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멸을 향한 무익한 열정

[프랑스 여행기] 루아르 지방의 샹보르 성에서

등록 2006.11.24 12:41수정 2006.11.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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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 말을 빗겨간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제 이름을 빛냈던 사람이든, 길가의 잡초처럼 짓밟히고 뭉개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든,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공평하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인간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라는 냉정한 자연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그러나 운명을 배반하고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인간들의 무익한 욕망은 사상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또는 권력의 이름으로 늘 미화되어 왔다.

철학자들은 변하는 사물들 속에서 불변하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내며, 종교인들은 이 세상의 허무하고 속된 삶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며, 권력자들은 무능한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전능한 힘을 갖고 싶어한다.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불멸을 향한 욕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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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르 성 (앞)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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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르 성은 공사 중. 일행 중 누군가가 물었다. "성이 완공된 것은 언제인가요?" 안내인의 대답, "아직도 공사는 끝나지 않았답니다." ⓒ 최미숙


루아르(Loire) 강 가까이에 있는 샹보르(Chambord) 성은 프랑수와 1세의 욕망의 산물이다. 성은 외적 방어용으로 설계되었지만 사실 막아낼 외적이 없었던 탓에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여겨진다.

1516년, 이태리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온 프랑수와 1세(1494∼1547)는 그에게 성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 성의 설계 도면을 만드는 데 조언을 했던 다 빈치는 1519년, 성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프랑수와 1세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성을 세울 터는 늪지대였으므로 우선 물길을 막고 땅을 건조시켜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사는 프랑수아 1세 당대에서 끝나지 못했고, 아들인 앙리 2세의 시대인 1555년에 마무리되었다. 성을 건설하기 위해서 18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으며, 듣고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처참한 노동 환경 때문에 많은 인부들이 열병으로 죽어 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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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형 계단 ⓒ 최미숙


성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이중 나선형 계단을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숨결이 느껴진다. 나선형 계단은 서로 꼬여 약 18m 높이에 있는 테라스에 까지 직접 연결이 된다. 하나로 보이지만 실은 두 개인 계단은 매우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을 것 같다. 성안에 거주하던 군인들은 두 배로 많이 계단을 이용했을 것이며, 바람난 귀족은 부인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지 않고, 애인을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보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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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문양들 ⓒ 최미숙


성의 천장에는 프랑수와 1세의 첫 문자인 F와 불도마뱀(salamandre) 문양이 교대로 새겨져 있다. F는 무한대 모양의 매듭이 있는 줄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래에서 위로 세 번째 줄의 맨 오른쪽에 보이는 F는 뒤집어져 있는데, 이유는 하늘에 있는 신이 왕의 권력을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란다. 그 F는 위에서 본다면 반듯하게 보일 것이다.

샹보르 성에 300여 개가 있다는 불도마뱀 문양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들의 역사> 8권에도 등장하는 불도마뱀은 고대인들에게 신비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들은 이 동물이 불에서 태어나고, 불을 끌 수 있다고 믿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반대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불도마뱀은 불멸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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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천장에 있는 불도마뱀 문양 ⓒ 최미숙


불도마뱀은 'nutrisco et extinguo' 즉, '(좋은 불은) 살리고 (나쁜 불은) 끈다'는 문장과 함께 프랑수와 1세의 강력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불도마뱀은 불을 삼키면서 왕관(왕)을 영원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화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것은 왕이고 살아 남은 것은 상징물이다. 아니, 왕은 상징 속에 여전히 살아서 불멸의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고대인들에게 불멸은 이 세계가 아니라 저 세계와 관련된 일이었다. 육신은 수명을 다해 썩을지라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영혼 불멸의 신화는 육체 불멸의 욕망을 낳았고, 많은 절대 권력자들은 닿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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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있는 첨탑 ⓒ 최미숙


샹보르 성의 첨탑에는 불도마뱀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직은 불멸의 꿈을 접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유전학과 생명 공학에서 불도마뱀은 주요한 연구 대상이라는 점이다. 불도마뱀은 고대인들이 믿었던 것과는 다르게 불에서 태어나지도 불을 끄지도 못하지만, 그에게는 강력한 재생 능력이 있다. 장난꾸러기들의 손에 잡히면, 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을 생각해 보면 된다. 잘린 꼬리는 저절로 되살아난다.

현대 과학자들이 재생 과정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척시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멸을 향한 열정'과 닮아 있다. 그들은 눈앞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살릴 목적으로 연구를 한다. 그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표면적이고 공식적인 이유들을 들춰내고 보면, 거기에는 인간들의 오래된 무익한 열정, 즉 육체의 영원한 삶(재생)에 대한 욕망이 불도마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프랑수와 1세, 혹은 이태리식 꿈"(쟉크 랑그, 페렝 출판사)을 참조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프랑수와 1세, 혹은 이태리식 꿈"(쟉크 랑그, 페렝 출판사)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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