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만화로 읽는다면?

[서평] 오세영의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등록 2007.02.28 20:42수정 2007.02.2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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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의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 청년사

<오세영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은 우리의 단편소설 19편을 만화로 그려낸 책이다. 김유정의 <동백꽃>, 오영수의 <요람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 익숙한 소설도 있지만 월북 혹은 재북 작가들의 작품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현덕이란 월북 작가가 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는 특징을 지니는 작가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작품 가운데 <경칩>과 <남생이>를 만화로 그려놓았다.

<경칩>은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이 아닌 소작인과 소작인의 갈등을 다룬다는 면에서 특이하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38년이니 이 즈음의 시대상황과 관련시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소설과 만화의 내용을 서로 비교하여 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오세영은 첫 장에서 네 컷을 보여준다. "마을은 집집이 새로 이엉을 입혔다", "밤사이 우물 앞 얼음이 풀리고…", "비를 몰아간 바람은 언덕 다박솔밭에서 울고 마을은 잠자는 듯 조용하다" 등 우선 이렇게 세 컷 안에 소설 도입부의 문장을 일부 선택ㆍ압축시켜 삽입한다.

그 다음 네 번째 컷은 소설속의 상황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세 아이가 나란히 서 있다. 좌측부터 '꼬마', '기동이', '노마'이다. '얼굴, 손, 저고리, 바지에 점점이 흙인 것'과 '바지괴춤이 배꼽 아래로 내려앉은 것'을 그대로 묘사한다.

소설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면 만화는 이러한 소설 속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또 소설이 문장과 문장으로 나뉜다면 만화는 한 컷 한 컷의 구분선에 의해 나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문장을 이어나가고 상황을 이어나가게 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메우고 상황과 상황 사이를 메운다.

만화를 읽으면서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인물의 표정이다. '의아함', '놀람', '심술의 발동', '문득 생각남', '버럭 화냄', '안타까움' 등 이런 갖가지 상황에 맞는 다양한 표정들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분명 만화를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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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만화, 현덕의 '경칩' 중에서. ⓒ 오세영

<경칩>의 마지막 장면을 보아야겠다. 비록 노마 아버지의 소작지를 자신이 차지하기는 하였지만 절친했던 친구의 땅을 슬쩍 '돌아앉은'(김유정의 <봄봄>의 한 구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흥서의 죄책감이 묘사된다.

무엇보다 소설의 핵심을 정확히 잡아내었다는 느낌이 드는 컷 하나는, 흥서의 상념 안에 노마 아버지가 했던 결정적인 대사 "여기 좀 살이 오른 것 같지 않어?"를 집어넣고 있는 부분이다.

현덕의 <남생이>는 일종의 성장소설로 보아도 될 듯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렇게 오르기 힘들었던 양버드나무를 힘 안 들이고 올라가는 상징적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태준의 <복덕방>은 '안 초시'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표정이며 몸짓이며 말이며 살펴보는 일이 꽤 괜찮다. 만화 속의 캐릭터도 소설 못지않게 살아 꿈틀댄다는 것을 오세영의 만화는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소설 한번 잘 읽었다. 아니 만화 한번 잘 보았다.

덧붙이는 글 | * 만화: 오세영 / 펴낸날: 2005년 1월 24일 / 펴낸곳: 청년사

덧붙이는 글 * 만화: 오세영 / 펴낸날: 2005년 1월 24일 / 펴낸곳: 청년사

오세영 -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오세영 지음,
청년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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