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 처벌과 죄악의 딜레마

[드라마 리뷰] KBS 2TV 수목드라마 <마왕>

등록 2007.04.05 16:52수정 2007.04.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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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수목드라마 '마왕' 한 장면 ⓒ KBS

두 편의 범죄수사물 <히트>(MBC TV 월화 미니시리즈)와 <마왕>(KBS 2TV 수목드라마)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두 편 모두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형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본격 형사추리물에 범죄 스릴러의 성격까지 가미했다. 그러나 두 드라마는 각기 격렬한 스펙터클 대 냉정한 두뇌 퍼즐, 쫓고 쫓기는 육탄전 대 유장하고 진중한 심리전이라는 전혀 다른 색깔로 대조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히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극악무도한 공공의 적을 찾아내는 정의파 경찰 차수경(고현정 분)의 이야기이다. 극악무도한 공공의 적과 정의파 열혈 형사라는 명확한 선악의 구도는 명쾌한 범죄추리물의 최적 조건이다. 여기에 제각기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진 수사팀원 면면들의 불안한 조합 자체가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드라마의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이끌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차수경이 지닌 개인적 원한이다. 눈앞에서 연쇄살인범에게 연인을 잃어야 했던 고통과 상실의 기억, 오직 그것으로 그녀는 14년간의 경찰생활을 지탱해왔다. 바로 그 분노와 통한이 그녀의 과격하고 무모한 열정을 추동해주며, 그녀에 대한 동일시를 가능케 하고, 드라마의 강렬한 열기를 만들어 낸다.

악행을 처벌하는 또다른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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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오수 역의 엄태웅 ⓒ KBS

이렇게 볼 때, 이 드라마 역시 <마왕>이 그러하듯이 개인적 원한을 바탕에 깐 또 한 편의 복수극인지도 모른다. 개인적 원한을 경유하지 않고는 죄악의 일소라는 공적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의 복수극 말이다. 따라서 공공의 적이나 사회적 정의는 단지 표면적 설정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왕>에 이르러 공공의 적이나 사회적 정의라는 표면적 설정조차 그 정체를 완전히 감추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작인 <부활>에서처럼 정경유착의 거대한 구조적 악이거나 <히트>에서처럼 극악무도한 공공의 적이 아니다. 이번에는 악행을 처벌하는 또 다른 악행이다.

강력계 형사인 강오수(엄태웅 분)와 그 친구들이 어린 시절 실수로 저지른 감춰지고 잊혀진 악행을 처벌하는 인권변호사 오승하(주지훈 분)의 냉혹한 범죄이다. 이것은 악을 단죄하는 악으로서의 복수극이다.

이렇듯 <마왕>은 <부활>에 이어 개인적 심판과 복수의 모티프를 반복한다. 부당하고 억울하게 자기 것을 빼앗긴 개인이 공권력을 대신해 되돌려주는 단죄와 처벌이 곧 복수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행의 순환 속에 명확한 공공의 적은 사라지고, 단지 인물들을 파국까지 몰고 가는 개인적 원한과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진실 찾기 게임만이 존재하게 된다.

복수라는 테마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이미 사라지고 희생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인생이나 목숨까지도 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사라진 존재의 자리에 온전히 자신을 채워 넣는 행위이자 자신을 비워가는 행위이다. 복수라는 행위가 비극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치는 원한과 처절한 되갚음이라는 복수극은 현대 비극의 대표적 양식이 될 듯하다. 그것이 공공의 정의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초상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이러한 복수극의 성공의 관건은 그 복수의 정당성에 있다.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계산과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그가 받은 고통과 상처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 그가 지닌 원한의 강도가 얼마만 한가에 따라 복수자의 복수 행위는 허용될 수도 있고,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행하는 복수 행위가 얼마나 잔혹하고 탈법적인가에 따라 그에 대한 지지는 유지되기도 하고, 철회되기도 한다.

