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 기자] 중3 때인 지난 2003년 안식년을 맞은 대학 교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뒤 1년 6개월 만에 한국행을 선택한 김예현. 예현이는 최근 조금은 특이한 자신의 이력을 녹여낸 책 <미 명문고 굿바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를 출간했다.
미국 명문고 우등생들과 부모들이 겪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교육 보트피플’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유학길에 오르고 있는 지금, 예현이는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즐거운 귀국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한국에서 일등이 되어야 미국에서도 일등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도나도 못 가서 안달하는 조기유학. 미국의 명문 공립 고등학교인 프린스턴에서 올 A학점을 맞은 김예현(대전 둔산여고 3학년)양은 2005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한국 학교로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이니까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옳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계속 공부할 생각으로 라틴어 경시대회 출전도 예약해 놓고 동부의 명문 사립고인 엑서터, 안도버, 밀튼, 디어필드 등에 인터뷰까지 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대체 미국 유학은 끝이 없더라고요. 미국에서 괜찮은 직업을 가지려면 대학원까지 졸업하는 건 기본인데 대학원을 마치려면 매년 최소한 5000만원에서 1억원이 넘게 들잖아요. 부모님께 그 많은 학비와 생활비 부담을 안겨드려야 하고 또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그런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미국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자문해봤어요. 그랬더니 ‘No’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예현이는 미국 유학 과정을 컨베이어 벨트에 비유했다. 일단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기 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찬찬히 그리고 면밀히 지켜봤다.
10년 이상 천문학적인 액수를 학비로 쓰고 기러기 가족을 감수하면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친구들 중 많은 수가 마음속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미국 학교에 다니지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같은 반 학생들, 조기유학과 아메리칸 드림의 괴리감 등 많은 문제가 눈에 보였다.
늦게 출발한 경주에서 영원한 2등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예현이는 미국 학교에서 적응 잘하는 우등생이긴 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방인도 주인도 아닌 채 명문대 진학을 위해 굳이 미국에 머물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하지만, 동네 학교로 전학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한국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더욱이 예현이가 수능을 봐야 하는 2008년부터 새 입시 제도가 적용된다. 불안한 마음은 없었을까?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에 자주 가서 과제를 하곤 했는데 그곳 대학생들을 보니 늘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노랗게 뜬 얼굴로 책에 코를 박고 살더라고요.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결국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어디서든 열심히 공부하면 국경이란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현재 예현이는 한국 학교 생활에 만족한다. 2005년 고1 신입생으로 입학한 뒤 처음 1년 동안은 성적의 기복이 심했지만 지금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처럼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대입 시험을 준비하느라 낑낑거리고 있다.
“때론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할 때도 있지만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3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즐기고 있어요. 내가 끼어들어 변화시킬 수 있는 한국이, 또 한국 학교가 좋으니까요.”
| | 예현이가 말하는 미국학교 | | | | ▲시늉만 하는 특별활동은 없다 미국 학교는 특별활동이 진짜 특별하고 활발하다. 내가 활동했던 학교 신문반에서는 여러 가지 취재와 분석 기사를 곁들인 ‘진짜 신문’을 만들었다. 연극반, 합창반은 유럽 등지로 해외 공연을 가는가 하면 지역사회 시민들에게 공연 티켓을 팔기도 한다. 특별활동을 하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하고 싶었던 특별한 활동을 진짜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미국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주눅은 최대의 적, 당당해져라 낯선 외국 땅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대담함과 뻔뻔함이 필요하다. 발표 숙제가 많은데 영어를 잘 못하니 주눅 들기 쉽지만 어려운 내용이 있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지적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자신감 있는 학생에게는 친구들이 모여든다. 미국 아이들은 특기를 가진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나는 종이학 접기, 스케치, 디지털 카메라 다루기 등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겸손함보다는 잘하는 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자랑할 줄 아는 자신감이 꼭 필요하다.
▲미국은 개성 강한 사람 을 좋아해 미국에서는 무언가 노력해서 성취한 일에 대해서는 이의 없이 경의를 표한다. 체력을 단련해서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칭찬의 대상이 된다. 상상력이 뛰어나고 남보다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길을 가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은 미국 교육에 더 잘 맞는다. 한국 교육은 모나지 않고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미국 학교는 자존감이 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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