진입해서 가는 도중에 앞에 달리던 1톤 트럭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급정거했다. 우리도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브레이크가 밀리곤 했다. 들이받을 것을 예상한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얼른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동시에 한손으론 내가 튀어나가지 않게 뻗쳐서 막았다. 결국 운전석 앞이 1톤 트럭의 오른쪽 뒤를 들이받았다. 보닛이 휘어져 튕겨 올라갔고, 남편이 막아주었음에도 나는 앞 유리에 살짝 이마를 부딪쳤다.

그 밤에 차를 공업사에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미 마음속에서는 녀석의 상처가 깊어 회복하기가 힘들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량 금액보다 더 나온 수리비를 듣고도 머릿속으로는 처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고쳐서 다시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갈등의 며칠을 보냈다.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남편의 꼼꼼한 관리로 멋지게 늙었고 어디를 가든 타인의 시선을 받곤 했던 녀석. 나이에 안 맞게 차의 윤택은 빛을 잃지 않고 잘 다려 입은 신사복처럼 늘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 비가 오는 날이어도 주차장에서 나갈 때에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고 먼지 하나 없던 우리 차. 타이어도 땅에 닿는 부분 외에는 늘 검은색을 유지해 가끔은 사람들이 '이 차는 땅으로 굴러다니지 않는가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의 차 관리는 유난스러웠다.


차안의 발 시트도, 신발 벗고 타야겠다고 할 정도로 깔끔하였다. 때로는 내가 질투하고 시샘을 할 정도였다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차에 하듯이 나에게도 정성 좀 쏟아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잘 관리해서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마음까지 지닐 정도였는데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노후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가끔 힘들다고 달리다가 멈추기도 하고 공업사도 수시로 들락거리기 시작하였다. 사람이나 기계나 나이를 먹으면 노후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남편은 정말 차와 대화를 나누듯이 어디 먼 길이라도 가게 되면 "잘 부탁한다!" 고 말하고 길을 떠나기도 하는데 차는 기대에 보답을 하는 것처럼 16년 동안 큰 문제없이 잘 달려줬다. 한 번 큰 사고가 나긴 했지만 그때도 제 몸은 부서졌음에도 우리 가족이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16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천리 길 마다않고 강원도로 지리산으로 사방팔방 우리와 함께 여행하기도 하였으며, 이른 아침에 내가 몰래 차 열쇠를 가지고 나가 집주변에서 운전 연습한다고 끌고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에 갑작스런 공사표지가 있어 우회전하지 못하고 당황하였던 일, 직진만 하다가 아무래도 부산까지 직진으로 갈 것 같아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골목 안까지 운전해달라고 마침 도로 공사하던 사람에게 부탁하던 창피스러웠던 순간도 녀석은 비밀로 지켜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남편과 둘이서 야밤에 데이트 겸 드라이브할 때에도 녀석은 그에 맞는 은은한 분위기도 만들어주고, 차 안에서 우리 가족이 노래 부르고 함께 대화 나눌 때 함께 즐거워해주고, 때로는 남편과 싸우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하고, 화가 나서 문을 꽝 닫고 내려도 아프단 말없이 다 받아주었던 늘 묵묵한 모습의 녀석.


나도 이렇게 정이 들었는데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차였으니 남편의 섭섭함은 당연히 클 것이다. 공업사에 차를 놓고 집에 돌아오면서 남편이 말한다.


저 녀석은 잔소리도 안하고 내가 가자는대로 군소리없이 따라오고 말도 잘들었는데(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잔소리하잖아. '지금은 과속중입니다' 하고 수시로 말하더군.
그리고 자기가 끌고가는데 당연히 따라가지. 또 요즘은 고장도 잘 나더군"


"잔소리를 해도 억양이 항상 똑같지. 항상 공손하잖아. 누구처럼 갑자기 큰소리내고 반기를 들진 않지. 그리고 끌고 가도 너는 가끔 고집피우고 버티잖아. 그리고 너도 아프기도 하잖아."

처음에는 사람도 아닌 차하고 어쩌면 저리도 애정이 깊을까 의아해했던 것도 사실이다.차 사고가 나고 3일 후 차를 폐차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분께 차를 인도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차와 헤어지던 날.
나도 어느새 마음이 짠해져서 비를 맞고 서있는 녀석의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미안해. 잘 가!! 정말 미안해!"


남편은 의외로 담담하게 주차하고 마지막까지 태연한 모습이더니 그 자리를 떠날 즈음에 갑자기 녀석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바이바이" 하고 외친다.

그러더니, 한참 오다가 말한다.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



덧글: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려니 너의 이름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어. 그냥 '우리 차'하고 부르기만 했지 16년 동안 너의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소홀함에 정말 미안했단다. 비록 무영으로 보내다가 갔지만 우린 너를 잊을 수가 없을 거야. 네가 보여준 사랑과 배려와 희생을 어찌 잊을 수 있겠니.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도 잊지 못한단다.


20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 너도 알고는 있었지? 며칠 전 아침에 너가 저세상으로 갔음을 알려주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사고 후 지독하게 앓았던 나의 몸살은 어쩌면 너와의 헤어짐을 예견하고 아팠는지도 몰라.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이젠 늘 달려야만 했던 그 힘겨움에서 벗어나 푹 쉬길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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