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한, 올리브나무의 수난

[해외리포트] 파타당-하마스 단일정부 합의했으나...

등록 2007.02.12 15:51수정 2007.07.0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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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나무

올리브유의 천국

'웰빙'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트랜스 지방이 공공의 적으로 대두되면서 트랜스 지방 제로에 도전키 위한 식품 회사들의 움직임이 자못 분주하다.

@BRI@진열대에 놓인 과자를 무심코 쇼핑 카트에 던져넣던 우리 아이도 이제는 꼼꼼히 무엇인가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겨우 초등학교 졸업반인 또래 아이들이 벌써부터 몸매에 신경쓴다.

아이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몸매 관리에 법석인 가운데 트랜스 지방 제로를 위해 나름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우리 가족도 식용유를 올리브유로 바꾸기로 했다. 지금껏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진열대 위로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올리브유가 각양각색의 용기에 담겨있는 걸 보니 이곳 아랍은 가히 올리브유의 천국이다.

올리브 열매를 절여 담근 피클도 원산지, 열매 종류, 빛깔에 따라 형형 색색에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아랍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올리브 피클은 단연 레바논산이다. 양고기 요리를 즐겨먹는 아라비아의 사막 민족이나, 싱싱한 해물을 즐겨찾는 지중해 연안의 해양 민족들 모두 올리브 피클은 우리네 김치와 같이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대형 마트에서 레바논산 올리브 피클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 쯤은 흔한 일이다.

팔레스타인산은 어디에

올리브 나무, 즉 감람나무는 성경에서 종려나무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식물로 원산지가 팔레스타인이다. 주로 절여서 먹거나 기름을 짜서 먹는다. 이웃한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는 물론, 심지어 멀리 터키산 올리브까지 진열되어 있는 단골 마트에 막상 원산지격인 팔레스타인산 올리브 피클은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야 아랍 국가들과 일체의 거래가 없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수백 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랍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언듯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자기네 땅에서 생산된 올리브 열매와 기름을 더 찾을텐데 말이다.

올리브유와 피클이 아랍인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친근한 식물의 이미지라면 수 십만원을 호가하는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님 조각은 아무래도 기독교적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있는 베들레헴, 나사렛, 예루살렘 등지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이런 조각품 역시 2000년이나 장수한다는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진다.

올리브 나무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되는데 2000년 수령에 어두운 색깔의 띠가 있는 것으로 흔히들 '로마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1등급이고 그 뒤를 700~1000년 정도의 2등급, 수백년의 3등급으로 각각 분류되고 있다.

조각용 올리브 나무는 베들레헴 산이 최상품이다. 무겁고 농도가 짙으며 붉은색을 띠는데 100년이 지나도 금 하나 가지 않는 최상품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성경속 마을 베들레헴은 현재 팔레스타인 땅으로 웨스트 뱅크(요르단강 서안지구)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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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UN에 의한 영토분할 발표 이후 군청색의 팔레스타인이 3단계에 걸쳐 점차 하늘색의 이스라엘로 변해가는 모습.

올리브 나무의 수난

유대인,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모여살던 팔레스타인에서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이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은 즉각 이스라엘의 독립국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인정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118만명으로 63만에 불과한 이스라엘에 대비해 인구면에서 두 배였지만, UN은 영토의 77%를 이스라엘에 귀속시켜버렸다.

멀쩡히 살던 나라를 빼앗긴 팔레스타인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으로 복귀하는 '시오니즘'에 극도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아랍 형제국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제 공격을 벌이지만 불과 6일만에 대패하고 만다. 이름하여 1967년의 '6일 전쟁'이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하던 처지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이번에는 점령군의 형태로 이스라엘이 23%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주둔하더니 급기야 야금야금 그 땅에 이스라엘의 정착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정착촌 건설은 곧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하여금 생업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갈릴리 호수로 대변되는 북쪽의 수원지로부터 시작되는 요르단강 인근의 불모의 땅, 수 천년을 뿌리내리고 살아온 마을 언덕 마다에 2000년 넘게 서있던 올리브 나무에도 수난이 찾아온 것이다.

정착촌은 당연히 요지 중의 요지에 건설되었고 그 땅에서 수십 세대 째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한 수십 수백 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편리와 주거 및 안전을 위해 뽑히고 잘려나갔다.

