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베르그송을 느끼다

앙리 베르그송의 무덤 앞에서... 진정한 자아를 생각하는 시간

등록 2006.12.15 09:56수정 2006.12.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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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르슈 묘지 ⓒ 최미숙

베르그송의 무덤에 갔다. 그가 살았던 파리의 오퇴이으(Auteuil) 근처 아파트도 아니고, 그가 사람들을 가르쳤던 꼴레쥬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도 아니고,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무덤에 가고 싶었다.

제법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던 지난 10일, 저무는 햇살을 얼굴에 가득 받으며 묘지로 들어섰다. 내겐 여전히 낯설지만 프랑스에서는 흔한 모습, '묘지와 아파트의 조화로운 동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삶과 죽음은 한 뼘 차이라고, 삶은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풍경은 말을 건넨다.

@BRI@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바칼로레아"라고 불리는 프랑스 학력고사의 첫날에 있는 철학 시험을 위해서 반드시 메모를 해 둬야 할 '문제적 인물'이다.

1856년에 태어나서 1941년에 돌아갔으니, 베르그송은 19세기와 20세기를 절반씩 나누어 살았던 셈이다.

파리 고등 사범을 거쳐 콜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고, 1차 대전 당시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기도 하며, 유네스코의 전신인 '지식인 협력을 위한 국제 협회'의 초대 의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였다. 류머티즘으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직접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명예와 영광으로 점철된 소란스런 젊은 날들에 비해서, 그의 노년은 명상과 기억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유대인들에게 광기 어린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베르그송은 가톨릭에 깊은 믿음을 갖게 되지만, 억압받는 유대인들 때문에 차마 개종하지 못하고, 1941년 1월 4일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유대인 묘지가 아닌, 갸르슈(Garches)의 마을 묘지에 안장되었다.

개념·이론·사상 속의 베르그송이 아닌, 인간 베르그송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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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의 무덤에 시클라멘을 놓아 두다. ⓒ 최미숙

생각보다 묘지가 넓어서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결국 장의사에 들러 물어보았다. 늙수그레한 주인 여자는 베르그송이라는 이름을 잘 아는지, 지도에서 쉽게 그의 자리를 찾아냈다.

묘비는 새로 단장한 듯 깔끔했다. 그래서 금방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6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묘비를 찾아 헤맸으니, 반짝거리는 묘비가 눈에 들어왔을 리 없다. 사위어가는 엷은 노을을 바라보며 무덤 앞에 서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흰 종이, 검은 글자들 속에서 만났던 베르그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가슴 언저리로부터 슬픈 부스러기가 울컥 올라왔다. 개념과 이론과 사상 속의 베르그송이 아닌, 인간 베르그송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세기와는 다른 세기에, 아시아 끝에서 온 한 여자가 자신을 기억하리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무덤 앞에 서서, 그가 말한 '깊은 자아' 혹은 '진정한 자아'를 떠올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죽은 사람은 언제나 산 사람에게 교훈을 주나 보다. 싸구려 감상에 불과하겠지만, 베르그송이 평생에 걸쳐 말하고 싶어했던, '자아의 정신성'이라는 개념이 느낌으로 풀어져 다가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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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 가족 묘비. 부인과 딸이 함께 있다. ⓒ 최미숙

19세기 프랑스 철학계에서 과학이 중요한 화두였던 만큼, 베르그송의 작업은 당대의 과학적 성과들을 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두뇌와 기억에 관한 신경 생리학적 연구, 진화론에 나타난 생명 연구, 상대성 이론의 시간 개념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했다. 그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사상들을 무모하고 거칠게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육체와 물질성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때론 자아와 생명의 정신성을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이 안 되는 사람들이 천지인 세상에서 정신성이 어쩌고 하는 말은 배부른 소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돈이 모든 가치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미친 세상을 살다 보면, "피상적이고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자아의 껍질을 벗고, 자신을 가만 들여다보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베르그송의 메시지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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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의 책, <물질과 기억>. ⓒ 최미숙

베르그송이 죽고 난 며칠 후에, 폴 발레리는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그를 위한 강연을 한다.

나치즘의 공포가 파리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발레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베르그송을 추모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덜 생각하고 점점 덜 성찰하는 시대에, 그리고 문명이 다양한 형태의 부나, 자유롭고 풍요로운 지적 산물을 기억하고 흔적을 남기는 일로 축소되는 반면, 가난과 공포와 모든 억압이 정신의 노력을 꺾어버리고 좌절시키는 시대에, (베르그송은) 생각하는 인간의 아주 높고, 아주 맑고, 아주 탁월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마도 특별하고 깊이 있고 탁월한 사유를 하는 마지막 인간들 중의 한 명 일 것이다." (Paul Valery, Discours sur Bergson,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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