<부활>의 서하은은 잔인하고 냉혹하지만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복수를 행했으며, 그 복수가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상처와 고통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우리가 완전히 몰입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절대영웅의 지위가 부여된다.

복수의 정당성과 위법성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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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하 역의 주지훈 ⓒ KBS

<마왕>의 오승하의 경우는, 형의 무참하고 억울한 죽음이라는 원초적 상처가 그의 복수를 정당화해주고, 또한 역으로 복수를 위해 저당 잡힌 지난 십 년의 세월이 그 자신의 원한의 깊이를 증거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연쇄 살인을 획책하는 악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왕>에서 복수극이 더욱 비극적 성격을 띠는 것은 이처럼 오승하의 복수극이 지니는 처벌과 죄악의 이중성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판관의 위치에 올려놓고 죄인들에게 사적 처벌과 심판을 내리기 위해 어떠한 죄업을 짓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그가 악인이 되어 가면 갈수록 그만큼 그의 내면의 상처가 더욱 크게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그 위법성이나 잔인성에도 심리적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수극의 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복수의 정당성과 사회적 위법성 사이의 간극에 있다.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주인공의 심리적 딜레마와 비극성은 강화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드라마는 이러한 현대적 비극을 죄의식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로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서하은의 일방적 독주체제와 달리 강오수와 오승하의 양자체제는 죄악이 복수를 낳고 그 복수가 다시 죄악을 부르는 죄와 벌의 연쇄적 고리를 형성한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두 사람의 뒤바뀐 위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죄악과 처벌의 이중적 위치를 부여한다. 죄악과 처벌이 양자 모두에게 귀속되듯, 선악은 둘 모두에게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공존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그리고 선악의 이원체제는 우리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동일시할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 거리 사이에서 우리는 두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문했을 질문들을 되돌려받는다. 악을 단죄하는 악은 정말로 악한 것일까? 한순간의 실수로 행한 악은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무엇이 정의인 것인가?

상호파멸 예고하는 죄악과 처벌의 악순환

마지막 질문의 답은 아마도 '죄의식'이 될 것이다. 오승하가 의도적으로 던지는 범죄의 예고와 실마리들은 강오수가 자신의 과거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오수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은 역으로 자신의 오래된, 잊혀진 과거의 죄를 만나는 과정이 된다. 이것은 정확히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의 죄의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오승하가 자신이 직접 범행을 저지르는 대신 불운한 제3자에 의한 우발적 범행을 꾀하는 것은 단지 약자를 이용한 고도의 지능적 범죄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강오수의 죄의식, 그 불안과 공포를 끌어내기 위한 치밀하게 계산된 단계적 실행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의 죄악이 어떻게 현재 속에, 제3자들의 삶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행하는 심판과 단죄는 또 다른 죄악이 되어 그 자신에게도 죄의식의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러한 죄악과 처벌의 악순환은 두 사람을 상호파멸의 길로 이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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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인 역의 신민아 ⓒ KBS

이때 원초적 사건의 목격자이자 모든 사건의 증인으로서의 사이코메트리 서해인(신민아 분)의 존재는 두 사람의 죄의식을 더욱 날카롭고 절박하게 몰고 갈 것이다. 그녀가 그들 모두가 연루된 사물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숨겨진 진실과 더불어 두 사람의 내면과 만난다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세 사람의 운명적 사랑을 예고하는 동시에 두 사람을 절망적인 죄의식의 수렁에 빠뜨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서해인의 존재는 이 드라마가 복수의 드라마에서 용서와 구원의 드라마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해인은 두 사람에게서 숨겨진 진실 뒤편의 상처받은 영혼과 죄의식의 고통을 가장 먼저 발견할 것이고, 그들을 감싸고 어루만짐으로써 그들을 구원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연속되는 범죄사건을 해결해 가는 드라마의 전개과정은 아마도 두 사람의 죄의식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하나씩 정화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범죄추리물 <마왕>은 드물게도 그렇게 죄의식과 구원에 관한 존재론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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