쇠락해가는 베들레험

지난 1995년 이래 매년 100만이 넘는 여행객으로 북적대던 베들레헴은2000년 민중봉기운동 '인티파다'의 발발로 2002년말 15만으로 바닥을 칠 때까지 곤두박질 치더니 2005년과 2006년을 걸치며 40만으로 다시 늘어나고는 있으나 여전히 예년의 영화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팔레스타인 마을과 달리 변변한 산업이나 농업이 발달되지 못한 베들레헴의 경제 상황이 관광객 수의 감소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베들레헴의 실업율은 이미 65%를 넘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심각할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관광객 격감으로 인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산업 중 하나가 올리브 나무 조각 산업이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미 수 백년 전부터 예수님 관련 조각품을 만들어 팔던 베들레헴 인근의 팔레스타인 조각상들은 경제 자체를 독점하고 있는 이스라엘 상인과 이스라엘 정부로 인해 조각을 만들어도 팔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제품이 팔린다고 한들 제값을 받을 수가 없다.

한 개에 12불에 팔리는 올리브 나무 조각품은 이스라엘 상인의 손을 거쳐 중국에서 플라스틱을 재료로 한 복제품으로 거듭나 시장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1불에 팔린다. 인터넷을 이용해 미국, 유럽 등지로 부터 제값을 받고 대형 주문을 수주하는 행운이 찾아와도 모두 꿈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 검문을 거치며 창고에서 의도적으로 며칠이 지체되고 나면 바이어는 계약을 파기하기가 일쑤이다.

베드레헴 상공회의소의 지난 2004년 통계에 의하면, 베들레헴 인근 마을 베이트 샤불에서 수 백년간 올리브 나무 조각을 해온 142개 전통 공예 가구점 가운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게는 겨우 63개다.

5명 이상의 종업원을 두고 하루 10시간 이상 활기로 넘치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산업이 이제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가게 마저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차를 모시는 '죽은' 공간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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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파타당과 하마스의 합의를 보도하고 있는 <알 자지라>방송 홈페이지. 왼쪽부터 칼리드 메샬 하마스 지도자, 사우디 압둘라 국왕,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 이스마일 하니야 팔레스타인 총리의 모습이 차례로 보인다.

파타당과 하마스의 화해... 축포는 터졌으나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압둘라 사우디 국왕의 중재로 개시된 라이벌 집단 파타당과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존속의 대의를 명분으로 8일 밤 늦은 시각 단일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며칠 째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이스라엘 점령지내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의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자정이 훨씬 넘는 시간 삼삼오오 거리로 몰려나와 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고 어두운 거리 바닥에 입을 맞추며 유일신 알라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들이 알 자지라를 통해 실시각으로 보도되었다.

내각을 일정 비율로 나뉘고 무소속을 과감하게 중용하여 구성된 단일 정부를 통해 지난 1967년 만들어진 UN 결의안을 비롯 국제 사회에서 이미 선언되고 조인된 조약 및 협약의 범위내에서 이스라엘과 협상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발판이 확보된 셈이다.

23% 영토를 죽어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인정할 수 없다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함으로 인해 가능해진 이번 '메카 선언'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대외적 입장 변화가 주요한 분수령을 넘은 셈이다.

이제 공은 이스라엘과 그의 맹방 미국으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모두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 미국발 경제 제제도 더 이상 지탱될 수 있는 명분이 희박해졌고, 1967년 침략한 점령지내 주둔, 정착촌 건설, 분리벽 설치 등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짜고 치는 고스톱' 전략도 이제는 예전처럼 하마스를 손가락질 할 처지가 아닐 듯 싶어진다.

하마스 지도자 메샬과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에 거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관심도 지대하지만 이미 지난 2001년 아랍 리그에서 제시된 '이스라엘의 1967년 이전 영토로의 철수 중동 평화안'에 2002년 거듭 그 정당성을 천명한 사우디가 이번에도 또 한번 큰일을 했다며 아랍내 분위기는 칭찬 일색이다.

이스라엘로부터 제거 1순위로 지목되는 메샬 하마스 지도자는 다시 망명지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로 돌아갈 것이고 사우디 압둘라 국왕은 메카에서 다시 수도 리야드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단일정부 구성의 대세는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을 두 사람 모두 가슴에 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시점이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올리브나무 #알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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